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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61

상앙과 상군서

전국시대 진나라의 대량조를 지냈던 공손앙(상땅에 봉해져서 상앙이라고도)의 책인 상군서를 읽고 있다. 상군서는 상앙이 쓴 것이라고도 하고 상앙의 후예들이 쓴 것이라고도 하는데 그 나눔이 획일적이기보다는 대충 이것저것 섞인 것으로 보인다. 상앙의 사상은 법가로, 유가를 주장한 진나라의 감룡과 두지등을 논파한 뒤 진나라 효공에 의해 등용되어 철두철미한 법가개혁을 통해 진나라를 강국으로 이뤄냈다. 상군서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많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독특하다. 상앙은 가벼운 죄를 가볍게 처벌하고, 무거운 죄를 무겁게 처벌하면 가벼운 죄를 짓는 것을 막을 수 없기에 가벼운 죄도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상과 벌은 1:9면 적당하고, 상은 전쟁과 농업에 관한 것에 주어야 한다고 본다. 철저..

춘추전국 2021.06.09

조무령왕의 허무한 죽음

조무령왕(BC 340?~ BC 295?)은 전국시대 조나라의 군주이다. 조무령왕趙武靈王이라는 호칭은 약간 독특한데, 보통 이시대 왕들의 호칭이 3글자이기 때문이다. 제민왕, 양혜왕, 연소왕처럼 말이다. 또한, 武靈이라는 시호는 조무령왕만이 가지고 있다. 무는 보통 전쟁이나 군사적 업적을 남긴 군주들에게 남기는 시호이다. 그런데 영이라는 시호는 보통 시법에서 나쁜 시호로 쓰이는 악시이다. (백제의 무령왕은 寧편안할 영자를 써서 의미가 다르다.) 시호로 쓰이는 靈자의 뜻중 하나는 亂而不順(난이불순) : '난이 일어나고 순응하지 않았다' 이니 죽은 사람에게 쓰이는 시호로는 의미가 묘한 것이다. 군사적 업적을 남겼고, 난에 순응하지 않았다는 시호는 의미가 복잡하지만 사실 조무령왕에겐 딱 어울리는 시호이다. 원래..

춘추전국 2020.12.17

악의 樂毅

악의는 전국시대 연나라의 명장이다. 위나라를 섬기며 위문후를 도와 중산국을 멸망시켰던 악양의 손자이다. 연소왕, 연혜왕의 시대에 걸쳐 연나라를 섬겼으며 제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나 연혜왕에 의해 파직당하여 조나라로 옮긴다. 악의는 본래 연나라 사람이 아니다. 악양이 중산국을 멸망시킨 이후 악씨들은 이 근처에 살았단 것으로 보인다. 중산국은 위나라에 의해 1차로 멸망하나, 이후 조나라의 조무령왕에 의해 2차로 멸망한다. 따라서 악씨들은 조나라에 살게 된다. 조나라의 조무령왕은 오랑캐의 옷을 입고 말을 타는 호복기사 정책을 채택하여 조나라를 강국으로 만든 명군주였으나, 후계자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궁에서 내란이 일어나 굶어죽는다. 악의는 이런 조나라를 떠나 위로 간다. 그러나 위 역시 악양과 위..

춘추전국 2020.12.17

정장공이 어머니와 화해하다

주나라가 동천하고 권위를 잃자, 각 제후들은 주나라 모시기를 우습게 여기고 이반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고 군사력과 위압을 통해 패도를 좇는 국가들이 출연하게 되었다. 이중 가장 거대한 족적을 남긴 5인을 춘추 5패라 하나, 아직은 등장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춘추시대의 혼란에 오프닝을 연, 작은 패도를 이루어 소패라고 불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정장공이었다. 정나라는 앞서 정환공 시기에 처음으로 건립된 국가였다. 정환공은 충성스럽게 주유왕을 보필하였으나 주유왕이 이민족에게 공격당할때 휩쓸려 살해당하고 말았다. 정환공의 아들 정무공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아 정나라를 계승한 뒤 주유왕의 아들인 주평왕을 보필했다. 정무공은 주나라 왕실의 집정인 사도가 되었다. 정무공은 죽음으로 충성을 바..

춘추전국 2020.12.17

중산국(中山國)

중산국은 전국시대 초,중기에 있던 국가이다. 위치는 연나라와 조나라 인근이었고 수도는 원래는 고였으나 환공의 재건 이후엔 영수였다. 원래 중원 인근의 민족과는 다른 부류로 여겨지는데, 이민족들이 춘추시대 말엽에 들어와 나라를 세운 것이다. 그러나 원래 땅이 척박하고 좁아서 큰 국가로 발전하기엔 문제가 있었다. 전국시대 위문후는 장군 악양을 파견하여 중산국을 정벌하였는데,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었으나 악양은 무시하고 공격을 개시했다. 중산국왕은 악양의 아들을 죽인뒤 그 시체로 고깃국을 끓여 악양에게 보냈으나 악양은 고깃국을 다 마시고 중산국을 멸망시켰다. 이리하여 중산무공때 중산국은 멸망한다. 위문후는 자신의 아들 공자 격(훗날의 위무후)을 통해 중산을 다스렸다. 이후 중산환공의 노력..

