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내용은 사마천의 사기, 손자오기열전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여씨춘추나 한비자에서 바라보는 오기와는 다르니 주의.>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객체로 대하지 말라고 했다. 인간이 물건을 이용하듯이, 다른 사람을 그냥 자신의 효용을 위한 도구로 바라보고 이용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때때로 다른 사람들을 객체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전국시대에는 그런 정도가 극단적으로 심한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오기이다.
오기는 원래 위衛나라 사람이었는데, 천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고관으로 만들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고 재산을 사용하였으나 실패하고 돈은 다 날려먹고 말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이를 비웃었다. 그러자 오기는 마을 사람 30명을 다 죽여버렸다. 오기는 마을을 도망치면서 어머니에게, 내가 재상이 되기 전까진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기는 공자의 제자인 증삼(증자)의 아들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증자는 효를 매우 중시한 학자로, 노나라에 머물며 효에 대해 설파하고 지극 정성으로 부모를 모신 사람이다. 오기가 증삼 밑에서 학문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기의 어머니가 죽게 되었다. 그러나 오기는 마을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에 증삼의 아들은 매우 분노하여 그와 절연하고 말았다. 이후에 오기가 노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제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오기의 부인은 제나라 사람이었으므로, 노나라 사람들은 오기가 열심히 싸우지 않을 것을 걱정했다. 그러자 오기는 집에 돌아가서 부인을 죽이고 돌아왔다.
물론, 춘추시대에도 사람을 객체로 보거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는 이들은 있었다. 송양지인으로 유명한 송양공은, 증나라 임금이 회동에 늦자 그를 삶아죽이려 한 일이 있었고, 초나라에서는 채나라의 태자를 잡아와 인신공양한 적이 있었고, 노나라 3환중 하나인 계손씨에서도 사람을 제물로 삼아 의식을 치룬 적이 있었다. 더 극단적인 예를 찾자면, 송나라 군부에서 대대로 벼슬을 하던 귀족중 하나는 정치상황이 심상치 않자 자신은 관직을 그만두고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대신 총알받이가 되게 하여 가문과 자신을 보존하려한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들의 대부분은 풍습이나 문화, 대의, 자신과 가문의 보존, 대의멸친, 본보기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자신이 장군으로 기용되어 출세를 하기 위해 아내를 죽인 일은 적어도 오기 이전시대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오기는 장군으로 기용되어 전쟁을 했으나, 이후 중용되지 않았다. 오기의 잔인한 성격과 그의 출신성분등이 원인이 되었다.
그때, 위魏나라(오기의 고향인 위나라와는 다른 나라이다)에서 위나라 문후가 여러 인재를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었다. 그는 이리와 적황같은 신하를 등용하여 내치에 힘쓰고, 서문표를 업의 태수로 보내어 땅을 개간하게 하고, 악양을 등용하여 중산국을 멸망시킨 개혁군주였다. 그가 신하 이극에게 오기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이극은 오기가 몹시 여색을 밝히고 탐욕스럽지만 군사를 다루는 수준은 매우 높은 훌륭한 장군이라고 답했다.
위문후는 오기를 등용하여, 서하태수로 삼았다. 서하는 위나라 변경에 위치하여 오기는 그곳에서 진나라와 전쟁을 벌였는데, 훗날 전국을 통일하는 강대국인 진나라였지만 오기를 도저히 이기지 못했다. 오기는 연전연승하며 진나라의 성을 빼앗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의 행태를 가장 낮은 병사와 같이 하고, 자신의 밥을 직접 챙겨다녔으며, 병사들이 다치면 다친 부위를 직접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뱉어내고 종기를 치료하곤 했다. 이것을 보고 병사의 어머니가 한탄했다. 병사의 아버지 역시 오기에게 종기를 빨린 적이 있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열심히 싸우다 죽었는데, 아버지에 이어 아들 역시 열심히 싸우다 죽을 것을 걱정한다는 것이었다.
오기의 성품은 어떤가? 자신을 비웃은 사람들을 전부 베어 죽인다음 사라질만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또한 출세에 방해가 되면 자신의 아내마저 죽여버릴 정도의 결단력을 지녔다. 그가 왜 군사들과 행동을 같이하고 고름을 직접 입으로 빨아냈을까? 나는 오기가 군사들을 존중함으로써 전쟁에 승리하여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해내는 그의 성품으로 보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위나라 문후가 죽고 위나라 무후가 즉위했다. 어느날, 위무후가 위나라의 산천을 살피며 아름다워 위나라의 보배가 될만하다고 말하자, 오기는 나서서 나라의 보배는 군주의 덕행에 있는 것이지 산천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따졌다.
