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혁명
하발로프 장군은 비밀리에 정부가 준비한 포고령을 발동했다; 폐하의 명령에 따라 뻬쩨르부르그에 계엄령을 실시한다. (중략) 시장 발카는 풀과 솔을 마련할 수가 없어서 계엄령 포고문을 도시에 붙일 수가 없었다. 이 관료들에게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트로츠키, 러시아 혁명사
동부 유럽에 위치한 러시아는 다른 나라에서 농노제가 사라질 때에도 농노제가 퍼지고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 산업혁명을 하던 19세기까지 농노제를 유지한 후진적인 국가였다. 19세기 중후반부터 러시아는 농노제를 폐지하고 비교적 빠르게 공업화를 이루었다. 서유럽의 자본을 들여오고, 대기업 위주로 빠르게 산업을 육성한 결과였다. 그 결과 러시아는 세계 7위권의 경제를 가진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 7위권의 경제력이라는 것도 열강들과 비교하면 실상은 형편없었다. 러시아의 GDP는 미국의 GDP의 10분의 1이었고, 상대적인 철도 부설율은 독일의 40분의 1이었다. 그렇지만 로마노프 왕조는 남동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고 결국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한다.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와 동맹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동부전선을 맡아 자원을 전쟁 준비에 집중했다. 그러나 개전 초기 수백만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면서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
물자 부족으로 노동자와 군인들은 정권에 대해 엄청난 불만을 키워가고 있었다. 성장한 지 얼마 안된 자본가 세력들은 아직 정치적으로 미숙한 상황이었다. 일부 의원들은 황제에게 조치를 요구했지만 니콜라이 황제는 의회의 요구를 무시했고 결국 불만은 해소되지 않은 채 시위로 폭발한다. 당시의 물자 부족은 심각한 수준으로, 수도 페테르부르크의 시장은 풀이 없어서 도시에 계엄령 포고문을 붙이지 못할 정도였다. 시위 세력이 점점 커져 경찰만으로 진압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군인들이 동원되었으나 진압군으로 파견된 군인들마저 봉기에 가담하면서 로마노프 왕조는 붕괴한다.
당시 레닌은 정부의 추적을 받아 외국으로 은신한 상황이었으며, 스탈린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 운동가들은 유형소에 갇혀 있었다. 따라서 이 봉기는 레닌을 위시로 하는 운동 세력이 직접 지도한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는 황제가 다스리던 나라였으나 이를 기점으로 이전의 의회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임시정부가 조직된다. 이 임시정부는 입헌 민주주의자 의원들이 상당수 가담했다. 한편 봉기를 이끌었던 노동자와 군인을 중심으로 노동자, 군인 소비에트 조직이 생겨나 사회 주도 세력으로 중심을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