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공문십철孔門十哲

삼긱감밥 2020. 12. 16.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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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십철은 공자의 제자들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수제자의 10인이다.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에 따르면 못해도 제자가 3천, 그중에서 특히 뛰어난 이들이 72인이라 하나 최고봉은 이 10인이다. 이들은 각각 덕행, 언어, 정사, 문학의 4가지 분야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은 오늘날에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을 잘쓰는 글재주가 아니라 옛 문헌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덕행: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冉伯牛)·중궁(仲弓),

 

안연:  본명은 안회. 공자가 가장 사랑하고 아낀 제자. 공자는 안회가 자공보다 낫다고 직접 말하기까지 한다. 자공 스스로도 이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특출난 제자였던듯 하다. 단사표음으로 가난한 생활을 영위했음에도 도를 잃지 않았으며, 배우기를 몹시 좋아하여 호학하는 제자라고 칭찬받았다. 불행히도 젊은 나이에 일찍 죽고 말았다. 공자는 그의 장례를 자신의 아들과 같이 하고자 하였다.

 

민자건: 본명은 민손. 몹시 효성이 지극하여 공자는 그의 효성을 칭찬하였다. 민자건의 부모와 가족이 민자건이 효자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에 따지지 않았을 정도라고 한다. 당시 군주의 권력을 빼앗아 정권을 잡은 계손씨 집안이 부정하다고 여겨 출사하지 않았다.

 

염백우: 본명은 염경. 덕행이 지극하여 공자가 아낀 제자로 추정되나, 매우 위중하고 극단적인 병(한센병으로 추정되기도 함)에 걸리고 말았다. 공자가 그의 손을 어루만지며 병에 대해 탄식한 내용이 논어에 있다.

 

중궁: 본명은 염옹. 공자에게 왕의 그릇이 될 사람이라고 칭찬받은 사람. 이런 칭찬을 받은 사람은 제자중에서도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비범했던 모양. 그러나 친족혈통 족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공자가 그를 두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할 필요성을 말하는 부분에서 짐작할 수 있다.

 

언어: 재아(宰我)·자공(子貢),

 

재아: 본명은 재여.  말이 뛰어났지만 그 행동은 미치지 못하여 공자로 하여금 엄청난 탄식을 하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공자는 재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말로 사람을 못믿게되었다고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기까지 했다. 언어능력은 뛰어난 것으로 추정되나 공자와 엄청난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논어를 살펴보면 공자가 재아를 혼내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자로를 아끼면서 혼내는 것과는 달리 그냥 공자를 매우 분노하게 만드는 부분이 많다.) 유교의 장례문화를 비판하여 공자를 대로하게 만드는가 하면, 낮잠을 자다가 공자에게 썩은 흙으로는 담장도 못만든다는 극단적인 비난을 듣기까지 한다. 이후 제나라에 출사하였으나, 원래 진나라에서 제나라에 망명왔던 전씨일족이 군주를 위협하여 친군주 세력들을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살해된다.

 

자공: 본명은 단목사. 말에 매우 뛰어났을 뿐아니라 돈을 모으고 예측을 하는데에도 뛰어났다. 그는 외교관으로 활동하여 각국을 누비기도 했고, 돈을 모아 거부가 되어 제후들의 환대를 사기도 했다. 사마천은 사기 중니제자열전에서 그의 노력으로 공자의 학문이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춘추좌전에는 그가 외국 군주의 몰락을 예측하고 그것이 이루어져 공자가 자공이 교만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부분이 있다. 별의별 능력이 매우 출중하여 공자가 죽은 후에 다른 사람들이 자공이 겸손한척 하는 것이지 사실은 자공이 공자보다 뛰어난 것은 아닌가 하고 물을 정도였다.

 

그러나 자공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었다. 생전에는 자신이 안회만 못하다고 여겼고, 죽어서는 공자를 지극히 모셔서 다른 제자가 공자의 3년상을 지낼때 혼자서 6년상을 지냈다. 자공이 끝내는 인의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정사: 염유(冉有)·계로(季路),

 

염유: 본명은 염구. 논어에서 그의 기록을 많이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세무와 경제에 대해 밝은 사람이었는데, 공자는 염구를 전문가로서는 쓸만 하지만 실제로 인한 군자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나라가 쳐들어왔을때 방어에 나서서 제나라 군 70여명의 목을 베는 성과를 얻기도 했었고, 세금걷는 일을 맡아서 조세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머뭇거리는 습관이 있었고, 경제만능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때가 있어 군자불기(군자는 특별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generalist, 두루 통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공자의 주장)에 반하는 인물로도 그려진다.

 

공자는 군자가 아닌 전문가의 특성을 보이는 그를 잘 타이르고 가르치려 했으나 그 성격은 바뀌지 않은듯하다. 결국 당시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씨 가문에서 벼슬을 하며 백성들에게서 혹독하게 세금을 걷다가 공자에게 파문선언을 당하기에 이른다.

 

계로: 아마 이 계로는 자로의 오자가 아닐까 하는 의견이 있다. 자로의 본명은 중유이며, 공자의 제자들중에선 맏형격이었던 사람이다. 거칠고 성질이 급한 편이었다. 염유과 경제관료다운 사람이었다면 자로는 장군의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거친 기질을 다스리기 위해 공자가 그를 훈계하고, 깨우치게 하고, 아끼는 장면이 논어에 참 많이 나온다. 공자가 그를 혼내자 그 아랫 제자들이 자로를 무시했는지 다시 자로를 약간 띄워주는 장면도 있어 참 읽으면 재미있다.

 

자로는 직선적이고 곧은 성격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당하였다. 그는 위나라의 대부 공회에게 출사했다. 위나라의 군주는 출공이었는데, 아버지 괴외가 나라 밖에 있는 틈을 타 군위에 오르고 아버지가 못돌아오게 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괴외가 혼량부등과 모의하고 공회를 협박하여 혼란을 일으킨다음 출공을 쫓아내고 군위에 오르니 괴외가 바로 장공이 된다. 이 과정에서 공회가 괴외를 도운 것을 자로가 불의라고 공회를 죽여야 한다고 간했으나 오히려 쿠데타 세력들에게 살해당했다. 죽을 때까지 군자는 의관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며 관을 고쳐 쓰고 죽었다. 공자는 위나라에 난리가 터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로가 죽을 것을 직감했다.

 

문학: 자유(子游) ·자하(子夏)

 

자유: 본명은 언언. 무성이라는 고을을 다스리며 공자의 칭찬을 들은 기록이 논어에 남아 있다.

 

자하: 본명은 복상. 예에 능했다고 한다. 훗날 전국7웅중 하나인 위나라의 군주 문후의 스승이 된다. 자식이 죽자 너무 슬픔에 몸을 다친 나머지 눈이 멀고 말았다.

 

이외의 뛰어난 제자로 담대멸명(자우), 전손사(자장) 등이 있었다. 후대의 중국 사람들은 안회가 성인으로 추존된 이후에 1인이 비자 이 자리에 전손사(자장)을 올리기도 했다.

 

자우: 본명은 담대멸명.  용모가 매우 추하고 비루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공자 밑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후 노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서 살았는데, 그의 높은 덕에 사람들이 그를 따라 그를 믿고 따르는 이가 수백명이나 되었다. 공자는 자신이 외관으로 사람을 잘못 판단하여 실수를 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자장: 본명은 전손사. 관료로 벼슬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평소에는 별로 꾸준하고 성실한 사람이 아니었던듯 하다. 훗날 공자의 제자들이 그를 인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며 비판하는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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