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등지 백묘 鄧芝 伯苗

삼긱감밥 2020. 12. 13.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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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지는 삼국시대 촉나라 사람이다. 자는 백묘이다. 생년은 전하지 않으나 247년에 종예가 등지보고 칠십이라 하니 못해도 177년이전 출생이다. 251년에 죽었다. 원래 후한의 사도 등우의 후손이다. 

 

의양군 신야현 사람이지만, 한나라 말년에 혼란스러운 천하를 피해 촉나라에 들어갔다. 등지는 유장밑에서 중용되지 않았지만 익주 종사 장유는 등지의 관상을 보고 등지가 일흔이 넘어서 대장군이 되고 후로 봉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등지는 이후 파서태수 방희가 인재를 좋아한다고 듣고 방희를 따라갔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이후 등지는 비저각독이 되었다. 유비는 등지와 이야기를 하고 등지의 인물됨이 범상치않다고 생각하여 등지를 비현 현령, 광한 태수로 승진시켜주었다. 등지는 지방관으로 청결하고 엄정하게 업무에 임했고 이후 상서가 되었다.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패한 이후에 아직 영안에서 죽기 전, 손권은 유비에게 우호관계를 요청했고 유비는 송위, 비의를 통해 답장했다. 이후 유비가 죽었는데 제갈량은 유비의 죽음을 손권이 알고 다른 마음을 품을까봐 걱정했다. 그때 등지가 제갈량을 만나 오나라와 우호관계를 수립할 것을 주창하였다.

 

등지: 지금 주상은 어리고 막 즉위하였습니다. 오나라에 중요한 사신을 보내 관계를 두텁게 해야합니다.

제갈량: 그동안 오래 생각해봤는데 보낼 사람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이제 찾았습니다!

등지: 누구요?

제갈량 : 너!

 

이리하여 등지는 손권에게 사절로 가게 되었다.

 

손권: 난 촉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촉의 군주는 어리고 땅은 좁으니까 위나라가 치면 무너질 거 같아서 미룰라고 ㅇㅇ

등지: 오와 촉엔 주가 네개가 있고, 니도 호걸 제갈량도 호걸임. 오에는 장강이 있고 촉은 산맥이 있으니 나아가면 천하를 노리고 물러서도 삼국정립 가능함. 니가 위나라모시면 아마 니는 입조하고 태자도 인질될걸. 그걸 니가 거부하면 위는 널 토벌할거고 그때 우리도 타이밍잡아서 니 칠거고 그럼 닌 끝임 깝 ㄴㄴ

손권: 알았어;

 

손권은 위나라와 관계를 끊고 촉과 우호관계를 맺어 장온을 촉에 보냈다. 촉도 이에 대한 답으로 다시 등지를 오나라로 보냈다.

 

손권: 위나라 망하면 유선이랑 나랑 천하를 나눠서 통치해도 되겠지?

등지: ㄴㄴ 위나라 망하면 니랑 새로운 전쟁이지.

손권: ㅋㅋ 물론 그렇겠지

 

손권은 제갈량에게 편지를 써서 등지가 이전 사자로 말이 화려했지만 속으로 변화가 심했던 정굉보다 낫다고 적었다. 손권은 이후에도 여러번 등지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후한 예물을 주었다.

 

제갈량의 북벌때 등지는 중감문, 양무장군이 되었고 조운과 함께 적을 막은 적도 있다. 제갈량이 죽고는 전군사, 전장군으로 승진하고 연주 자사를 겸하며 양무정후가 되었고 그 이후엔 독강주가 되었다.

 

243년엔 거기장군이 되어 가절을 얻었고 부릉국의 반란을 평정한 뒤 3년후 251년에 죽었다.

 

상벌을 명확하게 하고 병졸을 잘 보살폈으며, 일상생활용 물건은 관에서 공급해주는 것만 쓰고 검소하게 살았다. 소박함이 심하여 처자식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지 못했고 등지가 죽을 때에도 집안에 별다른 재산이 없었다. 이것만 보면 그냥 충직한 청백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등지는 종예전의 기록에 따르면 성격이 교만하고 오만한 사람이라(등지전의 기록대로 좋게 말하면 강직하고 소박한)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했고 존경도 받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등지를 피했다. 대장군 비의 등도 그 앞에선 적당히 겸손한 체 했다고 한다. (위연이 생각나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존경을 적게 받았으며 오직 강유만 등지의 재능을 인정했다.

 

종예전에는 등지가 자신은 70이 넘어서도 군권을 쥐고 있으면서 60이 넘어서 군권을 쥔 종예를 비판하다 반박당하는 내용이 있다.

 

등지: 예에 따르면 예순이면 군사 일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데 니는 지금 병권받냐?

(그 나이에 뭔 ㅉㅉ)

종예: 니는 일흔 살인데도 병권 쥐고있잖아 ㅉㅉ 내가 못할게 뭐있냐

 

등지를 좋아한 사람이 적어서인 때문인지, 북벌에도 참여했고 벼슬이 거기장군에 이르렀음에도 등지의 역사적 사료나 기록은 적은 편이다.

 

등지의 아들 등량이 등지의 작위를 이었고 상서좌선랑이 되었고 진의 광한 태수가 되었다.

 

정사 삼국지 등장종양전에 그의 기록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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