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나이브스 아웃과 고스포드 파크

삼긱감밥 2021. 3. 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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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스 아웃은 아가사 크리스티 풍의 추리 영화다.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시신이 발견된 후 사건 조사에 나선 탐정과 유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나이브스 아웃에서 죽은 사람은 유명한 추리소설가다. 그의 자식들은 이런 저런 방법을 통해서 추리 소설가에게 도움을 받아서 살았다. 첫째 부부는 아버지에게 지원받은 돈으로 사업을 해 성공했고, 둘째와 셋째는 아버지에게 온전히 의존해서 사는 재정적 의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엄청난 돈을 가진 소설가가 죽고 만다. 그것도 칼에 당해서 말이다. 생긴게 묘하게 표창원 닮은 탐정이 이를 조사하기 위해 나서고, 가족들은 자신들의 숨겨진 이기적인 모습과 악한 면을 보이고 만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물론 이들 이외에 추리 소설가의 손자녀들, 하녀들도 등장한다. 

 

이 영화의 감독이 라스트 제다이라는 영화를만들어서 악평을 많이 들은 감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굉장히 잘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반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작품 자체는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고전적인 추리 소설의 냄새가 난다. 현대 미국이 배경이라고 해서 드론으로 살해하고 스마트폰이 핵심 증거가 되고 이러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대신 감독은 독특한 접근을 시도한다. 바로 현대 미국의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상한 부분이 하나씩 있다. 첫째딸 부부는 자신만의 힘으로 인생을 일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돈은 부모에게서 온 것이다. 돈을 받아서 그걸 기회로 성공했음에도 자신들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둘째딸은 허세만 가득하여 인스타그램을 통한 자신의 이미지 구축에만 몰입하는 사업가다. 딸은 좌파 문화비평학을 배우지만 이 모녀는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사업을 한다. 어떻게 재정을 벌충하는지는 영화 내에서 나오는데, 바로 등록금을 못받은척 두 가지 계좌를 써서 연달아 받는 식으로 아버지를 속여온 것이었다.

 

셋째 가족은 아버지의 작품을 출판하는 출판사를 경영한다. 부모가 작품을 쓰면 그 작품의 관리는 셋째 아들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재정적으로 독립할 여력이 없는 인간인데도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영상화 계약을 하는 등 위험한 행위를 반복한다. 

 

게다가 이들은 정치적으로도 분열되어 있다. 셋째아들의 아들은 네오나치에 가까운 극우다. 둘째딸의 딸은 이 영화에서 그나마 호의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이지만 나름의 문제가 있는 좌파다. 둘째딸은 애초에 허세만 가득한 망상적인 진보주의자다. 저마다 극단적인 정치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거의 영화 내내 분열되어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데, 같이 지내는 약자에게 사실 큰 관심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인인 가정부에게 남미 어디에서 왔냐고 말하고 출신지를 모르는 모습은 좌파든 우파든 똑같이 드러난다. 

 

저택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 가족들의 갈등과 이기심이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이보다 더 오래 전에 만들어진 영화 고스포드 파크도 나이브스 아웃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저택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라는 배경 자체가 좋지만, 영화 내에서 가족과 시대의 문제를 드러내는 영화는 잘 만들기 어렵다. 감독의 철학이 잘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고스포드 파크는 영화가 좀 긴 편이고 나이브스 아웃보다 굉장히 무딘 호흡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 역시 사람이 죽고 저택을 둘러싼 수사가 시작된다는 점은 나이브스 아웃과 같으나, 그 시점이 매우 늦어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초반에 사람이 죽지 않아 놀랄 수도 있다. 

 

고스포드 파크의 배경은 20세기 영국이다. 아직 대영제국으로서의 위엄이 상하지 않았으나 점점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영국의 상류층인 고스포드 파크의 가족들, 손님들은 저마다 향락을 즐기며 하인들을 개미처럼 부려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상류층도 여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저마다 누군가를 죽일 동기가 충분하고, 상류층으로서 악행을 저지르며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핍박했다. 구조적인 강자임을 이용해 약자인 노동자와 가정부들을 능멸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불륜에 거리낌없는 캐릭터가 있다는 것은 나이브스 아웃과 공통점이다. 

 

때문에 사건의 진행이 훨씬 느리고 분위기도 무거운 편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사건 전개를 신속하게 이끌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재밌게 확실하다. 고스포드 파크는 보다 무겁고 등장인물들의 어두움 단점, 추악함이 확실하다. 

 

이는 20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당대 영국은 거대한 거인이지만 쇠퇴하고 사회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영화의 분위기를 보이려는 듯이 미국인들은 영국인들과 다른 존재로 나타나고,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번영을 믿어 의심지 않지만 점점 타락한다. 

 

어쨌든 두 영화의 비슷한 점에 비추어 볼때, 개인적으로는 나이브스 아웃이 고스포드 파크보다 약간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볍고 무거움의 차이가 크고 고스포드 파크 역시 훌륭한 영화이므로 나쁘게 말할 것은 없다. 다만 추리나 적당한 호흡 면에 있어서 나이브스 아웃이 더 낫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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