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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61

공문십철孔門十哲

공문십철은 공자의 제자들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수제자의 10인이다.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에 따르면 못해도 제자가 3천, 그중에서 특히 뛰어난 이들이 72인이라 하나 최고봉은 이 10인이다. 이들은 각각 덕행, 언어, 정사, 문학의 4가지 분야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은 오늘날에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을 잘쓰는 글재주가 아니라 옛 문헌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덕행: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冉伯牛)·중궁(仲弓), 안연: 본명은 안회. 공자가 가장 사랑하고 아낀 제자. 공자는 안회가 자공보다 낫다고 직접 말하기까지 한다. 자공 스스로도 이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특출난 제자였던듯 하다. 단사표음으로 가난한 생활을 영위했음에도 도를 잃지 않았으며, 배우기를 몹시 ..

춘추전국 2020.12.16

노나라의 계손季孫씨집안(계문자,계무자,계평자)

노나라 환공의 자손들중 훗날 명문 거대세족을 이루는 이들로 경보, 계우, 숙아의 세명이 있다. 노나라 환공이 죽고 장공이 나라를 다스렸고, 이후 장공이 죽게 되자 장공은 자신의 아들을 군위에 올려달라고 동생들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경보와 숙아가 한 패가 되어 이에 반대했고, 계우가 노나라 장공의 유지를 맞서 장공의 아들을 군위에 올리기 위해 싸웠다. 계우의 협박을 받아 숙아가 자살하고, 계우가 정권을 잡는듯 했으나 경보에 의해 쫓겨난다. 이후 경보가 정권을 쥐고 흔들었지만 분열로 세력이 미약해지고, 계우가 다시 경보를 자살시키고 장공의 아들을 군위에 올렸다. 이리하여 계우의 계씨가문이 노나라의 정권을 쥐고 정치를 도맡아서 하게 된다. 경보와 숙아의 가문은 맹손(중손), 숙손씨가 되어 권력을 분담하게 되었..

춘추전국 2020.12.16

공자와 도가의 도피

논어를 보면 공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들이 공자를 비판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제나라의 대부 안영은 유가에서 말하는 예법이 잡다하기 짝이없어 배우다가 사람이 먼저 죽을 것이라고 비판하여 공자가 제나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도 했다. 초나라 소왕의 신하 영윤 자서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재주가 뛰어난데 초나라에 들어오면 초나라엔 그만한 인재가 없으니 좋은 일이 아니라며 그의 입국을 막기도 했다. 양호처럼 공자가 정치와 현실참여를 강조하면서도 때만 기다리는 것을 은근히 돌려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외에도 논어에는 유교의 번잡한 예법을 비판하는 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비판자들중에서 가장 공자와 갈등했던 이들은 바로 도가계열의 인물들이었다. 이들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는 크게 강한 혐오와 동정..

춘추전국 2020.12.16

위 장공 衛 莊公 태자 괴외蒯聵

위장공은 위나라 제 31대 공작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480년부터 478년이다. 성씨는 주왕실과 같은 성씨인 희씨이며, 이름은 괴외이다. 원래 위영공의 태자이기에 저절로 공작의 뒤를 이을 서열이었으나,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고 아들과 싸우는 신세가 된다. 아버지 위영공의 명을 받아 사신으로 외국을 향하던 길에, 송나라를 지나는데 송나라 사람들의 조롱을 받았다. 송나라 공자 조와 위영공의 아내 남자가 간통하는 일을 송나라 사람들이 조롱한 것이었다. 이에 분노한 괴외는 돌아와서 남자를 죽이려 일을 꾸몄으나 실패해서 도망갔다. 실패한 일도 황당한데, 희양속이라는 이를 시켜서 남자를 암살하려다 희양속이 꾸물거리고 말에 따르지 않아 실패한 것이었다. 희양속은 훗날 내가 성공했으면 역신으로 몰려 살해당했을 텐..

춘추전국 2020.12.16

광견한 사람을 찾다

공자는 말과 행동이 적합한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대신 찾아야할 사람으로 광한 사람과 견한 사람을 꼽았다. 광한 사람은 뜻은 높고 기세는 있으나 행동이 그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공자는 노나라에 광한 젊은이들이 많다하여 잘 가르치고 싶다는 뜻을 비친 바 있었다. 견한 사람은 앎이 부족한 사람이나 자신이 어떤 일을 하지 않을 것인지 정하고 금기를 지키는 사람이다. 한편, 맹자는 광한 사람이 견한 사람보다 위에 든다고 보았다.

