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4군자는 전국시대 활동한 4명의 명신들로, 진나라에 맞서 부국강병을 추구하고 식객을 모은데 주력한 인물이다. 제나라의 맹상군, 조나라의 평원군, 위나라의 신릉군, 초나라의 춘신군이 있다. 춘신군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의 군자는 왕의 동생이거나 왕의 일족이었기 때문에, 권력이 강해지면 언제든지 왕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군자들은 왕의 견제를 심하게 받았으며, 파직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묘한 것은 정작 권력을 탐해 왕을 속이려다 살해당한건 평민 출신인 춘신군 한명이라는 점이다.
맹상군
본명은 전문. 제나라 위왕의 막내아들인 전영의 사자로 태어났다. 주로 거친 사람들을 많이 모아 그의 영지였던 설땅은 사마천이 살던 시기까지도 풍속이 매우 거칠었다고 전해진다. 키가 작고 풍채가 볼품없었기에, 맹상군 일행이 조나라를 지나갈때 마을 사람들이 비웃자 그의 식객들이 달려들어 마을 사람들 수백명을 다 죽이고 땅에다 묻어버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전국4군자중에선 가장 많은 식객을 모았고 명성도 가장 컸다고 전해진다.
풍환이라는 식객을 두었는데, 재주가 몹시 신묘하였다. 교토삼굴의 일화를 두었다. 교묘한 토끼는 굴을 세개 판다는 뜻인데, 풍환은 먼저 맹상군에게 빚진 이들의 빚문서를 태워버려 그들의 마음을 샀고, 맹상군이 관직에서 쫓겨나자 다른 나라에 맹상군을 재상으로 쓸 것을 천거하여 제나라 왕이 도로 불러들이게 했고, 공실의 제기를 하사받아 맹상군의 봉지에 종묘를 세우라고 권했다.
진나라에서 그의 명성을 보고 탐을 내 재상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일이 틀어져 도망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그의 식객중 절도에 능한 자가 물건을 훔쳐서 뇌물로 쓰고, 성대모사 흉내에 능한 자가 닭소리를 내어 그 소리를 들은 진나라 관문 수비병들이 아침인줄 알고 문을 열어버리는 바람에 무사히 제나라로 돌아온다.
워낙 가족관계가 복잡하였기 때문에 그가 망하고 설땅은 혼란을 겪다가 다른 제후국에 의해 분할된다.
신릉군
본명은 위무기. 위나라 왕의 동생이었다. 한고조 유방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다. 사마천도 그의 열전은 다른 전국 4군자처럼 ㅇㅇ군 열전이라고 하지 않고 위공자 열전이라고 써서 그를 높였다.
인재를 몹시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른 6국간의 합종을 주장하였다. 진나라가 조나라에 쳐들어와 조나라가 풍전등화 상황에 놓이자, 어차피 조나라가 망하면 다음은 위나라임을 알았기에 위나라 군주의 인수를 훔치고 위나라 장군 진비를 죽여서 그 군대로 조나라를 구한다. 물론 이는 큰 불충이었기에 이후 위나라에서 조나라로 떠나서 평원군과 친하게 지낸다. 위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이번엔 위나라로 돌아가서 군을 이끌고 진나라를 격파한다. 이후 다시는 신릉군 생전에 진나라가 위나라를 이기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너무 강한 명성으로 위나라 왕의 견제를 받아 모든 관직에서 박탈당하고 세월을 비관하여 시름시름 술만 마시다 앓아 죽는다.
평원군
본명은 조승. 조나라 혜문왕의 동생이다. 왕위계승과정에서 일어난 분열때 혜문왕을 지지하였다. 모수자천과 낭중지추의 고사로 유명한 모수등의 식객을 두었고, 나름대로 조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한나라의 상당태수가 조나라에 항복할때, 염파는 방어하기 어려운 지역이라고 이를 받아들이지 말것을 청했으나 평원군은 받아들이자고 했고, 이후 조나라는 장평대전에서 40만 군사를 잃고 수도 한단을 포위당한다. 수도 한단이 포위당해 백성들이 굴주린 상황에서도 평원군은 평소처럼 느긋하게 악기를 연주하고 술을 마시며 평화롭게 지냈다. 깡이 강하거나 별다른 비책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었다. 이걸 보고 한심하게 여긴 다른 사람의 조언(나라가 망하면 당신이라고 무사하겠느냐)을 받아 결사대를 이끌고 진나라 포위군을 물리쳤다.
사마천은 평원군을 귀공자라고 했는데, 그가 국가지도부로서 활동하기엔 안목이 좁았고 지나치게 귀족적이었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위나라 재상 위제가 조나라에 도망쳐오자 그의 보호를 거부한 일이나,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천대해 식객들이 신릉군에게 떠난 일등, 신릉군 위무기에 비해 식견이 짧았음을 나타내는 일화도 많다.
춘신군
본명은 황헐. 전국4군자중 유일하게 평민 지식인 출신이다. 초나라 고열왕을 태자 시절부터 섬겼다. 고열왕이 진나라의 인질로 잡혀있을 때, 목숨을 걸고 먼저 고열왕을 내보낸 뒤 스스로 진나라에 붙잡혔다. 진나라 왕은 그의 용기를 보고 황헐을 풀어주었다. 초나라로 돌아와서 춘신군에 봉해지고,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서 합종책을 이끈다. 다른 6국과 연합하여 진나라 영토에 쳐들어가지만 함곡관을 넘지 못하고 해산하고 만다. 최후가 비참한 인물인데, 고열왕이 아들이 없자 자신의 아들을 밴 첩을 도양왕에게 선물한 뒤, 고열왕이 죽고 아들이 왕이 되면 사실 내 아들이라고 말하고 자신이 권력을 쥘 속셈이었으나 왕이 죽자 첩의 오빠였던 이원에게 살해당하고 권력도 모두 빼앗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