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마사

로마 멸망 원인

삼긱감밥 2021. 4. 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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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오랜 세월 번영을 구가하다가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으로 나뉘었고 서로마제국이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당하면서 맥이 끊겼다. 동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거점으로 점점 그리스화하여 천년을 더 살아남았다. 이것을 비잔틴 제국이라고 하는데 한때 비잔틴 제국의 강역이 로마의 반보다 약간 비슷해지기도 하였으나 어쨌든 서로마 제국의 영역 상당수는 회복되지 못하고 야만인과 다양한 종족에 의해 찢기었다.

 

따라서 로마는 서로마 제국이 망한 시점을 기준으로 끝이 났고 비잔틴 제국은 로마의 후신인 하나의 제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에 대해서 왜 로마는 갑자기 몰락했나, 처참하게 망하였나 이렇게 접근할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위기를 겪으면서 점점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운을 추스리다가 슬금슬금 쇠퇴하면서 망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듯이 급작스럽게 망한 것도 아니었다. 

 

로마가 망한 이유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 점점 약체화하다 망한 것이므로 그중에서 어떤 단 하나를 이유로 들기는 어렵다.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로마가 약화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방대한 국경선이다. 로마는 지중해를 감싸고 있었는데, 지중해의 남쪽은 사하라 사막이지만 지중해 북쪽과 시리아 동쪽의 페르시아 세력은 만만치 않은 적들이었다. 그런데 로마의 국경은 엄청나게 길어서 서쪽으로는 스코틀랜드와의 경계지대,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와 그루지야까지가 경계선이었다. 

 

이는 굉장히 방어가 힘든 국경이었고, 라인강과 다뉴브강을 잇는 지역이 특히 취약하였다. 그렇다고 이 지역에 대해서만 집중할 수가 없었는데 로마가 빈틈을 보이면 곧 다른 나라가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는 또 정치적 문제를 낳았다.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특정 지역을 방어하면, 그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 적이 쳐들어온다. 그러면 그것을 누군가 가서 막아야 하는데, 강대한 침공을 막기 위해 많은 병력을 파견해야 하고, 그러면 그 병력을 가진 사람은 황제의 자리를 노리게 되는 것이다. 적의 침공을 격파하고 돌아오면 엄청난 정치적 거물로 성장하기에 이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많은 황제들이 군대를 이끈 사람들이었다. 

 

로마가 효율적인 통치를 하지 못하게 되자 각 지역은 자신들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까봐 자신들의 군단 사령관을 황제 후보로 지지하기도 했는데, 일리리쿰이나 판노니아에서 야만족과 싸우는 이들이 특히 많은 전투를 통해 황제를 세우려 했다. 

 

통치가 점점 어려워지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동방과 서방에 정제 하나, 부제 하나를 두는 행정 개혁을 했지만 이것은 디오클레티아누스 당대에만 그의 능력과 위엄으로 돌아가고 그 이후에는 잘 되지 않았다. 모두 통일한 로마의 황제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경이 길긴 한데, 굳이 따지자면 그래도 서로마 국경이 더 지키기 힘들었다. 동로마 국경은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방어에 적합했고 이집트도 동쪽으로의 침략만 막으면 방어가 가능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잔틴 제국은 여러가지 위기를 겪으면서도 바로 망하지 않고 고토를 회복하곤 했다. 하나 추가하자면 비잔틴의 주된 상대인 페르시아는 문명국이었으므로 불리한 평화 협상이라도 외교적인 대응을 채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로마는 게르만 족을 상대하는 일도 쉽지가 않은데 영국에서는 해적도 막아야 했고 판노니아의 국경선도 지키기가 힘들었다. 

 

막대한 국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로마의 귀금속은 자꾸 동방과의 거래에 소모되고 있었다. 한때는 히스파니아의 광산이 도움이 되었으나 이후에는 다키아의 광산을 이용해야 했다. 귀금속이 동쪽으로 거래될 때 로마 동쪽의 사람들이 서쪽에 팔면서 이득을 보았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서로마가 동로마보다 피해가 컸다. 

 

은화에 구리를 섞어서 만드는 등 이런 저런 방법을 썻지만 계속해서 화폐가치가 하락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했다. 군인들이 자주 택한 방식이 바로 봉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반란을 일으키거나 황제를 세우는 일이었다. 이것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로마는 황제 살해와 내전, 쿠데타 등의 문제로 정치적 혼란을 많이 겪었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할 수록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었으며 결국에는 큰 손해를 보고 말았다. 거대한 세력가나 부자들은 자신의 세력을 이용해 세금 청부인들을 거절했다. 그러나 도시의 중간계급 시민들은 징세 업무가 과다하여 자신의 재산을 쓸 정도가 되는 등 타격을 입었고 많은 시민들이 곤경을 겪었다. 국경 방어가 힘들어진 후에는 야만족에 의해 침입을 받았다.

 

로마 후기로 갈수록 많은 상류층 귀족들이 자신만의 저택에 틀어박히고 세력을 구축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세력을 바탕으로 징세를 거절했기에 점점 국가가 약화되는 원인이 되었다.

 

당대 로마의 열악한 과학기술도 문제가 있었다. 많은 로마인들이 과학이나 기술을 배우기 보다는 수사학이나 웅변, 전쟁에 관심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대의 낮은 과학 기술로 생산력을 증대시키기가 어려웠다. 

 

한편, 로마의 멸망 원인 중에 하나로 납 이야기가 있다. 당대 기술로 이루어진  수도관에 납이 쌓여서 로마인들이 약해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받아들일만 하지 못한 것이, 동로마인들은 천년을 더 갔기 때문이다. 

 

하이켈하임 로마사의 저자는 농토 황폐화는 큰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야만인 용병을 군 방어에 쓴 것도 원인이라고 하기 어렵다. 야만족들이 군권을 쥐고 나중에 서로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이들이 없었으면 어떻게 국경을 방어했을까를 생각해보면 고용을 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야만족과 야만족의 전투에서 로마가 이득을 보는 경우도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이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서 망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채택해서 로마가 쇠락했다고 보기에는 그전에도 혼란이 매우 많았다. 그리스도교의 학설 종파 논쟁을 우습게 보일 정도의 혼란이 너무나 많았기에 이것을 주된 원인으로 들긴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이런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서 로마는 쇠약해자지다가, 서로마가 망하고 동로마만 살아남게 되어서 천년을 더 가게 되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통일된 로마제국으로 잘 유지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왜 쪼개서 반만 살아남았는가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서로마가 동로마보다 상태가 훨씬 안 좋았으므로, 이것은 상처부위를 잘라내고 남은 신체로만 살아남은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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