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6 정조실록

삼긱감밥 2021. 6. 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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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죽고, 아들인 사도세도가 죽었으므로 세손인 정조가 즉위했다. 정조는 외척인 홍씨일가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기에 정후겸과 홍인한 등은 별의별 수를 써서 정조를 저지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정조는 홍씨 일가를 등용하는 대신 노론 강경파 김준수를 등용하고, 소론 서명선과 남인 채제공을 통해 균형을 맞춘다.

 

채제공의 등장은 매우 위협적이었기에 소론과 노론은 손을 잡아 남인을 공격하기도 하고 기독교 박해를 일으키려 시도도 해봤지만 정조는 유교를 바로 하면 기독교 신앙은 사라질 것이라고 치부한다. 덕분에 남인들 상당수가 기독교를 믿었지만 즉시 처형당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이가환 등. 

 

정조는 준론 탕평을 이루어서, 영조가 탕평에 우호적인 노론과 소론을 통해 기계적 탕평을 이룬 것과 달리 강경파들도 고루 등용하고 따져가며 탕평을 시도했다. 다행히 권력이 한 척신에게 고루 쏠리지 않고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정조 집권 초반에 홍국영이 세도를 부리긴 했으나 머지 않아 쫓겨났기에 탕평이 유지될 수 있었다.

 

정조는 뒤에서 조종하는 배후 정치도 잘했고, 말도 잘하고 유학도 잘 배워서 뛰어냔 기량을 보였다. 그는 강화된 왕권으로 수원에 화성을 짓고, 장용영을 두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정조가 바라는 이상은 조선 초의 복귀나 주자성리학의 실현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조 자신이 주자성리학의 열렬한 신봉자였던만큼 유교 사대부 국가인 조선의 근본적인 개혁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박시백 화백은 기존의 인식중에 잘못된 것을 지적했는데, 그중 하나가 정조의 즉위에 반대한 이들=홍씨 일가=노론 벽파=정조를 고생시킴 이다. 실제로는 홍씨 일가의 측근 세력은 시파로 발전했고 정조의 즉위에 반대하지 않았던 김종수 일파가 벽파로 발전했다. 그리고 정조는 숙종처럼 환국을 이용해 신하들을 다 갈아버리거나 피의 숙청을 하는 대신 되도록이면 다양한 세력을 한데 아우르려 노력했다.

 

수원 화성의 건립에 관해, 박시백 화백은 화성이 수도로 삼기엔 지나치게 좁아 아마 정조는 훗날 상왕으로 수원에 내려가고 장용영의 호위를 받을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또 박시백 화백은 정조는 사실 내심 사도세자의 추승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노론의 동의를 얻지 못해 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이 적다는 이유로 북학과 실학에 대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어찌되었든 개혁을 통해 정치를 복원하려 했던 정조의 노력은, 정조의 아들인 순조의 비로 안동김씨 김조순의 딸이 내정되면서 머지않아 산산조각나게 된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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