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봉책은 꿰메어 깁는 계책이라는 뜻이다.
춘추시대 주나라 여왕이 국인폭동으로 쫓겨나고, 그의 아들 선왕이 어진 정치를 펼쳤으나 다시 선왕의 아들 유왕에 이르러 나라가 쇠락했다. 유왕은 첩 포사를 좋아하여 정실 부인 신후 소생의 의구를 폐위시키고 포사를 정실부인으로 삼으려 했으나, 오히려 의구의 외할아버지 신후가 이끌고 온 이민족 군의 공격을 받아 살해당하고 말았다. 뒤를 이어 주나라 평왕이 즉위했으나 전쟁터로 쑥대밭이 된 도읍 호경을 낙읍으로 옮기니, 이것이 동주의 시작이다.
이는 주나라가 약해지고 이전의 권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제후들에게 알린 꼴이었다. 제후들은 더이상 이전과 같이 주나라를 천자로 받들지 않으려 들었다. 이후 주나라 환왕의 시대 이르렀다. 주나라 환왕은 당시 가까운 제후국이었던 정나라의 정장공과 사이가 안좋았다. 정나라는 장공의 아버지, 할아버지대부터 주나라에서 관직을 맡아 주나라를 섬기던 혈족 가문이었다.주환왕은 정장공의 왕실 경사 직위를 박탈했고, 정장공은 신하로서 왕을 찾아뵙지 않았다. 이에 권위가 손상되었다고 느낀 주환왕이 괵,채,위,진나라의 군사를 모아서 정나라 공격에 나섰다.
제후들이 말을 듣지않아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게 된 것도 사실 천자로서 권위가 실추되는 일이었으나, 여기서 지면 더 비참하고 우스운 신세가 될 터였다. 그러나 정장공은 만백, 제족등의 유능한 신하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고 있어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정장공의 신하 공자 원은 좌군의 진나라 군사들은 싸울 의지가 없으니 공격하면 머지 않아 도망칠 것이니, 그때 적의 진세가 어지러워지면 연합군은 쉽게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장공은 전차를 이끌고 그 사이 사이에 보병을 배치하여 꿰메어 깁듯이 만든 진형으로 적을 격파하는데 성공하고, 주환왕은 부상을 입고 물러났다.
이것이 미봉책의 기원이나, 현재는 의미가 변질되어 임시방편이나 겉만 차리는 얕은 술책을 의미하게 되었다.
'춘추전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자와 도가의 도피 (0) | 2020.12.16 |
---|---|
위 장공 衛 莊公 태자 괴외蒯聵 (0) | 2020.12.16 |
광견한 사람을 찾다 (0) | 2020.12.16 |
주나라가 천도하고 춘추시대가 개막하다 (0) | 2020.12.16 |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자리잡다 (0) | 2020.12.16 |
농업에 대한 유교의 태도 (0) | 2020.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