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집안은 살아남을 수 없다.“
-링컨, 연설에서
독립 이후 미국은 계속해서 산업 발전을 이어나갔으나, 남부와 북부의 분열과 대립 역시 싹트고 있었다. 북부는 산업과 경제가 발달한 공업 발달 지역이었고, 남부는 흑인 노예제를 운영했고 면화 농업이 한동안 주력이었던 공업 미발달 지역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차이 이외에도 북부와 남부 사이에는 흑인 인권을 바라보는 시선의 격차가 있었으며 문화적으로도 남부는 영국식 문화가 강한 편이었다.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갈등이 19세기 초반부터 부글부글 끓어올랐으나 1820년 위도 36도 30분선을 기준으로 북부는 노예제가 없는 자유주, 남부는 노예제도가 있는 노예주로 삼자는 미주리 협정이 체결되며 일단 갈등이 봉합된다.
그러나 이 갈등은 결국 언젠가 터질 운명이었고, 남부에서는 남부에 위치한 주들이 연방을 탈퇴하고 독립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흑인 노예의 삶을 주제로 다룬 해리엇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 집’이 출간되자 갈등은 더욱 고조된다. 1860년 노예제에 비판적이었던 공화당 소속의 링컨(1809~1865)이 대통령에서 당선되자 남부 주들은 연방 탈퇴를 선언하고 아메리카 남부맹방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설립한다. 1861년 4월 남부에서 연방측 섬터 요새를 공격하면서 남북 전쟁이 시작된다.
남부 측에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 버지니아, 아칸소, 노스 캐롤라이나, 테네시 주가 속했으며, 수도는 몽고메리에서 훗날 리치몬드로 이전했다. 남부의 인구는 대략 900만 가량 이었으며 북부는 2200만 이상으로 북부의 인구가 남부의 인구의 2배가 넘었다. 게다가 북부는 공업 위주의 산업 지대였기 때문에 농업 위주의 남부보다 생산력에 있어서 훨씬 우월했다.
남부는 우수한 직업 군인 장교들을 바탕으로 초기 북부군에 큰 인명 피해를 입히면서 타격을 주었다. 이에 맞서 북부는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고 서부를 공략하기 시작했으며 남부의 물자를 초토화시키는 작전을 진행했다. 결국 남부군이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후 남부군의 로버트 리 장군이 항복하고 만다. 1861년에서 1865년까지의 약 4년간의 전쟁 끝에 아메리카 남부맹방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둘로 분열한 미국은 다시 하나가 되었지만, 이를 이끈 대통령 링컨은 종전 5일 후 남부에 우호적이었던 존 윌크스 부스라는 배우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남부에는 한동안 군정이 실시되었다가 해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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