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세의 화폐

삼긱감밥 2021. 5. 6.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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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사람들은 오늘날 처럼 종이로 만들어진 화폐가 아니라 금속으로 만들어진 금속 화폐를 썼다. 

 

고대에 비해서 중세의 화폐는 그 유통량이 적었다. 고대 로마제국은 화폐를 주조하고 다양한 지역에서 이를 통용시켰으나, 이후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 화폐는 고대 로마시대 만큼의 유통량을 가지지 못하였다. 중세 봉건제를 구성하는 다양한 국가, 도시들은 저마다의 화페를 만들어서 찍어냈다. 거대한 단일한 통화가 아닌 여러 소규모 통화가 쓰이니 통화 사용이 더 쉽지 않아졌다. 경제 활동의 부족, 자원의 부족 등의 이유로 인하여 모든 국가들이 화폐를 계속 찍어낼 상황이 아니었고 일부 국가들은 화폐 생산을 중단하게 된다. 

 

중세에 주로 찍어냈던 돈은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값어치가 적은 화폐의 경우 구리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 화폐는 은으로 만들어진 은화였다. 독일에서 개발된 다양한 광산들을 바탕으로 많은 유럽 지역에 화폐 주조소가 설립되었다. 이탈리아 중북부 지역, 보헤미아의 쿠트나 호라 등이 유명세를 떨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르데냐 섬도 광산으로 개발되었는데, 사르데냐 섬에 독일인 출신 광부들이 20명 정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사르데냐 섬은 이탈리아 피사의 지배를 받았다. 피사는 이후 제노바에 패해서 섬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 

 

은화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주괴의 형태로 된 은괴를 운반에 더 자주 썼다고 한다. 주괴가 운반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었다. 

 

중세 경제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교황령이다. 교황은 다양한 곳에서 수입을 얻었고 그 수입을 다시 종교 시설의 건축, 자선 등에 사용했다. 이들은 성직을 수여하면서 얻은 돈, 성직록을 받을 사람이 없을 때 교황령이 가져가는 돈, 교황 지배하의 도시에서 내는 돈 등으로 재정을 구성했다. 재무를 담당하는 추기경이 교황령 내에 존재했고, 교황이 부재할 경우 추기경단이 재무를 맡을 추기경을 선출했다. 때로는 이러한 돈 관리를 이탈리아의 은행가들에게 맡기기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고위 계층에서 화폐의 쓰임이 많았으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계층들이 화폐를 쓰게 된다. 고위 계층들은 전쟁에서 포로가 될 경우 돈으로 포로 몸값을 주고 풀려나곤 했는데, 잉글랜드의 리처드나 프랑스의 루이 성왕 등이 그런 경우였다. 영주들은 자신의 지대를 현물이 아닌 현금으로 받기도 했고, 어떤 기사는 봉토를 수여받는 대신 돈으로 보상을 받고 충성을 다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금은 오로지 비잔틴이나 이슬람 세력과 가까운 지역에서 쓰였다. 따라서 매우 한정된 지역에서 쓰였다. 이렇게 사용되는 금은 주로 모로코 영토 내에 위치한, 북부 사하라 지역의 키질마사를 거쳐서 올라온 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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