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두번째 패자 진문공 희중이가 죽고, 아들 진양공 희환이 왕위에 올랐다. 희환은 아버지의 패권을 그럭저럭 잘 유지하고 효산에서 진秦나라를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7년만에 죽고 말았다.
희환에게는 아들 희이고가 있었는데, 이고가 너무 어려서 당시 집권파 대신들은 아예 이고를 배제하고 새로운 후계자를 찾기 시작했다. 조최의 아들 조돈은 진秦나라에 있던 공자 옹을 추천했고, 호언의 아들 호역고는 공자 낙을 추천했다. 조돈은 호역고가 추천한 공자 낙은 서열도 너무 낮고 강대한 국가의 힘을 빌리기도 어렵다고 주장하며 공자 옹이 군위에 올라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윽고 대신들간의 전쟁이 발발, 조돈은 공자 낙을 살해했고 호역고는 조돈의 세력 사람인 양처보를 죽였다.
결국 조돈의 세력이 승리하여, 호역고는 진나라 바깥으로 도망간다. 이리하여 호돌과 호언,호모를 이어 내려오던 호씨 세력이 붕괴하고 말았다. 정권을 잡게된 조돈은 공자 옹과 진秦나라 세력을 불렀으나, 이때 진양공 희환의 아내였던 목영이 대부들에게 어찌하여 진양공의 명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부르는 것인지 따졌다. 이것은 꽤 난처한 일이었는데, 조돈과 다른 대신들은 태자를 돌볼 생각은 안하고 다른 공족을 데려오려한 것이어서 대의명분이 없었다. 조돈은 태자의 어머니와 여론을 의식하여 결국 자기가 데려오려 했던 공자 옹과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쫓아내버렸다.
이리하여 이고가 왕이 되니, 진영공이다. 그가 어렸을 때는 조돈이 집정하여 정치를 맡았다. 진영공이 자라자 그는 점점 포악하게 변해갔고, 조돈과 사회는 크게 탄식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을 가벼이 죽이니 진영공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꾸 간하는 조돈을 죽이기 위해 진영공이 사람을 보냈으나, 조돈이 아침에 일어나 나랏일을 생각하며 마음가짐을 바로하는 모습에 그를 죽이지 않았다. 암살은 실패했지만 조돈은 결국 임금을 피해 달아나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의 일족인 조천이 진영공을 죽이고 조돈은 돌아왔다.
이때 진나라의 사관인 동호가 조돈이 왕을 죽였다고 썼다. 이에 조돈이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음을 항변하자, 동호는 당신은 군주가 죽었을 때 나라안에 있었고(나라 바깥으로 도망치는 중이었지만 국경을 넘기 전이었음), 돌아와서는 군주를 죽인 사람을 벌하지도 않았으니 당신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조돈은 그를 죽이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이것이 바로 고사성어 동호직필董狐直筆의 유래이다. 공자는 이를 두고 "조돈이 국경을 넘었더라면 악명을 얻지 않았을텐데." 라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