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항우의 분봉

삼긱감밥 2020. 12. 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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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을 죽이려는 계략이 실패했지만, 유방을 계속해서 견제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원래 회왕은 관중에 제일 먼저 도달하는 자에게 관중 땅을 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항우는 관중 땅은 자신에게 항복한 장한, 사마흔, 동예에게 주어 옹왕, 새왕, 적왕으로 봉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항복한 진나라 왕 자영을 살해했다. 유방의 관대한 통치를 바라고 있던 관중 사람들은 모두 항우에게 실망했다. 장한, 사마흔, 동예는 항우에게 항복하여 진나라 군사를 생매장당하게 만든 사람들이었다.

 

 

항우는 유방을 한나라 왕으로 봉하고, 중국 서남부 구석인 촉과 파 땅에 보냈다. 그리고 군대 10만 명 중에서 3만만 데리고 들어가도록 했다. 훗날 삼국지의 유비가 점령하는 바로 그곳이다. 다행히 항백이 항우에게 간한 덕분에 유방은 관중에 연결되는 출입구인 한중 지역을 받았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유방은 초나라 사람이고 그의 군대나 장수들도 모두 초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초나라는 중국의 동남부 지역이다. 그런데 서남부 지역에 유방 세력을 쳐박아 버리니 사람들도 낙담하고 장수들까지도 고향 생각이 간절하게 되었다. 때문에 봉지로 가는 유방군은 점점 이탈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유방을 처음부터 모셨던 패현 사람인 소하가 사라졌다. 소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관리였다. 그런 소하가 사라지자 유방은 화를 냈다.

 

 

얼마 되지 않아 소하가 유방에게 돌아왔다. 소하는 자신이 다른 장수를 찾으러 갔다 오느라 떠난 것이라고 답했다. 유방이 그 장수가 누구냐고 묻자, 소하는 한신이라고 말했다. 한신은 원래 초나라 사람으로, 항우 밑에서 하급 관리로 있던 사람인데 유방 세력에 합류했었다. 딱히 특별한 중책을 맡지는 않았다. 그런 한신이 봉지로 향하는 유방을 떠나자 소하가 급하게 찾아가서 데려온 것이었다.

 

 

나아가 소하는 유방에게 한신을 대장군으로 둘 것을 권했다. 소하는 유방에게 평소에 워낙 건방지고 남한테 무례하게 구는데, 그러지 말고 한신에게는 예의를 잘 갖추어서 격식을 갖추어서 맞이할 것을 권했다. 워낙 신하와 군주 간에 격식이 없었던 유방 세력이었기에 가능한 직언이었다. 유방은 소하가 권하는 대로 예의를 갖추어서 한신을 대장군에 임명한다. 다른 장군들은 자신이 대장군에 임명되는 줄 알고 있다가 갑자기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자가 대장군이 되니 크게 경악했다.

 

 

한신은 초나라에 있을 때 별다른 관심도 받지 못했고, 어릴 적엔 건달들 가랑이를 기는 굴욕을 당하며 아낙네에게 밥을 얻어먹고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는 변변찮은 장례나 묘지도 마련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소하는 그런 자를 대장군으로 추천했고, 소하를 신뢰했던 유방은 바로 그를 대장군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한신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유방에게는 다행히도, 항우는 관중에서 머물지 않고 다시 동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대로 18명의 제후를 왕으로 분봉했다. 유방은 한왕으로 삼아 파, , 한중을 다스리게 두었다. 항우 본인은 팽성에 도읍을 두고 서초패왕이라는 직위를 얻었다. 그리고 유방에게 주기로 약속되어 있던 관중은 셋으로 나누어서 자신에게 항복한 장한을 옹왕에, 항량을 도운 적이 있던 사마흔은 새왕에, 장한에게 항복을 권한 도위 동예는 책왕에 봉했다.

 

 

위나라의 왕족 위표는 서쪽으로 옮겨 서위왕으로 봉했다. 조나라 상국이었던 장이는 조나라 땅을 다스리는 왕으로 삼고 상산왕으로 봉했다. 원래 조나라 왕이었던 조헐은 북쪽의 대나라 왕으로 봉했다. 조나라 장군 사마앙은 은왕으로, 장이의 부하 신양은 하남왕으로 봉했다. 진여는 관중을 따라오지 않았기에 작은 고을만 주었다. 한나라 왕족 한성은 한나라 왕으로 삼았다가 나중에 죽였다.

