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이 건국한 한나라는 수백년에 걸치며 중국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나라 초기에는 각지에 왕이 봉하여진 봉건제의 요소가 있었지만, 성이 다른 왕들은 토사구팽당하여 점차 사라졌으며 황실과 성이 같은 유씨 제후들도 점차 땅을 빼앗기며 힘을 잃어갔다. 이리하여 법을 운용하지만 그 처벌은 진나라처럼 혹독하지 않은 한나라 고유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가 성립된다. 이 한나라는 중간에 잠깐 왕망의 신나라에 찬탈당하지만 곧 유씨 일족에 의해 복원된다. 왕망의 찬탈 이전의 한나라를 전한(기원전 206~기원전 6), 찬탈 이후 유방의 후손인 광무제 유수에 의해 재건국된 한나라를 후한(25~220)이라고 한다.
후한은 장자상속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중반기 이후에는 황제들이 단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황태후와 외척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다. 대장군으로 임명된 외척이 횡포를 부리는 등 문제가 발생했고, 145년에는 대장군 양기가 황제인 질제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등 쇠락의 징조가 강하게 나타난다. 질제의 뒤를 이어 등극한 환제(재위 142~168)는 환관과 손을 잡고 외척을 주살하나 오히려 이 과정에서 환관의 힘이 강해지게 된다. 환제의 뒤를 이은 영제(168~189)는 관직의 매매를 부추기는 등 악정을 펼쳤기 한나라는 부패와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고 민생은 도태된다. 184년에 종교적 성격을 띤 농민 반란인 황건의 난이 발발하나 군사력에 의해 진압된다.
영제 시기의 권력자들인 십상시라고 불리는 환관들과, 황제의 외척인 대장군 하진은 서로 권력 다툼을 벌이다가 대장군 하진이 십상시에게 살해된다. 이후 하진파 장군들에 의해 십상시마저 몰락하고, 권력의 공백을 지방에서 올라온 군벌인 동탁이 장악하면서 한나라 황실은 권위가 크게 실추된다. 지방의 군벌과 도적, 지방관들이 너나할 것 없이 중앙 정부의 권위에 반발하기 시작하여 한나라는 사실상 지방 통제력을 잃어버린다. 동탁은 영제의 뒤를 이은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재위 189~220)를 황위에 올리고 권력을 손아귀에 넣었지만 아끼던 부하인 여포의 배신으로 살해당하며 중앙 권력은 진공 상태가 된다.
지방의 다양한 군벌 중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것은 하북 지역을 중심으로 한 원소였다. 원소는 고위 관직을 배풀한 명문 원씨 집안의 일원으로 군사력과 명망 면에서 최강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원소는 중원을 차지하고 헌제를 모시며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던 조조에게 싸움을 걸었으나(관도대전) 내부 배신과 조조의 끈기로 대패하고 만다.
원가는 이후 분열한 뒤 조조에 의해 제압되었으며 이 시점부터 중원과 하북을 모두 보유한 조조 세력의 통일이 거의 확실시 되었다. 조조는 남쪽의 강동 지역을 정벌하기 위해 남쪽으로 향했다. 당시 강동의 호랑이라고 불린 손견의 아들인 손책이 강동 지역을 제압한 뒤 죽자 그의 동생인 손권이 강동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는 황실과 거리가 먼 몰락 황족 출신인 유비와 손을 잡았다. 손권과 유비 세력은 거짓투항계책을 성공시켜서 조조에게 대승을 거둔다. (적벽대전) 이로 인해 조조의 통일이 저지되었다.
한편, 몰락 황족인 유비는 손권의 원조로 조조를 꺾은 뒤 이후 서쪽의 익주 지역에 들어가 익주를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스스로를 한중왕이라 칭한다. 그러나 손권과 형주 땅을 두고 갈등이 생겼고, 결국 손권 세력은 형주에 쳐들어와 형주를 빼앗고 유비와 형제처럼 지냈던 유비의 부하 관우를 죽인다. 유비는 이에 보복하기 위해 손권 세력을 침공하나 패하고 만다. (이릉대전) 당시 조조의 세력은 위, 손권의 세력은 오, 유비의 세력은 한을 칭했으며, 유비의 한나라가 있던 익주 지역을 촉이라고도 불렀기에 촉, 혹은 촉한이라고도 한다. 이후 촉의 승상 제갈량은 북벌을 시도하나 압도적인 국력 차에 밀려 결국 위나라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위나라는 정변에 의하여 귀족 세력인 사마씨 세력에 의해 무너지고, 위나라의 판도를 그대로 이어나간 진나라가 촉과 오를 멸망시키며 삼국은 통일된다. (280)
조조는 법가에 기반하여 백성들을 다스렸고, 둔전제를 실시하여 군사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며 식량을 비축했다. 또한 각종 농업 정책으로 논과 밭을 잃고 떠나간 유민들을 토지에 정착시키기도 했다. 유비는 자신이 황실의 일원임을 내세워 한나라의 계승을 도모하였다. 그가 과거 유방이 웅거했던 지역인 한중을 점령하고 한중왕을 내세웠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손권은 호족들과 연합하여 자연적 지형인 장강을 따라 위에 대항할 만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사람마다 구분 기준은 다르지만 보통 황건의 난이 있었던 184년부터 진나라의 삼국 통일이 완성되는 280년까지의 기간을 삼국시대라고 통칭한다. 훗날 나관중이라는 작가에 의하여 이 시기에 살았던 영웅 호걸들을 등장 인물로 삼아 <삼국지 연의>라는 문학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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