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 위, 촉, 오

삼긱감밥 2021. 6. 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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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은 중국인으로, 우한대학을 졸업하고 중국 CCTV에서 삼국지 강의를 강연해서 유명해졌다.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 책들은 2007년에 한국에 번역되며 유명세를 탔다. 

 

그는 이 책에서 위,촉,오에 대한 자기 나름의 삼국지 해석을 풀어놓았다. 아래는 이중톈의 위,촉,오에 대한 해석이다. 

 

이중톈은 조비 이후의 조위 정권이 구품중정제를 통해 사족에게 길을 터주었다고 본다. 

 

그는 원래 헌제가 살아있던 시절까지만 해도 조조 정권의 안정성이 크지 못하였다고 본다. 이중톈씨가 드는 증거 중 하나는 조조가 적벽 이후로는 종종 1년이 안되는 전쟁만 했다는 것이다. 관서의 제장들을 격파하러 갔을때도, 장로를 몰아내고 한중을 점령하러 갔을때도 모두 1년이 되지 않는 짧은 기간동안만 전쟁을 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사마의와 유엽의 견해를 물리치고 촉을 공격하지 않고 돌아간 것 역시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한다.

 

조조의 장남 조비는 구품중정제를 통해서 정권의 안정성 문제를 해결했다. 지역 엘리트 유지세력인 '사족' 세력을 정권에 적극 등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후한 말기 정치의 한 축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구품중정제를 통해 이들의 정치 진입로를 개방한 것이다. 이러한 사족 세력의 대표적인 가문으로는 하내에 모여 살았던 사마가문이 있겠다. 사마의, 사마랑, 사마부 모두 사마8달이라 불리던 사마씨 자제들중 하나였다.

 

그러나 구품중정제 이후 사족들은 점점 권력을 차지, 황권은 약해졌고 신하의 힘은 강해져버렸다. 그리고 황권의 마지막 보루였던 조상이 밀려나자 사마씨에 의해 찬탈당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이중톈의 해석이다. 

 

이중톈은 동오 정권은 3분해서 바라본다.

 

하나는 회수와 사수 사이에서 활동하던 장군들이다. 이들은 원래 손권의 아버지 손견을 따르던 이들로, 손견이 죽고 손책과 군사들이 원술에게 흡수되었을때 그들을 따랐다. 그리고 손책이 강동을 정벌할 때 활약하여 장군으로써 무용을 세운 이들이다. 잘 알려진 인물들로 정보, 황개, 한당 등이 있다. 이들은 군사적인 면에서 활약한 이들이 많고 문관은 적다. (게임이나 소설에서 문관으로 자주 그려지는 여범도 후에 대사마를 맡아 조휴와 맞서 싸운 적 있음) 이들은 손씨와 동오 정권을 지지했다.

 

하나는 중원에서 강동으로 내려온 지식인 집단이다. 이들은 문관이 대다수였으며, 손가의 싸움을 관망했다. 그러다 이후엔 임관하여 문관으로써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던 이들이다. 엄준, 제갈근, 장소, 보즐 등이 있으며 서주에서 강동으로 내려온 이들이 상당수다.

 

하나는 원래 강동에 살고 있던 호족이나 지역 유지들이다. 이들은 손책의 강동 정벌에 반발하는 이들이 많았고, 적어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들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정권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오의 4성인 오의 고, 주, 회계의 우,위씨 등이 있다. 유명한 인물로는 고옹이나 육손 등이다.

 

이중톈씨는 장군 그룹들은 적, 문관 그룹들은 황, 유지 그룹들은 파랑으로 보아 삼색 신호등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장군 그룹이 무력, 문관 그룹이 행정력, 유지 그룹은 재력을 각각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회색을 지닌 장수가 두명 있다. 하나는 여몽이고 하나는 노숙이다. 

여몽은 장군 출신이지만 워낙 지위가 미미했기에, 특별한 파벌에 속했다고 보거나 세력이 있던 인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러한 구분에서 제외되는 독특한 인물이다. 

 

노숙은 원래 장강 북쪽에 살던 인물로, 강동 토박이가 아니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재력을 가지고 있던 대부호였다. 그는 강을 건너와서 손책에게 바로 임관하지 않고 오히려 이전 양주자사인 유요의 근거지였던 곡아에 머문다. 그리고 무관이 되어 주유의 뒤를 잇는다. 적, 황, 청의 성격을 고루 가지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이중톈씨는 이런 면에서 노숙의 존재가 동오 정권에서 큰 역할을 했다며 그를 높게 친다.

