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성장하고 제국으로 나아가면서, 로마는 다양한 국가와 이민족을 맞이했다. 로마는 야만족들과 싸워 그들을 정복하거나 노예로 삼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기기 어려운 상대에게는 외교적 평화를 추구하거나 교란 술책을 시도했다. 로마가 다양한 국가와 민족과 국경을 닿고 있었기 때문에 동시다발적으로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도는 방어선 유지에 위협적이었을 뿐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였다.
로마가 상대한 이민족과 방법을 알아보자.
*히스파니아
고대의 히스파니아는 오늘날의 이베리아 반도이다. 히스파니아에 원래 진출해있던 이들은 카르타고와 카르타고의 한니발계 가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해안 지대에 진출해서 도시 위주의 삶을 살았다. 이후 로마가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히스파니아에 진출했을 때도 이는 동일했다. 로마인들은 기본적으로 해안가에 진출했던 것이다. (로마 토탈워라는 게임에도 다양한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경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베리아 반도 중앙은 숲과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동방과의 전쟁과는 달리 히스파니아에서의 전쟁은 그다지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었다. 이미 발달된 문명지대를 공격해서 돈을 버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히스파니아 부족들은 게릴라 전에 능했다. 다만 이 부족들은 중앙집권적인 나라를 만들어서 한 사람을 따르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초반에는 내륙에 진출하지 않았다가, 이후 로마가 국력이 팽창하면서 히스파니아 내륙까지 진출했다.
로마인들은 히스파니아 내륙지역 부족에 적대적이었다가, 패전 후 협상을 맺은 바있었으나 그후에 다시 적대적인 행보를 반복했다. 결국 로마인들은 히스파니아를 점령했다. 제국의 팽창기에 히스파니아 인들에게 시민권이 부여되었고 이후 로마의 위인들이 히스파니아에서 배출되기도 했다.
*마우레타니아
오늘날의 모로코, 알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초기에는 로마와 별로 상관없는 곳이었으나 로마가 카르타고를 점령하고 아프리카 속주를 설치하면서 국경을 맞닿게 되었다. 이 지역은 왕국이 있어 왕이 다스렸다. 하지만 국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으므로 로마인들은 마우레타니아 지역에 왕을 봉하였다가 속주를 설치했다가 하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모로코 인근의 이민족들이 마우레타니아나 히스파니아에 분쟁을 일으키는 일들이 있었다. 마우레타니아의 항구들은 상업이 발달하여 로마인들에게 이익이 되었지만 공격도 종종 당했다.
*갈리아
갈리아인들은 도시 국가 수준의 규모던 로마에 가장 위협적인 적들이었다. 이들은 남쪽으로 내려와 침략해 로마를 점령하기까지 했고, 강대한 군사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갈리아인들은 정치적으로 통일된 결사체를 만드는데 실패했고, 다른 민족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로마는 성장하면서 갈리아 부족들과 전쟁을 반복했다. 이탈리아 북부의 갈리아족을 물리친 로마인들은 이후 오늘날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갈리아 부족의 일부와는 평화롭게 지내고 일부는 정복했다. 마침내 카이사르라는 걸출한 인물이 갈리아인들을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갈리아 지역은 로마의 주요한 지역이 되어 많은 지역이 번성했고 로마화되었다. 이로 인해 훗날 게르마니아 군단에서 일어난 반란 시도에도 갈리아의 로마 군단들은 친로마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오늘날의 마르세이유에 해당하는 마실리아 지역에는 고대에 도시가 있었다. 마실리아 시는 갈리아 부족들 사이에 있었으나 갈리아인과는 상관이 없는 그리스계 국가였다. 그들은 로마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카르타고를 적대했다.
*게르만
게르만족이 살았던 게르마니아 지역은 갈리아와 달리 끝까지 로마가 점령하지 못한 지역이다. 게르만족들이 로마에 넘어와서 살거나 군복무를 하는 일도 있었고 보헤미아 지역에 로마인들이 정치적, 외교적 영향력을 끼치는 일도 있었으나 끝까지 로마인들이 게르마니아 전역을 통치하지는 못했다.
발단이 된 일은 아우구스투스 시절 게르마니아를 담당한 장군이 토이토부르그 숲에서 포위섬멸당한 것이다. 군단이 허망하게 무너지자 게르마니아 침공은 요원해졌다. 이후 로마의 국력이 신장된 후에도 로마는 갈리아-판노니아(오늘날의 헝가리 인근)와 다키아(오늘날의 루마니아 인근)를 잇는 국경선을 구축했지 게르마니아를 침공하지는 못했다.
로마가 제정이 되기 전에 로마에게 큰 위기를 안겨준 이들 중에 게르만족이 있었다. 테우토네스족이 부족민들 전체를 이끌고 유틀란트 반도 인근에서 로마로 남하한 것이다. 로마인들은 그들에게 패했으나 이후 잔인한 장군 마리우스의 활약으로 그들을 격파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 콘술 역임을 금지하는 규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의 기틀이 흔들리게 되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게르마니아 지역에 대한 지리서, 문화서인 게르마니아 라는 책을 저술한 바 있다. 그런데 상상력에 기반한 부분인지 속설을 들은 것인지 이상한 부족에 대해 묘사한 것들이 있어서 좀 뭔가 내용이 이상하다.
*브리타니아 섬의 켈트
이 지역은 오늘날의 그레이트 브리튼 섬에 해당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 섬에 상륙한 이후 로마인들은 곧 오늘날의 잉글랜드에 해당하는 평야 지대에 진출했다. 기존의 원주민들은 복속되거나 오늘날의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에 해당하는 지역에 남았다.
기존 브리타니아 부족들도 딱히 거대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이룬 것은 아니었고, 로마 황제들도 브리타니아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로마인들의 영역은 계속 북진했고 그 영역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았는데 대표적으로 하드리아누스 성벽 등이 있다.
*파르티아
동방에 위치한 로마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뛰어난 기병을 가지고 있는 적이었다. 파르티아인들은 종종 아르메니아를 두고 로마와 경쟁했다. 그런데 아르메니아 지역은 산지로 지형이 매우 머무르기 어려운 곳인데다가 로마에서 파르티아까지의 거리도 멀었다.
크라수스 같은 이들은 파르티아와 전쟁을 도모하기도 했지만(그는 패사했다), 아우구스투스 이후의 로마 황제들 중에는 아르메니아에 친로마계 속국을 세우고 이를 파르티아와의 갈등을 피하는 완충지역으로 삼는 것을 우선시하는 황제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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