제국주의
제국주의
“나는 어제 런던 이스트엔드의 실업자 집회에 가서 '빵을 달라'는 절절한 연설만 듣고 오다가 문득 제국주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우리는 영국의 4천만 국민을 피비린내 나는 내란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새로운 영토를 개척해야만 한다.”
- 세실 로즈, 유언집
다른 국가들보다 앞선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국가들은 다른 국가에 쳐들어가 그 지역의 민족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무력과 강압을 통해서 다른 지역을 점령했을 뿐 아니라 지배민족의 사상과 체제가 우월함을 알리고 그들의 문화를 전파하였다.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이론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왜곡한, 적자 생존의 원칙과 제국주의 침략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사회 진화론이 활용되었다. 또한 점령지를 산업 발전에 필요한 원료를 공급하는 식민지이자 그들의 완성품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삼았다.
가장 대표적인 제국주의 국가는 영국과 프랑스였다. 영국은 아프리카 북부의 이집트, 남부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잇겠다는 종단정책을 펼쳤고, 프랑스는 북서아프리카와 동부아프리카의 수단을 잇겠다는 횡단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1898년 수단의 파쇼다에서 두 국가가 충돌하기까지 한다. 이외에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와 수리남, 독일은 남부 아프리카와 중국의 칭다오, 벨기에는 콩고, 이탈리아는 리비아, 포르투갈은 앙골라 등을 식민지로 삼았다.
영국과 프랑스처럼 먼저 자본주의 발달과 식민지 점령을 이룬 나라들은 기존의 체제를 안정화시키고 했지만, 독일, 이탈리아처럼 민족주의적 열풍에 힘입어 뒤늦은 통일을 이룬 나라 입장에서는 점령할 식민지가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은 기존의 국가들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열강들이 서로 제국주의적인 행태를 보임으로써 식민지 지역의 사람들은 인종 차별을 겪었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크게 고통받게 되었다. 또한 열강들은 식민지 지역의 주민들의 문화와 공동체를 존중하지 않은 통치를 했기 때문에 각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 이후에도 저개발과 혼란을 겪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식민지를 얻기 위한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