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마사

하이켈하임 로마사를 읽고

삼긱감밥 2021. 3. 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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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하이켈하임 로마사를 읽고 있다. 이 책은 사실 나온지 꽤 된 책이므로, 이 책의 내용과 실제 연구성과가 지금 봐서는 다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책이 굉장히 훌륭하게 잘 쓰여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로마의 성립부터 멸망까지를 다룬다. 각 시기를 저자가 구분해두었고, 시기에 대한 설명이 지나가면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 저자가 분석하고 당시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설명이 뒤따라오는 식이다. 

 

저자에 따르면, 로마가 위치한 인근 지역들은 매우 좋은 지리적 입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북부 지역에서 거대한 적이 등장하기 전에 로마 인근을 통일하면 거대한 강력한 존재로 발돋움하기 쉬운 구조였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인근 고대 도시들과 강한 결속을 맺었으나, 에트루리아 인들은 그런 로마의 결합 보다는 느슨한 관계를 자신들의 이웃 국가들과 유지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광산을 바탕으로 무역에 나서고 로마의 왕도 배출했지만 결국 로마에 패배했다. 

 

중부 이탈리아를 장악한 로마는 이후 마그나 그라이키아, 현재의 이탈리아 남부 지역으로 내려갓다. 이들은 로마보다 결속이 약했고 전쟁 기간 동안에도 분열되어 있었다. 때문에 초반에 로마가 더 강한 세력이 아니었고 에페이로스의 피로스가 로마에 적대했음에도 로마가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초기 로마 사회는 매우 독특한데, 나름의 정치적 제도로 트리부스 회, 민회 ,켄투리아 회, 원로원 등이 있었고 이들은 특정한 이들을 대표했다. 사회 자체는 공화정이어도 귀족이나 원로원들에 매우 유리했으나 평민 출신의 콘술이 등장하는 등 사회의 유동성이 다른 문명보다 높은 편이었다. 또한 민회의 군중들도 나름의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전쟁에 들어간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 해양 도시들의 리더인 레반트의 티레가 무너지고 이후 리더 역할을 손에 넣은 페니키아 문명 국가다. 이들은 공화정이었는데, 로마와 달리 주변 페니키아 도시들에 매우 가혹했으며 상류층의 분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가령 로마와 싸우는 도중에 해군의 노잡이들을 농업 귀족들이 데리고 가서 농사에 동원한다던지 말이다. 

 

초기에는 로마는 육군, 카르타고는 해군이 우수하였으나, 로마인들이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단결력을 보이고 카르타고의 휘하 도시들도 카르타고를 배신하는 일이 발생한다.  또한 로마 군은 로마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카르타고 군은 육군이 용병이라 지급이 미뤄지면 카르타고 국가 내부에서 혼란과 투쟁을 일으키는 등 문제가 많았다. 

 

결국 카르타고가 패하고 쇠락하자 용병들이 문제를 더 강하게 일으켰다. 카르타고는 그래도 회복력이 좋았다. 서지중해 무역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고 경제 수준도 높았기에 이들은 망할 만하면 강하게 문명을 재건하고 로마에 바치는 손해배상금도 다 갚았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해양 무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과 카토 등이 카르타고의 멸망을 강하게 주장하여 카르타고는 결국 망하고 만다. 이 포에니 전쟁에서는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가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어떻게 보면 이후에 등장한 군공을 바탕으로 관행과 법을 뛰어넘는? 유연하게 피한? 정치인들의 모범이었다. 그가 너무 잘 나가자 파비우스는 그를 매우 증오했다. 

 

저자는 만약에 로마가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더 패했어도 결국엔 승리했을 것이라고 본다. 한니발의 예상과 달리 로마의 동맹시들은 로마와의 강건한 결속을 유지했고, 파비우스의 전략도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통해 오랜 세월 농사에 전념해야 할 이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농장도 약탈당하고 하니 로마 사회 내에 갈등이 크게 일어난다. 또한 카르타고 점령지를 손에 넣은 이들이 거대한 농장을 운영하자 소수의 자영농 기반 로마는 근본이 흔들리게 되었다.

 

그라쿠스 형제 등이 토지 개혁에 나섰으나 이들은 실패했다. 그들의 인기를 위협적으로 본 원로원 의원들이 그들을 살해한 것이다. 다만,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내용과 달리 이후 몇몇 개혁들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그의 정적들도 굳이 개혁 법안을 다 없애려고 들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몇만 명은 토지개혁의 이득을 보았다.

