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계파의 역사
1. 3김 시대의 정당들은 다 당대표가 절대적인 존재였다. 다른 계파가 이를 거스르고 당대표에게 맞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자신의 지역을 기반으로 두고 활동하는 당대표를 딱히 밀어낼 방법도 이유도 없었다. 이들은 당의 모든 것이었고 이들이 탈당하면 당이 사라지는 것이고, 이들이 당을 만들면 당이 생기는 것이었다.
2. DJ는 대통령이었고 그 이전에는 대선후보이면서 계파의 수장이었다. 이런 사람이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으로 당을 이끌고 당의 의원들이 대부분 호남이나 호남과 수도권/운동권 삼팔육 정치인들의 결합이니 비주류 계파나 공천 떨어진 사람이 척을 지는 일은 있어도 이들이 당을 만들거나 조직적으로 무언가 항명한다거나 이런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3. 노무현과 김정길로 대표되는 비보수정당 야권 정치인들은 여기서 아주 독특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부산에서 활동했다. 지역기반이 호남이거나 아니면 고향이 호남인데 서울서 정치하는 이들과는 달리 이들은 고향과 활동 장소가 완벽하게 부산이었다. 그런데 당은 민주당이니 이들의 존재는 확실히 다른 이들보다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4. 김정길은 대한체육회장이나 행정부장관을 하는 것으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하지만 노무현은 지역주의란 악조건을 딛고 대통령이 되었고, 그의 보좌관들은 최소 국회의원, 잘되면 도지사나 대권후보까지 노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이 친노의 계파로 성장하는 것을 두고볼 수 없었던 동교동계와 민주당 보수세력들은 탄핵으로 나아갔지만 총선에서 대패해서 사실상 영향력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신진 세력이었던 정동영과 김근태는 당을 깨고 신당 창당에 나선다.
5. 하지만 친노와 정동영, 김근태가 연합해 만든 신진 정당인 열린우리당은 초선이 백팔명이나 되는데다가 정부와 유기적인 연계를 이루지 못해 계속해서 분란을 거듭했다. 이들은 선거에서 계속 패하다가 마침내 과거 탄핵에 가세했던 민주당과 합당한다. 그리고 여기에 손학규가 MB와 박근혜를 피해서 민주당에 들어오고 김부겸 등과 손을 잡으면서 계파 수가 증가한다.
6. 손학규는 대선에서는 졌지만 정동영이 대선에서 패해 잠시 주춤한 사이 당권을 잡는다. 물론 총선도 박살났고 본인도 종로에 나가서 박진에게 패한다. 이후 정세균이 당을 잡았다. 이에 대해 정세균계와 친노와 486들이 연합하여 당의 주류를 형성하고, 박지원과 일부 전남의원들이 중립지대에 위치하며, 박주선,정동영,천정배,조배숙이 비주류 연대를 구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분석이 있었다. (언론기사로 기억함)
7. 박주선은 아주 보수적인 사람이고, 정동영은 갑자기 어느시점부터 진보적인 사람으로 바뀌어 현장을 누볐다. 조배숙은 여성 법조인이라는 것 이외는 정동영, 천정배와 같은 임팩트는 없는 사람이었다. 천정배는 국민들의 더 넓은 정치참여를 주장하는등 이들은 비주류로 연합하기만 했지 전혀 정치적인 공통점이 없었다.
8. 당대표를 맡은 정세균은 친노와 관계설정을 우호적으로 잘 해왔다. 참여정부의 장관을 지냈으며, 열린우리당 마지막 당대표로 대통합민주신당 합당 과정을 이끌었고, 자신의 지역구인 전북 일대에서 나름의 세력을 형성한 사람이었다. 친노는 이해찬과 한명숙, 유시민을 비롯한 대권 주자들은 모두 일선에서 잠시 후퇴한 상황이었다. 낙선하거나 선거에 불출마했기 때문이다. 정세균이 당대표를 맡은 2010 지방선거때 김두관이 경남도지사에, 이광재가 강원도지사에, 안희정이 충남도지사, 한명숙이 서울시장에 공천된다. 한명숙은 떨어졌지만 나머지 후보들이 승리하며 친노는 화려하게 복권된다.
반면 정세균은 정동영과는 최악의 관계를 유지했는데, 정동영이 자기를 전주에 공천시켜달라는 것을 떨어뜨려버렸고 정동영이 무소속으로 나와서 당선되면서 둘의 관계는 회복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9. 김근태계=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은 서울이 대부분이 지역구인 민주화 운동가들인데 08년에 서울에서 총선 대패를 겪은 상황이라 세력이 위축되었다. 또한 김근태 의원 작고 이후에는 계파 수장이 없는 계파가 되었다. 이들은 다른 대선 후보의 계파와는 달리 느슨한 계파를 가지고 있다.
