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역사가인 찰스 오만이 고대 로마에서부터 영국 잉글랜드의 백년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중세 전쟁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각 챕터를 특정 국가에 할애하여, 어떤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전장에서 활약했고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당시에 자주 쓰인 무기, 장비의 수준, 그 무기가 활용된 이유, 규율의 정도, 주요 전투와 주요 전투가 발생한 지형, 전투가 미친 영향과 특정 전략전술과 병종이 자주 쓰인 시기 등을 분석한다.
다만 이 책은 전쟁에 대한 책이고, 개괄적으로 중세사를 다루는 책이 아니므로 이 책에서 설명하는 특정 시점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이 책이 모두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이 책은 부르고뉴 공의 군대가 스위스군에 패한 전투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려주지만, 부르고뉴가 무슨 나라고 부르고뉴 공이 왜 전투를 하다가 이렇게 죽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전쟁에만 집중한 느낌이다.
저자는 장을 나누어서 로마 군대, 비잔틴 군대, 프랑크족의 군대, 스위스 군, 영국군 등을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로마군은 다른 야만족의 기병군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무거운 장비를 벗어 던졌다고 한다. 투구와 갑주로 이루어진 중장보병 전술로 그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이 모든 사람에게 이해된 것은 아니어서, 로마 병사들이 훈련을 제대로 안하다 보니 장비가 무겁다고 느껴서 장비를 착용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는, 개탄스러운 느낌의 이야기도 있었다고 한다. 로마 군대가 상대해야 할 기병들은 기존의 갑주와 검을 이용한 대응으로는 상대하기가 어려웠기에, 대응 방법을 바꾼 것인데 이해하지 못한 이가 있었던 것이다.
로마의 후신인 비잔틴 군대는 강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비잔틴 군대에 대한 악평도 많고 저평가도 많지만 저자가 보기에 비잔틴 군대는 당시 다른 나라의 군대보다 규율이 잘 잡혀 있는 군대로, 이기는 것이 당연했고 특정 상황에서 사태가 좋지 않게 흘러갔을 때 패한 것이라고 본다. 비잔틴 군대는 전략 전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싸웠기 때문에, 돌격을 중요하게 여기고 도끼를 위주로 싸우는 프랑크군보다 규율이 잘 잡힌 군대였다고 한다.
중세의 많은 기간 동안 기병이 강한 역할을 해왔다. 비잔틴도 기병을 강하게 육성했고, 많은 기사들이 전쟁을 벌였다. 이런 기사들에 맞선 군대가 있으니 바로 스위스 보병과 영국의 장궁병이다.
스위스 보병들은 기병에 강한 파이크와, 기병에 강하지 않은 미늘창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군대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한 군대였다. 지방 단위로 조직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고 무장을 비용 문제로 거의 하지 않아서 비교적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밀집된 파이크로 강력함을 자랑했다.
이런 스위스 군대에 맞섰던 오스트리아나, 부르고뉴는 참담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스위스 군대는 각 병사들의 자부심이 지휘관의 권위보다 강했으므로 지휘관을 앞으로 내세우라던지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이 있었다. 또한 이들 군대는 새로운 전략전술을 배우지 않았고 정형화되어갔다. 이때문에 이후 밀라노에게 패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키운 란츠크네히트에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영국은 장궁병을 선택했는데, 이들은 긴 사정거리의 궁병으로 말뚝을 가지고 다니면서 박아서 기병의 돌격을 저지했다. 이들은 방어적인 전술로 프랑스 기사들의 돌격을 막아내었고 화살을 쏘아 그들을 격파햇다. 그러나 백년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프랑스군이 그들에게 돌격하지 않는 전술을 택하면서 방어적 전술이 효용이 다한다. 결국 잉글랜드는 프랑스와의 백년전젱에 패하고 만다.
이 책은 다양한 무기와 전략, 전술들이 나왔다가 쇠퇴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어떠한 전술도 만능이 아니며, 시대의 흐름을 살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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