 

이후 로마는 동쪽에 개입한다. 로도스나 페르가몬 등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도움을 요청하자 이후 동방에 진출, 마케도니아와 셀레우코스 등의 계승자 왕조를 치고 그들의 부를 손에 넣는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부가 로마에 유입된다. 로마인들은 외교 동맹 국가에 대해 나중에 권위와 억압적인 태도로 나와 마치 주인과 보호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로마인들은 이후 히스파니아도 점령했는데, 전쟁은 힘들고 그렇다고 큰 돈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힘든 전투를 했지만 결국 해안지대를 손에 넣었다. 게르만 족이 테우토네스 족 등을 위주로 로마에 쳐들어와 큰 위기가 발생했으나 잔인한 장군 마리우스가 그들을 격퇴한다. 마리우스는 이후 군제개혁을 한 인물로, 군사 체계를 개편하고 토지를 지급하여 사병화의 단초를 낳았다. 

 

이후 마리우스는 또 하나의 위대한 장군 술라와 대립한다. 그들은 내전을 벌이고 반대파의 이름을 알려 서로 숙청하고 로마를 피비린내 나는 살육장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로마와 동맹을 맺었으나 그들로부터 받는 요구는 그대론데 전쟁 승리품은 일부만 받고 차별적 대우를 당한 동맹시들이 마리우스파 쪽에 가담했다. 마리우스 파의 공격으로 술라파는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으나 이후 술라,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등이 마리우스가 죽고 마리우ㅡ스파를 제거했다. 단 이 과정에서 동맹시에 로마 시민권이 부여되었던 것은 유지되었다. 이후에도 히스파니아에 로마 시민권이 내려지는 등 시민권은 계속 확대된다. 

 

이 무렵 로마는 위기에 달했다. 짧은 임기의 콘술들이 연임 제한을 지키면서 나라를 다스리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원래 콘술은 1년, 10년안에는 연임불가 였으나 계속해서 법을 고쳐서 특정인에게는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거대한 제국을 짧은 기간안에 다스리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강력한 중앙의 장기 권력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라는 마리우스 파를 제거한 후에 자신들의 기조를 복고로 삼고 귀족위주의 정체를 만들었으나, 이후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자신들의 군공과 업적을 바탕으로 3두 정치를 이끌며 로마의 공화정은 몰락한다. 술라가 자신의 정체에 위협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장군들이 정체를 박살낸 것이다. 

 

저자는 크라수스가 소방대를 가지고 다른 이들의 집에 불이 붙으면 싸게 매입해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에 부정적이다. 사설 소방대를 가지고 보호인이 피보호인을 돕는 문화가 이미 당대에 있었고, 아 크라수스는 건물을 싸게 매입하고 건축해서 돈을 번 것이니이지 불이 난 상황에서 돈을 번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으로 보인다. 

 

크라수스가 돈이 많았지만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전쟁을 통해 번 돈에 미치지 못했고, 대신 크라수스는 파르티아를 치다 죽는다. 폼페이우스는 방심하고 있다가 허를 찔린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물리치면서 그의 권력은 엄청나게 강해졌다. 저자는 카이사르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강대한 중앙 권력을 가진 이가 탄생했을 것으로 보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다. 고대 공화정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카이사르가 공화정 수호파에게 살해당한 후에 다시 삼두정치가 시작되나, 레피두스는 초반에 빠르게 축출되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결이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정통 후계자다. 카이사르는 이후 신으로 봉헌되었으니(키벨레와 대모신 이후 처음) 그 후손인 옥타비아누스는 어마어마한 위엄이 있었다. 그는 어린데도 굉장히 마키아벨리적으로 협잡과 정치적 음모, 배신을 통해서 키케로 등을 이용해먹고 버려서 거물로 성장한다. 

 

안토니우스는 동방의 부에 관심이 많았으나 옥타비아누스는 이탈리아를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정치적 중심지에서 끊임없이 안토니우스에 대한 협잡을 벌여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후 악티움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연합 함대를 쳐부순다. 안토니우스는 저자가 저평가된 인물이지 나름 군재와 정치적 재능이 있었다고 하는데 맞는 말 같다. 패자였기 때문에 격하된 면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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