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은 전국시대 조나라의 경이다.
우경은 원래 유세가였지만, 조나라 효성왕에게 유세하여 경의 직위에 임명되었다. 그래서 우경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우씨춘추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이무렵, 조나라는 인상여도 중병에 시달리다 죽고 일찍이 진나라를 격파했던 조사도 지나치게 일찍 죽은 상황이었다. 진나라의 백기가 조나라에 쳐들어왔다. 우경은 우리나라 단독으로 맞설게 아니라 초,위와 합종하여 동맹군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어차피 범수는 우리나라가 사신을 보내봐야 융숭히 대접만할 뿐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묵살되었다. 실제로 범수는 조나라의 사신을 융숭히 대접만할 뿐 화친해주지 않았다. 이것을 본 초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가 딴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 도와주지 않았다. 백기를 막기 위해 조나라에서 염파가 나섰지만, 염파는 백기의 공격에 지구전으로 맞서다가 왜 싸우지 않냐며 왕의 의심을 사 해임되고 조사의 아들 조괄이 장군에 임명된다. 조괄은 진나라에 대패, 장평에서 40만 조나라 군이 모두 생매장된다. 조나라는 수도 한단을 포위당하지만, 평원군이 결사대를 이끌고 급습하여 진나라 군은 돌아간다.
이후, 진나라에서 조나라에 성을 내놓으라고 전했다. 그러자 조정 의견이 둘로 갈라졌다. 누완은 이때 진나라에 성을 주지 않으면 진나라는 노여워할 것이고, 그때 제후들이 조나라를 공격할 수 있으니 차라리 성을 주어 전쟁을 피하고 우호관계를 세우는게 옳지 않겠냐고 답했다. 그러자 우경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말했다.우경에 따르면, 진나라가 성을 받은 다음 다음에 또 달라고 하면 그때는 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또 주면 나라는 점점 작아질 것이고, 그때 거절하면 그 전에 준 것이 의미가 없어저 아예 안 준것만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나라 왕은 우경의 의견을 채택했고, 진나라에 성을 줄 것을 주장한 누완은 진나라에 도망갔다.
진나라 승상 범수는 원래 위나라에 있을때 승상 위제에게 고문당해 치아와 갈비뼈가 으스러져 박살난 적이 있었다. 이에 이를 잊지 않고 있다가 위나라 왕에게 승상 위제의 목을 요구했다. 위제는 겁이 나서 조나라로 달아났다. 위제가 평원군을 의지하자 진나라는 조나라 왕도 협박했고, 조나라 왕은 군대를 풀어 평원군의 저택을 포위했다. 평원군은 위제의 보호를 포기했다.
우경은 평소 위제와 친하게 지냈고, 위기에 빠졌다고 그를 내버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우경은 조나라 승상 직을 버리고 위의 신릉군을 의지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신릉군은 머뭇거렸고, 나중에 받아들이겠다고 나섰으나 그때는 위제가 자살한 후였다. 우경은 위제의 목을 조나라 왕에게 바친 뒤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춘추전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나라 문왕의 아들들 (0) | 2020.12.15 |
---|---|
미자계微子啟 (0) | 2020.12.14 |
오기 , 인간을 객체로 본 사람 (0) | 2020.12.14 |
전국4군자 맹상군 신릉군 평원군 춘신군 (0) | 2020.12.14 |
오자서 (0) | 2020.12.14 |
범저 (0) | 2020.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