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주나라와 중국 봉건체제의 성립

삼긱감밥 2020. 12. 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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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와 중국 봉건체제의 성립

 

‘무왕이 치고 들어오자 주의 병사는 모두 붕괴되어 주를 배반했다. 주는 도망쳐 반대로 녹대 위에 올라가 보석과 옥으로 치장한 옷을 뒤집어쓰고는 스스로 불을 질러 타죽었다. 무왕이 커다란 백기를 들고 제후를 향해 휘두르니 제후가 모두 무왕에게 절했다. 무왕이 손을 모아 제후에게 인사하자 제후가 모두 그를 따랐다.‘

 

-사마천, 사기 주 본기

 

중국에서는 거대한 강인 황하를 중심으로 문명이 발달했다. 중국에서 최초로 생겨난 고대 국가는 상(商)나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나라는 은나라라고도 불리며, 종교적이면서 군사적인 국가였다. 상나라 사람들은 거북이의 등껍질을 이용해 점을 쳤으며 동물의 뼈에 글자를 새기는 갑골문을 개발했다. 그러나 상나라는 잦은 정복 전쟁을 치루고 노예제를 운영하는 국가였으므로 주변 국가들의 원성을 샀다. 결국 기원전 11세기 무렵 상나라는 마지막 왕인 주의 시대에 서쪽에서 온 주(周)나라를 비롯한 제후국들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다.

 

주나라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로, 고대 중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국가였다. 주나라는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 각지에 봉건 제후를 배정하여 봉건제를 실시했다. 공작, 후작, 백작의 구분은 이때부터 유래하게 되었다. 중국의 봉건제는 서유럽의 봉건제와 달리 제후들의 상당수가 혈연으로 이어진 점이 특징이다. 성이 다른 제후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성이 같은 제후였다. 고대 중국의 문화나 예절, 관직과 종법제도 등 상당수가 주나라 때부터 정립되었다.

 

주나라는 이후 수백년간 번영하였으나 혈연에 기반하는 봉건제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혈연관계가 멀어졌으며 각 제후 국가들도 중앙 정부의 권위를 따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결국 기원전 8세기 무렵 주나라는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서 도읍을 동쪽으로 옮기니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이전의 주나라를 서주, 이후의 주나라를 동주라고 한다.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의 권위와 힘이 쇠퇴하자 각 봉건 국가들은 할거하면서 서로 전쟁과 대립을 시작하니 춘추시대가 개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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