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 고종실록

삼긱감밥 2021. 6. 1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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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철종이 자식없이 사망했기에, 뒤를 이을 사람을 조금 먼 종친중에서도 뽑아야하는 상황이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조심히 처신하며 때를 보아 조 대비와 손을 잡는다. 조 대비는 흥선대원군의 둘째아들을 왕으로 삼고, 이하응과 권력을 조율하려 시도한 것이다. 이는 적절하게 성공하여 고종보다 더 철종과 가까운 종친들이 있었음에도 고종이 왕위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고종이 어렸기에 조대비는 흥선대원군과 정치를 한 뒤 고종이 나이가 든 이후에는 일선에서 물러난다.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잡게되자 매우 정력적으로 개혁에 나섰다. 그는 사대부세력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만동묘와 서원을 혁파하고, 호포법을 실시하여 군포를 부과함으로써 재정개혁에 나섰다. 사대부들이 모두 반대하여 숙종때부터 수십년 수백년동안 지지부진하던 것들이었다.

 

이는 평민들의 지지를 불러왔으나 사대부들은 이익에 반하는 개혁에 저항했다. . 이 모든 것이 집권초 몇년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조선 사회의 오랜 고름을 흥선대원군이 짜낸 것이다. 한편 흥선대원군은 권력으로 이를 무마하고 왕실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 경복궁 중건에 나선다.

 

내정을 개혁한 흥선대원군은 외부에는 척사로 일관했다. 군비를 강화하고 외국과의 통상을 거부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병인양요때는 프랑스 군이 정족산성에서 기습당한뒤 돌아가 큰 문제는 없었지만 신미양요때는 미군의 화력에 큰 피해를 입는다.

 

이렇게 흥선대원군이 정력적인 개혁을 펼치는 사이, 민비와 결혼했던 고종은 나이가 들어버렸다. 문제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정치를 그만두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종은 상소를 빌미로 흥선대원군의 권력을 자신에게 옮기고 민비와 협력한다. 이와중에 민씨 가문들이 중용되었는데 그들은 지나치게 비대한 권력을 뇌물을 받는데 활용하였다. 결국 비리가 다시 폭증한다.

 

민비와 고종은 박규수를 우의정에 등용하고 나름의 개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구식군대의 임오군란이 일어나 선혜청 제조 민겸호가 살해당하고 흥선대원군이 재집권한다. 이는 청나라에 의해 진압되어 흥선대원군은 청나라에 끌려간다.

 

지지부진한 개혁에 불만을 느낀 급진개화파 세력들은 갑신정변을 일으키나 한계를 지닌 탓에 실패하고, 조선의 개혁 세력은 크게 쇠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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