춘추전국 2020.12.16

미봉책彌縫策

미봉책은 꿰메어 깁는 계책이라는 뜻이다. 춘추시대 주나라 여왕이 국인폭동으로 쫓겨나고, 그의 아들 선왕이 어진 정치를 펼쳤으나 다시 선왕의 아들 유왕에 이르러 나라가 쇠락했다. 유왕은 첩 포사를 좋아하여 정실 부인 신후 소생의 의구를 폐위시키고 포사를 정실부인으로 삼으려 했으나, 오히려 의구의 외할아버지 신후가 이끌고 온 이민족 군의 공격을 받아 살해당하고 말았다. 뒤를 이어 주나라 평왕이 즉위했으나 전쟁터로 쑥대밭이 된 도읍 호경을 낙읍으로 옮기니, 이것이 동주의 시작이다. 이는 주나라가 약해지고 이전의 권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제후들에게 알린 꼴이었다. 제후들은 더이상 이전과 같이 주나라를 천자로 받들지 않으려 들었다. 이후 주나라 환왕의 시대 이르렀다. 주나라 환왕은 당시 가까운 제후국이었던..

춘추전국 2020.12.16

주나라가 천도하고 춘추시대가 개막하다

주나라가 안정된 국가로 자리잡던 즈음,제 10대 왕으로 여왕厲王이 즉위했다.그는 성품이 몹시 포악하고 잔인한 편이었다.그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싫어하고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을 좋아했다.따라서 간신을 등용하고 주정공과 소목공의 충언은 무시했다.그리고 토지와 산림의 관리권을 회수하려고 했다.이에 백성들이 여왕을 비판하자,여왕은 잔인한 형벌을 내려서 이에 보복했다.백성들은 서로 모여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눈빛만으로 의도를 파악하는 수밖에 없었다.공안정국이 되어 백성들은 피곤해져만 가는데 여왕은 간신들의 말만 들을 뿐이었다.제후들은 더 이상 조정에 와서 왕을 조회하지 않았고,조정의 부패는 끝을 몰랐다.마침내 기원전 841년에 주나라 사람들이 모여 난을 일으키고 여왕을 죽이기 위해 들고..

춘추전국 2020.12.16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자리잡다

주나라를 세우고 천하를 통일한 무왕은 자신의 아버지인 희창을 주나라 문왕으로 모셨다.그리고 은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참여한 이들에게 땅을 분봉했다.이리하여 재상이었던 강상(태공망이라고도 한다.)은 바다를 접한 동쪽 제나라땅에 봉해졌다.이때,은나라 주왕의 포악한 정치를 보다 못해 사라졌었던 미자계가 무왕에게 간했다.“제발 은나라의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이 말은 은나라는 멸망했지만 대라도 이어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당시 많은 은나라 유민들이 전쟁으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되었으며,이들을 뜻하는 상商나라의 商상 자가 교역을 뜻하는 한자가 되기에 이르렀던 상황이었다.무왕은 이 말을 듣고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을 옛 은나라땅의 제후로 임명했다.그리고 자신의 형제인 관숙선管叔鮮..

춘추전국 2020.12.16

농업에 대한 유교의 태도

공자의 제자 번지가 공자에게 농사짓는 법과 씨뿌리고 원예하는 법을 물었다. 공자는 이것이 군자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번지는 그냥 나가버렸다. 이외에도 번지는 공자에게 기술적인 내용을 질문하다가 공자에게 소인배 소리를 듣기도 했다. 공자는 군자불기라 하여, 군자는 특정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specialist가 아닌 두루 통할 수 있는 generalist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었다. 이것을 번지가 어기고 계속해서 질문하자 공자가 비판하게 된 것이다. 번지가 농사짓는 법을 물었을때 공자는 군자가 바른 정치를 하면 농사꾼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어서 성황을 이룰텐데 어찌하여 직접 농사지을 시간이 남아돌겠냐고 말했다. 한편, 맹자 등문공 편에는 농가에 대한 맹자의 비판이 남아있다. 허행은 농가..

춘추전국 2020.12.16

염구冉求

염구는 공자의 제자이다. 염유라고도 한다. 공문십철의 하나로 논어에서 그의 기록을 많이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세무와 경제에 대해 밝은 사람이었는데, 공자는 염구를 전문가로서는 쓸만 하지만 실제로 인한 군자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나라가 쳐들어왔을때 방어에 나서서 제나라 군 70여명의 목을 베는 성과를 얻기도 했었고, 세금걷는 일을 맡아서 조세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머뭇거리는 습관이 있었고, 경제만능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때가 종종 있었다. 공자는 군자가 아닌 전문가의 특성을 보이는 그를 잘 타이르고 가르치려 했으나 그 성격은 바뀌지 않은듯하다. 결국 당시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씨 가문에서 벼슬을 하며 백성들에게서 혹독하게 세금을 걷다가 공자에게 파문선언을 당하기에 이른다.

춘추전국 20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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