운동권 출신이고, 그럭저럭 주류 지도부와 잘 어울리며, 민평련 출신들이 다른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민주주의 강조, 민족주의 성향, 평화통일 정책을 주장한다. 경우에 따라 다른 사람들도 있지만 대강은 그렇다. 게다가 호남지역에서 다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개 수도권 출마자들이었기 때문에 호남 출마에 비해서는 한정된 공천을 두고 크게 싸우는 일도 적었다. 따라서 오히려 계파의 리더가 부재하고 느슨한 계파인 민평련이 다른 계파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모습을 보였다.
10. 김한길은 2007년 탈당사태의 여파로 불출마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2012년 총선에서 다시 돌아왔고, 공천되어 비노 성향의 의원들을 이끌었다. 최재천과 주승용이 김한길계의 대표주자였고, 이들은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가 총선, 대선에서 패한 이후 치고 나온다. 2013년 이후에는 당권을 잡았고 안철수의 새정치연합과 합당하여 더 커지지만 재보궐선거에서 대패하면서 지도부가 붕괴한다. 이후에는 결국 친노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국민의당으로 떠난다.
2015~16년, 정동영,천정배,박지원 등 호남 반노 의원들과 친안 의원들이 안철수를 따라 국민의당에 간다. 민주당에는 반노 세력이 크게 줄어들어 균형이 친노친문에 기운다.
11. 16총선 시점에서는 민주당에 친노, 손학규계, 정세균계, 민평련, 일부 비노의원들이 남은 상황이었다. 김종인의 컷오프로 일부 설화를 빚은 의원들(임수경 등)과 다선 의원들(유인태, 이미경)이 당을 비웠다. 이 과정에서 친노 다선의원들이 물러나고 친문 신진 세력들의 비율이 증가한다. 민평련과 손학규계는 세력을 유지했으나 정작 계파 리더인 손학규는 탈당한다. 이 과정에서 이찬열 말고 아무도 따라가지 않고 당에 남았다. 손학규계 의원중 상당수는 다른 캠프로 떠나거나 (김병욱), 더문캠(이개호, 이춘석, 전현희 등)에 들어가면서 손학규와 결별했다. 오직 이찬열만 손학규를 따라갔다. 인천 남구청장 박우섭은 따라갔다가 나중에 민주당에 돌아온다.
12. 총선 이후의 전당대회에서 친문의 지지를 받은 추미애가 55%로 당선된다. 그외에 이종걸이 비노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20%남짓, 우원식을 비롯한 민평련?의 지지를 받았다고 추정되는 김상곤이 20% 남짓했다.
13. 2017년 시점에서는 워낙 비노의원들이 많이 국민의당으로 떠났고, 친문 세력비가 월등하다. 비노 의원들 중에서도 이종걸 박영선 등이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은 개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이지 비문의 결집체라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당 창당 이전처럼 예전처럼 당대표와 맞다이깔 기세로 덤벼드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사분오열한 비노를 제외하고는 친문, 민평련, 정세균계, 소수 이재명계 정도로 남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도 이재명계를 제외한 계파들은 색이 느슨하고 서로 유연하게 이동하고 있다.
14. 손학규계와 비문 세력은 흩어져버렸다.
정세균은 국회의장으로 갔다가 문재인 정권 후반기에 총리로 자리를 옮겼다. 정세균계는 역사적으로 친노 친문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정세균계 인물들이 청와대나 정부에 진출하거나 친문 핵심인사가 되는 일도 있다. 정무수석 최재성, 정무수석을 지냈던 강기정, 총리 하마평이 있던 김진표 등이 그런 인물이다. 이외에 김영주 이원욱 김성주 의원 등이 있다.
16. 안희정과 그를 따르던 몇 명 남짓의 대전, 충청 의원들은 안희정의 정치적 몰락 이후 구심점을 잃었다.
국민의당에 건너간 이들은 대부분 총선에서 전멸하고 나주화순의 손금주와 박지원 정도만이 민주당 쪽으로 돌아왔다.
17. 이재명은 대중적 지지세는 있지만 그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의원의 수가 적은 것이 약점이다. 정성호, 김병욱 의원 등이 이재명 지사의 지지자다. 의원이 아닌 정치인 중에서는 이재강, 이화영 부지사와 제윤경 등이 있다. 이재명 지사와 경기도에서 업무를 함께한 후보 대부분이 2020 민주당 경선에서 낙선해 신인이 많이 충원되지는 않았다.
18. 2020년 총선에서 청와대 출신 친문 출마자가 상당수 당선된다. 이후 원내대표에 출마한 비문 출신 정성호는 9표를 얻는다.
민주당의 계파 갈등은 15년이 정말 극심했고 이후는 점점 친문 중심으로 편재되는 동시에 완화되는 모양새다. 예전처럼 친노 반노 싸움으로 맞대결 하는 것은 세력 균형추가 친문쪽으로 쏠리며 상상도 하기 어려워졌다. 친문들은 각자의 성향과 친소관계에 따라 느슨하게 분화되고 있으나 이것에 대한 과거 15년 새민련, 16년 새누리당과 같은 갈등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각 정치인들이 선거/당내 선거를 맞이하여 이합집산하는 일은 있어도 예전과 같은 죽기살기식 투쟁은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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