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공신 발표

삼긱감밥 2020. 12. 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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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은 황제가 되라는 제후들의 제안을 받았다. 유방은 자신은 황제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세 번 거절한 후 한나라의 왕에서 황제가 되었다. 항우의 옛 부하 임강왕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토벌되었다. 유방은 한신의 기습을 받고 역이기를 끓여 죽인 제나라 왕족을 불렀지만 그는 역이기를 죽인 것을 부끄러워 하여 자결했다. 유방은 옛날 팽성에서 자신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은 정공을 붙잡아 처형했다.

 

 

유방은 부하들에게, 솔직히 말해서 왜 내가 항우를 꺾고 천하의 주인이 된 것 같냐고 물었다. 유방의 부하 두 사람이 나서서 유방은 아주 오만하고 무례한 성격이지만 성을 점령하면 땅을 나누어 다른 사람과 이익을 나누는 사람이고, 항우는 인자하고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해주지만 능력있는 사람을 의심하고 땅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지 안힉 때문에 유방이 승리했다고 답했다.

 

 

유방은 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 말했다. 유방이 말하기를, 유방의 계책은 장량만 못하고 싸움은 한신만 못하며, 내정은 소하만 못하다고 했다. 하지만 유방은 그 세 사람을 부릴 줄 아는 반면 항우는 범증 한 사람도 제대로 못썼기에 유방이 승리한 것이라고 했다.

 

 

통일 이후 유방의 휘하 장군들은 자신들이 제후로 분봉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장량은 장수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유방에게 가장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을 제후로 봉할 것을 추천했다. 가장 나쁜 관계인 사람을 봉하면 다른 사람들은 저런 사람도 봉해지니 나는 괜찮을 것이라며 안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방과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은 초기에 유방을 배신한 적이 있었던 배신자 옹치였다. 유방은 옹치를 제후로 봉했다. 장수들은 옹치같이 사이가 안 좋은 인간도 제후가 되는 것을 보니 자신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며 안심했다.

 

 

유방은 소하에게 많은 식읍을 주었다. 장수들은 전쟁을 열심히 한 것은 조참이라고 생각하여 조참에게 많이 줄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유방은 이를 반박하며, 장수들이 잘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소하가 관중에서 내정과 보급을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군들이 사냥개의 역할을 했다면 소하는 사냥꾼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옛날에 소하가 자신과 같은 관리일 때 일하러 떠나는 자신에게 전별금을 200전 더 주었다며 2000호의 식읍을 더했다. 소하는 그의 일족도 유방과 함께하도록 했기에 소하 부자와 형제까지도 봉토를 받았다.

 

 

유방은 소하의 공신 순서도 1위로 하려고 했다. 그의 속내를 알아차린 악천추가 소하를 추천하여 소하의 공신 순서도 1위가 되었다. 유방은 악천추에게도 봉토를 더 주었다. 공신들의 순위는 관중에서 보급을 담당하고 나라를 안정시킨 소하를 1위로 두고장군 조참을 2위로 두었다. 조나라의 장이는 나이가 들어 죽었기에 아들 장오를 3위로 두었다. 봉토는 영릉후 유택에게 1 2천호를 주고, 평양의후 조참에게 1 6백호, 유후 장량에게 1만호를 주었다.

 

 

그리고 제나라 왕 한신을 초나라 왕으로, 장오를 조나라 왕으로, 팽월을 양나라(위나라) 왕으로, 한왕 신을 한나라 왕으로, 오예를 장사 왕으로, 장도를 연나라 왕으로, 영포를 회남왕으로 봉했다. 장량을 살려주고 유방의 아버지를 구했던 항백은 유씨 성을 하사받고 제후가 되었다. 항백 이외에도 항우의 일족으로 제후가 된 자들이 있었다.

 

 

한신은 제나라 왕에서 옮겨져서 고향이 속한 초나라 왕이 되었다. 그는 고향으로 갔다. 한신은 옛날에 자신에게 가랑이 밑에 기어가라고 모욕했던 이를 찾아가 옛 일을 웃어 넘기면서 관직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어려울 때 밥을 준 아낙에게 상을 주었다.

 

 

젊은 시절 유방은 패국에서 작은 관리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협객을 만나길 좋아해 항상 그들을 데리고 와서 밥만 축내니 형수가 화가 났다. 형수는 국그릇 바닥을 두드리면서 일부러 국이 없는 척 하여 유방을 면박주었는데, 유방이 머쓱해하며 나중에 다시 찾아와서 보니, 사실 밥이랑 국이 다 있는데 형수가 유방을 속인 것이었다. 유방은 젊었을 때 이 일을 끝까지 잊지 않고 기억해두었다가 천하통일 이후에 형수의 아들 유신을 갱힐羹頡후로 봉했다. 갱힐은 국이 말랐다는 뜻이다.

 

 

유방은 중국의 왕이 되었지만 아버지와 친근하기가 평소와 같았다. 아버지에게 평소와 같이 예절을 갖추었고, 옛날엔 자기가 둘째 형보다 못하다고 했지만 지금도 그러냐고 농담삼아 따지기도 했다. 유방의 아버지 유태공을 모시는 자가 유태공에게 나라의 주인인 아버지이지만 자기 신하인 사람에게 인사를 드리게 하냐고 했다. 유태공은 이후 유방에게 예절을 갖추어 대문에서 뒷걸음질치며 맞이했다. 그러자 유방은 당황하다가, 아버지를 황제보다 급을 높인 태상황으로 추존해 올려드리고 그 신하에겐 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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