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이 항우군의 공세를 방어하는 동안, 항우의 세력에서 넘어와 항우 세력을 잘 알고 있던 진평이 꾀를 냈다. 바로 이간계를 쓰자는 것이었다. 그는 항우가 뛰어난 책사인 범증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둘의 사이를 더 벌리기로 결심했다. 진평은 계략을 짰다.
진평은 우선 유방에게 많은 돈을 받아서 첩자 활동에 사용했다. 초나라로 간 첩자들은 종리매를 비롯한 초나라 장군들이 공을 세웠는데도 항우의 분봉에서 제후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나라에 투항하고 항씨를 죽이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항우는 그 소문을 믿고 장군들을 의심했다. 그리고 정탐을 위해 사신을 한나라에 보냈다.
항우의 사신이 도착하자, 유방은 풍성한 잔치상을 준비하고 융숭한 대접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항우의 사신을 보더니 범증이 아니라 항우가 보낸 사자였냐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화려하게 잘 준비된 잔치상을 가져가서 푸성귀로 만든 엉망인 상을 내놓게 했다. 항우의 사신은 떠났다.
사신은 자신이 본 것을 돌아가서 항우에게 보고했다. 항우는 자신보다도 범증의 위세가 더 강한 것인가 의심에 빠졌다. 범증은 당시 유방이 방어하는 형양성을 공격해 유방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항우는 범증을 의심해 범증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범증은 너무 화가 났다. 자신의 충성이 이렇게 대접받는 것에 질려버린 범증은 이제 항우 마음대로 일을 해도 될 테니 사직하게 해주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항우가 이를 허락하자 범증은 군대를 떠나서 아예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가는 길에 등창이 나서 죽고 말았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진평의 계략이었다. 진평은 항우와 범증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유방에게 항우의 사신을 푸대접하는 연기를 하도록 시킨 것이었다. 항우는 평소 자신과 같은 항씨나 처가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많은 공을 세운 장수라도 의심했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사람들을 의심하는 버릇이 있는 항우가 진평의 계략에 당하고 만 것이다.
역이기가 형양성에서 방어중인 유방에게 건의를 했다. 역이기가 보기에, 지금 멸망한 6국의 후예들을 다시 왕으로 삼고 그들에게 인수를 준다면 유방은 황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봉해진 6국의 후예들은 감동하여 유방을 따를 것이고, 그 신민과 함께 싸운다면 항우를 이길 것이라는 논리였다. 유방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채택하고 제후들을 위한 인장을 만들도록 했다.
장량이 이 이야기를 듣고 유방에게 누가 이런 계책을 올리냐고 따졌다. 장량은 과거에 은나라와 주나라가 봉건제를 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이라고 보았다. 장량이 보기에 현재의 유방 세력은 적을 이길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고, 민심을 완벽하게 얻은 것도 아니었고, 무력의 사용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고 가족과 이별하면서도 유방을 따르는 이유는 공을 세워서 제후가 되기 위함이다. 이들은 유방이 6국의 후예를 봉하면 뿔뿔이 흩어져 다른 사람을 섬길 터였다. 또한 새로 만들어진 6국은 약하여 결국 다시 항우를 의존할 가능성이 높았다. 유방은 이 이야기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만들던 인장을 다 없애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