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은 안에는 근심이 있고 밖으로는 환난이 있다는 뜻이다. 보통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 유래는 사실 미묘한 성어이다. 고사 자체는 춘추전국시대 언릉전투에서 기원한다.
춘추5패중 하나인 초나라 장왕이 죽고, 초나라 공왕이 즉위했다. 초나라 장왕은 이전에 필의 전투에서 이전 패자 국가였던 진나라와 전투하여 대승을 거둔 바 있었다. 장왕이 죽고 공왕이 즉위했을 때 공왕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는 다시 미묘한 알력이 흐르기 시작했다.
몇년간 평화가 유지되었으나, 불안불안하게 유지되던 평화는 초나라의 정나라 침공으로 깨지고, 맹우국이던 정나라를 침공한 데에 보복으로 진나라가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진나라와 초나라는 언릉에서 마주친다. 이것이 춘추시대 진나라와 초나라의 패권을 가른 전투중 하나인 언릉 전투이다. (이전엔 진나라 문공이 초나라의 득신을 대파한 성복대전, 초나라 장왕이 진나라 군대를 격파한 필의 전투 등이 있었다.)
당시 국가는 중앙집권화되지 않았고, 각 씨족의 수장들이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벌이는 형태였다. 이때 범씨 일족의 수장이었던 범문자가 이렇게 말한다. "성인만이 근심도 재난도 견디지만, 성인이 아닌 우리같은 인간들에게는 밖에 재난이 없으면 안으로부터 근심이 일어나는 법이다. 차라리 외환을 두자." 그리고 범문자는 소극적인 대응을 주장하고 직접적인 전투를 반대한다. 그러나 주전책에 밀려 전투가 벌어진다. 전투에서 진나라는 대승을 거두고, 초나라는 패해서 물러났다. 이리하여 다시 패권은 진나라에 넘어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범문자는 전쟁을 반대했을까? 그는 진나라 국정을 주도한 명신이기도 했고, 처신을 잘하기로 이름높은 사람이었다.
당시 춘추사회는 아직 청동기시대였다. 철기를 이용한 대규모 농업이나 운하 사업은 사실상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농업 생산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쟁을 통해 승리를 거두면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들에게 상을 줘야 했고, 상업이 미비한 고대사회에서 줄 것은 땅정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미 패권국가로 자리잡는 동안 전쟁을 많이 치뤘는데 또 줄 땅이 어디있겠는가. 공신들은 불만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를 제어할 방법은 기존 공신을 죽이고 땅을 빼앗는 수밖에 없었다.
범문자는 이러한 상황을 보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외부의 견제 세력이 사라지면 진나라 내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불만들이 폭발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또한 그는 진나라 임금이 승리에 도취하여 교만해질 것을 두려워했다.
과연, 진나라가 초나라에게 대승을 거두고 오랫동안 패권국으로의 직위를 유지하게 되자, 점차 공신들에 의한 내란이 자주 일어났다. 극씨가 신흥세력들에 의해 멸문을 당하였고, 중행, 범, 지, 조, 위, 한씨에 의하여 기씨와 양설씨가 모두 살해당한다. 이후엔 지, 조, 위, 한씨에 의해 중행씨와 범씨가 제나라로 쫓겨난다. 그리고 조, 위, 한씨에 의해 지씨가 멸문당하고 나라가 셋으로 갈라져 진나라는 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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