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마사

로마 제국 경제의 어려움

삼긱감밥 2021. 3. 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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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제정으로 나아가고 점점 국가가 커지면서 다양한 문제를 겪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경제의 어려움이다. 이는 작게는 이탈리아의 어려움이고 크게는 제국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 제정이 성숙하면서 이탈리아 시장을 장악하던 로마 도시들의 상품들, 농업과 산업이 위축되었다. 이는 주변 속주들이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고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가까운 내륙 도시보다 로마에서 먼 해안 도시 속주에서 로마에 물건을 운반하는 비용이 훨씬 싸서 굳이 이탈리아 내륙의 도시에서 내륙으로 물건을 구매할 필요가 없었다.

 

이는 로마인들이 가진 운송 기술이 떨어졌고 말을 잘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해상 운송이 더 저렴한 것도 있다. 참고로, 당대 해상 운송의 한계로 해상 교역에서 주로 쓰이던 상품들은 쉽게 상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또한 속주 도시 인근의 지역들은 굳이 멀리 이탈리아에서 물건을 사올 필요가 없었다. 근처 속주 도시에서 사오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니 이탈리아 도시들의 경쟁력이 크게 실추된 것이다. 포도주의 중심지가 이탈리아에서 갈리아로 이동했고, 남부 갈리아 지역의 도시들이 번성했다. 로마가 그나마 도로망이 잘 발달된 문명인데도 이렇게 타격이 명백했다.

 

이러한 속주 지역의 발달도 한계는 분명했는데, 해상으로 무역이 쉬운 곳의 도시만 발달했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의 도시들은 발달하기 어려웠다. 

 

제국의 재정은 다양한 문제로 타격을 입었다. 아우구스투스 시절 이래로 군단을 충원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로마가 엄청난 인구와 물자를 가진 거대 제국이지만 수십만의 군대를 항상 운용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군단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늘 로마의 어깨를 짓눌렀다. 

 

처음엔 나무방패와 창만 들었던 게르만족들도 점점 강해져서 철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로마의 라인-다뉴브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대를 더욱 강화해야 했다. 로마의 군 병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여기에 동방과의 교역도 문제였다. 동방과의 교역, 네로의 사치 등의 다양한 이유로 로마의 금과 은이 동방으로 유출되었다. 예전엔 히스파니아에서 나는 광산을 이용해서 이를 벌충했으나 이것이 고갈되었다. 다키아 원정으로 다키아 지역에서 나는 광산을 활용할 수 있었으나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후대 황제들은 은으로 된 화폐에 구리를 섞는 식으로 계속해서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고대 시대였으므로, 아무리 행정 체계를 정비해도 비효율이 있었고 속주 총독들이나 관리들이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는 것을 체계적으로 막기가 어려웠다. 

 

재정을 회복하기 위한 로마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명군들이 즉위하여 정착을 권장하고 절약을 시도했다. 그러나 화려한 오락을 제공하지 않고 절약하는 행위는 로마 시민들이 싫어하는 행위였다. 근검절약하고 냉정한 황제는 인기를 끌지 못했고 사후에 신으로 추앙받기도 어려웠다. 고위 관직을 돈받고 팔아서 재정을 회복하려 한 황제도 있었으나, 원로원의 극단적인 반발을 사는 조치였다. 

 

여기에 콤모두스 이후 즉위한 많은 군인 황제들은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친위대의 봉급을 올려주겠다고 약속하는 일이 흔했다. 점점 막대한 재정 부담이 가중되었고 로마 제국은 흔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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