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주나라 문왕이 보았을 때 아들들중에서 어질고 믿을만한 이들은 무왕 희발과 주공단 둘뿐이었다. 그래서 백읍고는 후계자에서 제외되고 희발이 낙점된다. 또한, 각 형제들끼리는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주나라에서 벼슬을 한 것은 무왕을 제외하고 주공단, 위강숙과 염계재 셋뿐.
*장남 백읍고
주나라 문왕 희창의 첫째아들. 어질지 못하여 문왕에 의해 배제되었으며, 문왕이 죽기 전에 이미 죽은 상황이었다. 일부 서적에서는 주왕 제신이 백읍고의 고기로 요리를 만들어 희창에게 강제로 먹였다는 주장도 있다.
*차남 희발
주나라 무왕 희발. 주나라 문왕 희창이 죽자 그 지위를 계승하였다. 문왕의 대업을 계승하여 군대를 이끌고 은나라의 주왕을 죽이고 은나라를 멸망시킨다. 이것을 역성혁명이라고 한다. 이후 주나라에 의한 봉건을 시행하나 오래되지 않아 죽고 왕위는 아들 성왕에게 넘긴다.
*3남 관숙선
은나라 주왕의 아들인 무경을 감시하도록 명령받은 감시자중 한명이었으나, 도리어 무경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주공단과 성왕에게 대항한다. 반란을 실패했고, 무경과 함께 죽음을 당한다. 여러 기록에서 반란자로 언급되는 점, 같이 반란을 일으킨 감시자 채숙도는 유배형에 그친 점을 보아 반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인다.
*4남 주공단
주나라 공작 희단. 역성혁명 이후 제나라 땅을 떼어받아 노나라 공작에 봉해졌다. 하지만 주나라가 안정되지 않았고 성왕이 어림을 이유로 봉읍으로 가지않고 주나라에서 정치를 계속했다. 관숙선, 무경, 채숙도등의 반란을 진압하고 섭정을 이끌었다. 장남 백금을 노나라에 대신 보내 노나라 공작 작위를 잇게하고 스스로는 주나라 공작으로 지냈다. 한때, 조카인 성왕에게 충성을 의심받아 도망친 적도 있었지만, 성왕이 병들었을때 차라리 자신으로 하여금 대신 병을 치르게 해달라고 빈 것이 알려져 돌아오게 된다. 충성스러운 신하의 대명사이며 유교문화권에선 성인으로 묘사된다.
*5남 채숙도
은나라 주왕의 아들인 무경을 감시하도록 감시자에 봉해졌으나 오히려 무경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을 실패했지만 죽임을 당한 관숙선과는 달리 나라밖으로 유배당했다. 유배때 10승의 병거와 70명의 죄수들로 하여금 따라가게한 것으로 보아 관숙선보다는 죄가 덜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들 호는 주공단에 의해 노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공이 인정되어 다행히 채나라 지위를 잇게 된다.
*6남 조숙진탁
역성혁명후 조나라에 봉해졌다.
*7남 성숙무
역성혁명후 성나라에 봉해졌다.
*8남 곽숙처
어떤 기록에서는 관숙선, 채숙도, 무경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제후직을 박탈당했다는 말도 있으나, <춘추좌전>등에서는 반란을 일으킨 기록이 없어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반란자로 보았을 때는 관숙선, 채숙도, 곽숙처 3명을 3감의 난의 3감으로 본다.
*9남 강숙봉
무경의 반란 이후 은나라 유민을 맡아 다스리게 되어 위나라에 봉해졌다. 또한 주나라 조정에서 사구 지책을 맡았다.
*10남 염계재
나이가 너무 어려서 역성혁명 이후 제후로 분봉되지 못했다. 주나라 조정에서 사공 직책을 맡았다. 강숙봉과 염계재의 정치는 후대에 귀감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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