위나라에서 재상 직위를 신설하여 전문을 그 자리에 앉혔다. 오기는 전문에게 가서, 삼군을 이끌고 전쟁을 하는 것도, 관리를 다스리고 창고를 채우고, 진나라 군사들의 동진을 막고 조나라와 한나라를 복종시키는 것도 모두 내가 뛰어난데 왜 당신이 재상이냐고 따졌다. 전문은 왕이 어리고 민심이 심상치않은 이런 때에 재상을 하는 것이 오기에게 이로운 것인지 말하여 설복시켰다.
이 두가지 일화로 보았을때, 젊었을 적 오기의 자존심은 나이가 들어서도 바뀌지 않은듯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군주에게도 바로 말했다. 자신이 높은 지위에 가지 못하면 능력없는 자에게 가서 따졌다. 그를 싫어하는 이들이 많이 생겼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위나라 재상 전문이 죽고 공숙좌가 임명되자 공숙좌는 오기를 내쫓을 음모를 꾸민다. 공숙좌의 수하는 오기가 명예를 드높이고, 지조가 있으며, 청렴한 사람이라고 말한뒤, 무후로 하여금 오기에게 공주를 아내로 주도록 하고, 그 공주의 화를 돋워 공주가 공숙좌를 경멸하도록 하게 했다. 오기는 공주의 그런 모습을 보고 결혼을 거부했고, 무후는 자신의 딸을 거부한 오기를 의심하고 믿지 않게 되었다. 오기는 초나라로 떠났다.
초나라 도왕은 오기가 현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오기를 재상으로 삼았다. 오기는 법제를 정비하고, 쓰잘데기없는 관직을 다 없앴으며, 왕실과 먼 친척인 이들의 봉록을 다 없애버려 재정을 튼실히 했다. 초나라는 강해졌지만, 오기에 의해 쫓겨난 이들은 몹시 분노하여 언제 오기를 죽일지만 기다렸다. 이윽고 도왕이 죽자, 귀족들은 군사를 이끌고 오기를 죽이러 갔다. 오기는 죽음을 당할 위기에 놓이자, 꾀를 냈다. 당시 초나라에는 왕의 시신을 훼손한 자를 벌하는 법이 있었다. 오기는 초나라 도왕의 시신위에 엎드렸고, 그 위에 수많은 화살이 솓아져 오기와 도왕을 꽂았다. 오기는 이렇게 죽고 말았다.
도왕의 아들은 왕으로 등극한 뒤, 도왕의 시신에 화살을 꽂은 이들을 모두 찾아 다 죽이도록 명했다. 이리하여 오기를 죽인 70여 가문의 귀족들도 모두 죽고 멸문당하고 말았다.
*오기에 대한 평가는 매우 엇갈린다. 오기와 정적관계에 있었던 공숙좌의 수하는 오기가 지조있고, 청렴하며, 명예를 드높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기의 스승이던 증삼의 아들은 어머니가 죽어도 찾지 않는 오기의 모습을 보고 그와 절연했다. 오기는 출세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죽일만큼 잔인한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출세를 위해 자신의 군사의 종기 고름도 입으로 빨아내는 사람이었다.
대체적으로, 그가 매우 자존심이 강하고(자신을 비웃은 사람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왕 앞에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음), 지략과 용병술이 뛰어나며(오기가 서하태수로 있던 당시, 진나라는 엄청난 강대국이었지만 끝내 오기를 이겨내지 못했고, 초나라는 그의 개혁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타인에 대해 배려심이 적었던 것(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바로 따지고, 반대 세력의 움직임을 신경쓰지 않았다.)은 맞는듯 하다.
내 생각에, 그를 설명하는 그의 가장 강한 특징은, 바로 타인을 객체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뜻과 성공을 실현하기 위해서, 나머지 모든 사람을 다 도구로 취급했다. 그는 도구를 잘 쓰기도 하고 수틀리면 바로 내팽개쳐버리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했지만, 어떤 것도 그는 자신보다 더 소중히 여기지 않고 배려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연나라에서 쫓겨났지만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연나라 소왕의 은혜를 잊지 않았던 악의와 비교되고, 복수심과 자존심이 매우 강했지만 끝까지 주군을 위해 충성을 다했던 오자서와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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