 

 

제나라는 셋으로 나누어서 원래의 제나라 왕을 교동왕으로 하고, 자신을 따라온 전도를 제나라 왕에, 자신에게 항복했던 전안을 제북왕에 봉했다. 제나라의 진짜 실권자이자 실제적인 통치자인 전영에게는 자신을 돕지 않았음을 이유로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연나라 왕은 원래 한광이었지만, 한광은 요동으로 쫓아내고 그 땅에는 자신을 따라 관중에 들어간 장도에게 주었다. 이외에 대륙의 남쪽 지역인 형산왕에 오예를, 임강왕에 공오를, 구강왕에 영포를 봉했다.

 

 

항우의 분봉은 잘못된 것이었다. 항우는 관중에 처음 들어가는 자에게 땅을 주겠다고 말한 회왕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것은 유방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초나라 건국의 명분이 끊어진 가계를 다시 잇고 사람을 모으는 데에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치적으로 타격이 될 조치였다. 혼돈한 천하에서 명분을 다 지킬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유방 견제라는 실리라도 완전하게 제대로 챙겼어야 했다. 그러나 항우는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항우는 옛 관중 땅을 옹, , 적으로 나누어 각각 장한, 사마흔, 동예를 봉했다. 장한은 진나라의 옛 관리였지만, 항우에게 항복했고 나중에는 자신의 휘하 군사들이 학살당하는 빌미를 만든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왕으로 세운들 진나라 사람들이 진심으로 따를 리가 만무했다.

 

 

장이와 조헐의 사이를 갈라놓은 것도 문제였다. 이들은 원래 조나라의 이름 하에 한 세력을 이루었다. 그런데 조나라왕 조헐을 대나라로 옮기고, 상산왕이라는 이름하에 조나라를 장이에 맡긴 것은 나쁜 계책이었다. 조헐은 멀쩡한 자신의 땅을 장이에게 내주고 변방으로 자신을 보낸 분봉을 원망할 것이었다.

 

 

항우는 또한 자신의 부하들을 시켜서 초나라 회왕을 살해했다. 이로써 제후들이 초나라를 따를 명분을 잃었다.

제나라에 대한 분봉이 최악이었다. 제나라는 본래 진에 맞먹을 정도의 거대한 부국이다. 전영은 항우나 유방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세력을 모은 사람이었다. 그는 제나라의 진짜 실권자로 자신의 이름하에 사람들을 모아온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을 무시하고 봉하지 않은 것에 반대하여 곧바로 반란을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을 쫓아냈다.

 

 

장이와 사이가 악화되었던 진여는 궐기한 전영에게 군사를 빌려서 장이를 공격해 내쫓았다. 그리고 대나라 왕으로 갔던 조헐을 데려와서 조나라 왕으로 삼았다. 조헐은 진여를 대나라 왕으로 삼았다. 진여는 대나라 왕이 되었지만 조나라 정권이 불안하다고 보고 대나라에 가지 않았다. 대신 실질적인 조나라의 실권자가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대나라에는 자신의 부하인 하열을 보내서 다스렸다.

 

 

장이는 과거에 유방과 친했지만, 항우에게 분봉을 받았기 때문에 쫓겨난 이상 항우에게 몸을 맡기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이 장이에게 추후에는 유방의 한나라가 초나라를 격파할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유방에게 향했다.

 

 

전영의 궐기에 분노한 항우는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로 향했다. 항우는 전영을 쳐부쉈고 전영은 도망치다가 살해당했다. 그런데 수괴를 죽였음에도 제나라와의 전투는 끝이 나지 않았다. 항우의 학살 때문이었다.

 

 

항우는 살육을 좋아했다. 항우는 다른 군대를 격파하고 성을 함락시키면 그들을 잘 대해줘서 다른 사람들도 항복할 마음이 들게 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항우는 항복한 자는 모두 학살했다. 이 때문에 한번 항우와 싸운 이들은 죽기 살기로 투쟁할 뿐 항복할 수가 없었다. 항복하면 항우에게 살해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약한 세력이어도 항우와는 처절한 전투를 벌였다. 항복해봐야 항우에게 살해당할 터이니 남은 제나라 사람들은 전영이 죽었는데도 항복하지 않았다. 제나라 사람들이 항복하지 않고 처절하게 전투를 이어나가자 항우는 제나라에서 발이 묶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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