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현대전에서는 더 이상 아름답거나 조화로운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아무 이유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
-헤밍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한 이후 나치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상실한 영토(단치히 회랑)를 폴란드에 내놓을 것을 요구하자 폴란드는 거부한다. 이에 독일이 1939년 9월 1일 폴란드에 침공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국가였던 이탈리아, 일본이 추축국으로 한 편이었으며 영국과 영연방, 프랑스, 미국과 소련, 중국 등이 연합국으로 한 편이었다.
같은 시기 소련의 공산당 지도자 스탈린은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점령했다. 폴란드 침공은 영국과 프랑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약 1달 만에 독일의 승리로 종료되었다.
독일은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와 노르웨이에 진출하여 연합군을 격파했고,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이 사임하며 윈스턴 처칠이 수상이 된다. 1940년 5월에는 프랑스의 요새 방위 지대인 마지노 선을 우회하여 파리로 진격했다. (황색 작전) 결국 프랑스는 항복하고 이후 프랑스 남부엔 비시 프랑스라는 괴뢰 정부가 성립된다. 육군 장군 드골 등의 일부 요인은 프랑스 밖에서 대 독일 전쟁을 이어나간다. 독일은 프랑스를 꺾은 이후 영국과 항공전을 벌였으나 승리하지 못한다. 영국은 독일군의 폭격을 맞으면서도 외로운 전쟁을 계속한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이탈리아의 요청으로 독일군이 상륙하여 영국군과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이때 독일군의 지휘관이 사막의 여우 롬멜이었다. 그는 치밀한 정찰을 바탕으로 영국군을 격파하여 영국군 장군 오코너를 포로로 잡으며 선전한다. 추축국 이탈리아의 요청으로 독일은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에도 진출하며 발칸 반도를 제압한다.
이즈음 독일의 대규모 유대인 학살 정책이 실시되어 종전까지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용소에서 학살당하였다. 앞서 독일은 폴란드 침공 당시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으나 1941년 6월 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에 진격한다. (바르바롯사 작전) 소련은 민스크, 키예프, 리가를 비롯한 대도시를 모두 잃으며 밀리다가 옛 제정 러시아 시절 수도였던 레닌그라드를 포위당한다. 독일군은 모스크바 인근까지 진출하나 인명 피해를 각오한 소련의 결사 항전으로 모스크바는 함락을 면하게 된다.
한편 태평양에서는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뿐 아니라 중국 본토로 진격하고 있었다. 이에 미국이 무역 조치로 일본에 제재를 가하려 하자 일본은 1941년 12월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하여 함선을 격침시킨다. 이후 미국은 연합국 측에서 참전하게 된다. 일본은 남태평양에 진출하여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 미군과 네덜란드 세력을 쫓아내기에 이른다.
미국은 태평양과 유럽에서 양면 전선을 펼치면서 전쟁을 실질적으로 이끌게 된다. 미국은 무기 대여법을 통해서 연합을 지원하는 한편, 일본군 함대를 태평양의 미드웨이에서 격파하고 과달카날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남태평양 섬에서도 몰아낸다. 이후 북아프리카에 상륙하여 북아프리카 전선도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다.
한편 유럽 동부 전선의 소련도 항전을 계속하며 독일군과 싸우다가 마침내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을 역포위하는데 성공한다. 연합국은 이탈리아에 진격하여 43년에 항복을 받아냈고, 44년에는 프랑스 노르망디에도 상륙한다. 결국 45년 독일은 항복했고 히틀러는 자살한다. 일본은 계속해서 본토를 공습당하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까지 떨어지자 항복한다.
대부분의 전쟁터가 유럽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었고 수천만명의 인명 피해를 낳았다. 또한 전쟁 내내 각지에서 대규모의 조직적 학살과 전쟁 범죄가 난무하는 참상이 이어졌다. 유럽 국가들은 큰 피해를 입었기에 종전 이후 세계의 패권은 미국과 소련에게 넘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