춘추전국 2020.12.17

춘추전국시대의 국가들 진(陳)나라 채(蔡)나라

진(陳) 소개: 고대 전설상의 임금으로 여겨지는 순임금의 후손을 봉한 국가. 성은 규嬀였다. 초나라에 인접했고 세력도 미약하여 초나라에게 잦은 침략을 당했다. 심지어 초나라에 의해 세번이나 나라가 멸망당하고 말았다. 진영공때 공녕, 의행보라는 신하와 진영공이 하희라는 여인과 사통했는데, 그 아들 하징서의 얼굴을 두고 서로 하징서가 누구얼굴을 닮았느니 말았느니 놀리면서 낄낄거리다가 하징서가 화가나서 진영공을 시해했다. 이때 초나라가 하징서를 죽이고 진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한번. 이후 복국하였다가 초영왕이 진나라를 또 멸망시켰다. 이것이 두번. 초평왕이 이것을 복국시켰으나 기원전 478년경 또 멸망하여 완전히 사라졌다. 여담으로, 진나라 공실의 일부는 강태공의 제나라에 가서 성을 전으로 바꾼 뒤 귀족이 되었..

춘추전국 2020.12.17

춘추전국시대의 국가들 오(吳)나라 월(越)나라

오(吳)나라와 월(越)나라 소개: 현재의 중국 장쑤성 일대에 있던 국가들. 둘다 장강의 하류에 위치했고 오나라는 오 지역, 월나라는 그 남부에 위치했다. 오나라는 주나라 계열의 희성이며 주문왕의 일족이라는 설도 있으나 거의 믿기 어렵다. 아마 오나라와 월나라는 황하 인근에 있던 중원국가와는 다른 민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나라는 원래 전차전을 할 줄 몰랐으나(보병위주 전투를 했던 것으로 추정) 당진나라의 도움을 받아 전쟁기술을 전수받았다. 합려와 부차대에 이르러 손무와 오자서라는 명군사를의 활약에 힘입어 국력이 강성해진다. 월나라는 윤상의 대에 이르러 국가의 틀을 잡고, 구천대에 이르러 강력한 군을 이끌게 된다. 양국은 서로 치고받고 격렬한 전쟁을 벌였는데, 구천의 부하 영고부에 의해 합려가 사망했고..

춘추전국 2020.12.17

춘추전국시대의 국가들 정(鄭)나라 조(曺)나라

정(鄭)나라 소개: 춘추시대 국가들중에선 비교적 늦게 세워진 국가이다. 주나라 유왕때 유왕의 삼촌 정환공을 봉한데서 유래한다. 워낙 뒤늦게 생긴 국가였기 때문에 땅의 크기는 작았다. 춘추시대 초기 정장공이 소패로 활약하며 주나라 천자의 군대를 패배시키는 등 종횡무진했지만, 이후엔 초나라와 진나라 사이의 알력다툼에 끼이며 약소국으로 전락한다. 이후 초나라와 진나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침공당하고 귀족끼리 내란을 일으키는 일이 계속되었다. 춘추시대 후기 자산의 집정때 정치가 바로 서게 되었지만, 전국시대에 한나라에 계속 공격당하다가 멸망당한다. 수도는 신정이었다. 특징: 비교적 신생 국가. 주나라와 인접. 장점: 교통의 요지에 위치. 단점: 영토가 넓지 않았고 강대국인 진晉나라, 진秦나라, 초나라의 진출범..

춘추전국 2020.12.17

춘추전국시대의 국가들 노(魯)나라 송(宋)나라 위(衛)나라

노(魯)나라 소개: 주나라가 기틀을 잡던 시절, 주공 단의 아들 백금이 봉해진 지역. 오랫동안 주나라의 예법을 받들어 모셨다. 예법을 잘 보존한 국가로 칭송받기도 했지만, 제나라의 땅을 떼어 만들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제나라보다 작아 곧잘 침략당하곤 했다. 노장공 사후 군주의 권력이 점점 약해지다가 마침내 삼환이라고 하는 가문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군주는 허수아비가 된다. 공자가 태어난 곳이자 대사구(대법관)를 지냈던 곳이다. 훗날 초나라에 의해 멸망. 수도는 곡부였다. 특징: 고대 주나라 왕실의 예법을 꽤 오랜 기간 유지함. 장점: 주나라 왕실과 가까운 인척이었기에 정통성과 명분이 확고했음. 단점: 강대국 제나라에게 곧잘 침략당함. 삼환에 의해 공실이 유명무실해짐. 주요 인물: 노환공, 노장공, 노소공,..

춘추전국 2020.12.16

공자를 받아들이길 거부한 이들

안영: 제나라 사람. 키가 매우 작고 볼품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제나라의 대부를 지내며 제나라 경공을 보필했다. 제장공이 시해되고 제나라 정치 지형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중립을 지켰으며(제장공의 시신에 예를 갖추긴 함), 이후에도 그는 계찰의 조언을 받아 자신의 봉읍을 반환했기 때문에 내란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그는 제나라의 현자로 여겨져 안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장 옆에 살고 군주가 내려주는 좋은 집도 마다하고 청렴결백하게 살았다. 말을 요긴하게 잘 하여 제경공의 정책을 은근히 비판하기도 하고, 바른 정치를 위해서 힘을 쏟았다. 점점 전씨들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공자가 말하는 사상인 유가를 따르자면 하루종일 예법을 배워도 오래 걸린다며 백성들을 피곤하게 할 뿐이니 들어오지 못하..

춘추전국 20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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