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16세기의 오스만 투르크

삼긱감밥 2021. 3. 14. 17:46
728x90

오스만 투르크는 분명히 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던 강대한 나라였다. 헝가리의 베오그라드를 점령하고 이윽고 이를 발판삼아서 헝가리를 멸망시켰다. 라요슈 2세는 패사했다. 가리 왕국의 모든 영토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트랜실바니아를 봉신으로 삼았고 중앙 지역을 차지했다. 남은 지역은 오스트리아가 가졌다. 

 

오스만 투르크는 남쪽으로는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를 점령했다. 시리아와 이집트를 재빠르게 점령했고 이집트에 있던 베이들의 기존 통치체제는 유지했다. 이후 바르바리 지역의 해적들을 봉신으로 삼아 간접적으로 통치했고 예멘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지방분권된 정도가 심했고, 인구 밀도가 높지 않았으며, 국가가 효율적으로 재정을 조달할 수단이 없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돈을 많이 모은 신하를 죽이거나 돈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오스만 투르크는 그들의 적인 베네치아와 교역을 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 달마티아 해안 지대와 그리스 인근의 섬을 두고 싸우는 사이였으나, 서로의 재정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교역을 하다가 전쟁을 하다가 하는 식으로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1570년 무렵, 오스만 투르크가 키프로스를 점령한다. 키프로스는 베네치아의 영토가 된지 백년이 넘은 상황이었지만 오스만 투르크의 힘을 베네치아가 직접적으로 맞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키프로스는 베네치아에게 굉장히 소중한 지역이었지만 결국 오스만 투르크에 점령되고, 교황이 베네치아와 스페인의 동맹을 모색한다. 

 

스페인은 오스만 투르크의 봉신인 바르바리 인근의 해적들 때문에 늘 골머리를 앓던 상황이었다. 베네치아와 스페인의 관계는 아무리 봐도 좋다고 하기 어려웠지만 이들은 손을 잡고 교황령, 베네치아, 스페인의 연합함대를 만든다. 

 

이 연합 함대는 레판토에서 오스만 투르크의 갤리선과 싸워서, 그들을 크게 패배시키고 대승한다. 물론 연합 측의 피해도 있었으나 오스만 측의 피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스페인이나 베네치아의 국력이 크게 신장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페인은 지중해만 신경 쓸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저지대도 다스려야 했고, 영국도 신경써야 했다. 베네치아는 달마티아 도시 자라를 오스만에 할양하고 서라도 평화 시대로 돌아가려 했다. 베네치아가 키프로스를 경제적 이득만 얻는 방식으로 다시 회복하는 방안도 있었으나 이는 좌절되었다. 

 

스페인이 너무나 신경을 쓸 것이 많았기 때문에, 스페인은 레판토 해전에서의 승리를 크게 활용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를 계기로 오스만이 타격을 입었으니 그 자체로 이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오스만은 페르시아와의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 해군 유지의 어려움 등을 겪어 이후 오랜 세월 해군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게 된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