 

이중톈은 유비의 촉나라가 3개의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익주는 원래 익주에서 살고 있던 익주 사람들, 유언이 익주에 내려오면서 데려오거나 추후에 유언을 따라 관직에 나선 동주 사람들, 그리고 유비가 입촉하면서 데려온 형주 사람들로 구성된다. 

 

원래 익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관료에 임용되지 못하였다. 그들은 토착세력으로서 지배계층을 구성하는 동주나 형주 사람들에게 반항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직접적인 정치를 담당하기 보다는 학문적인 면에서 두각을 보였는데, 초주 등이 있다.

 

유언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나 유언을 따라서 관직에 임용된 사람들을 동주병이라 한다. 이들은 원래 촉사람들이 아니지만 이후에 유언을 섬겨서 권력을 쥔 사람들이다. 유표가 망한 후 촉에 들어와 유장을 섬겼던 이엄등이 있다. 내 생각엔 유언과 친밀한 사이였던 방희도 여기에 해당될 듯.

 

형주병은 유비를 따라온 이들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삼국지연의의 유비를 따라서 촉에 들어가는 인물들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통치에는 원칙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나중에 온 세력이 익주의 권력을 쥐는 것이고, 다른 세력은 여기에 따르는 것이다. 이것에 저항하였기에 이엄이 면직되었다고 그는 분석하고 있다. 동주병 세력인 이엄이 형주인들의 권력을 분점하려한 것이 위협적으로 보였다는 분석이다.

 

(이 동주병에 관한 이론은 사서에 근거가 있는지에 대해 비판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엄의 실각은 개인적인 야욕이 컸다고 생각해서 이중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촉은 멸망 직전에 간신배가 점점 늘어났다. 또 익히 알고 있듯이 종회가 검각에서 강유를 상대하는 동안 등애가 음평의 샛길을 넘어왔기 때문에 유선이 항복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이중톈은 여기에 촉한 신민들의 정치적 입장도 촉의 멸망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촉의 명사이자 촉 토착 세력인 주서, 두경, 초주 모두 촉나라의 멸망을 기대했다. 주서는 파서, 두경은 촉군, 초주는 파서사람이었는데, 이들은 자신의 나라가 망하기를 기대했다. 이들은 검각대치 이전부터 촉이 망하기를 바랬다는 투다.  

 

이중톈에 따르면, 촉한 신민들이 촉의 멸망을 바란 이유는 네가지다.

 

첫째는 이익분배의 불균형 때문이다.

촉에서 고위 관직을 차지한 사람들은 대부분 형주 사람이나 유비를 쫓아온 외부세력이다. 따라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촉한 토착 세력들은 관직에 거의 오르지 못했다. 처음부터 유비를 따라온 사람들은 당연히 익주 사람이 아닌 외부세력들이다. 그외에도 사도 허정은 여남, 중랑장 동화는 남군 출신이니 익주 사람은 촉군태수 양홍 정도밖에 없었다. 익주의 사족에겐 무척 불리한 상황이었으니 그들은 구품중정제에 따라 사족들을 등용하는 조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둘째로는 엄격한 통치가 문제되었다고 한다.

진수에 따르면, 공평한 것과 가혹한 것은 다른 종류의 문제이다. 제갈량의 법치는 매우 공평했지만 한편으로는 가혹했다고 한다.

 

셋째로는 잦은 전쟁이 문제였다고 한다.

제갈량과 강유는 잦은 북벌을 일으켰는데, 군비는 모두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될수 있는대로 쥐어짜다 보니 남는 것이 없을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초주가 반전에 대한 논설인 <구국론>을 지었음에도 처벌당하지 않은 것도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특히 강유는 등애에게 패하면서도 전쟁을 자주 일으켰다.)

 

넷째로는 백성들의 고통때문이라고 한다.

촉은 위나라, 오나라에 비해 인구가 가장 적은 국가다. 아시다시피 1개의 주만을 통치하고 있기에 인구가 많을래야 많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많은 군대를 유지했다. 촉나라 멸망시 촉나라의 가호가 28만, 인구가 94만이었는데 군사는 10만에 관리는 4만이었다고 한다. 9명의 백성이 1명의 사병을 책임지고, 7개의 가호가 1명의 관리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촉에 사신으로 다녀왔던 설후의 보고에도 촉의 백성들은 비쩍 말라있었다고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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