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30년 전쟁

삼긱감밥 2020. 12. 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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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독일 땅에 위치했던 신성 로마 제국은 선거권을 가진 7명(훗날 계속 추가되어 늘어남)의 선제후가 제국을 다스릴 황제를 선출하는 투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중세와 근세 대부분의 시기에 제국 황제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한편,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오스트리아와 남부 독일 제후들은 가톨릭을 신봉했고, 작센과 브란덴부르크를 비롯한 북부 독일 제후들은 루터의 교리를 따르는 개신교를 믿고 있었다. 이것이 갈등의 도화선이 되어 제국내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다가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화의에 의해 구교와 신교의 공존이 제안되어 갈등이 일단락된다.

 

그러나 아우구스부르크 화의에서 인정된 ‘신교’는 루터파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엄격하고 청빈한 삶의 실천과 구원은 예정되어있다는 예정설을 주장한 칼뱅의 믿음을 따르는 신도까지 보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로 인해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게속 제국내에 잠재한다. 이후 1618년 보헤미아에서 구교를 강요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여 보헤미아 귀족들이 제국 관리를 창밖으로 집어던지면서 종교 분쟁이 터지게 된다.

 

합스부르크의 제국 황제는 개전 초기 보헤미아의 적대 세력들을 격파하고 가톨릭 신앙을 강요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전쟁에 덴마크, 스웨덴과 프랑스가 신교 측으로 참전하고 신교 군대의 활약에 구교를 신봉하는 제후의 영토가 쑥대밭이 되면서 전쟁은 30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이를 30년 전쟁(1618~1648)이라고 한다. 전쟁은 국제전으로 비화되었고 구교측에는 오스트리아, 바이에른, 스페인, 신교측에는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참가하게 되었다.

 

전쟁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라고 칭해지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종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스웨덴과 프랑스는 영토를 팽창하였으며, 네덜란드와 스위스는 확실하게 독립 국가가 되었다. 칼뱅파 신도들의 믿음도 인정되었다. 그러나 오랜 전쟁의 결과 독일 지역의 인구는 크게 감소하였고 오스트리아는 제국 황제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하여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패권 국가로 도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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