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5 경종 영조실록

삼긱감밥 2021. 6. 1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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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이 죽고 세자가 즉위하니 바로 경종이다. 노론 대신들은 왕위를 제외한 모든 권력의 요지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경종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다. 또한 연잉군을 세제로 임명할 것을 강하게 권하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는 등 기세등등했다. 경종은 유약하고 별 관심 없이 조용히 말을 받아들이니 이대로 노론의 시대가 오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노론측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는 듯 했던 경종이 노론 4대신을 쫓아내고 소론들을 등용한다. 사실 그동안 경종이 노론들 앞에서 고분고분한 척 했던 것은 모두 연기였던 것이다. 경종은 노론의 주장에 반대했으면서도 참다가 기습한 것이다. 연잉군은 자신에게 위기가 닥쳐왔음을 느끼고 정치적 액션으로 정면돌파에 나서서 한번은 성공한다. 

 

다행히 경종은 별다른 후사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종이 몸이 아파 죽으니 연잉군은 그대로 즉위, 영조가 된다. 이번엔 경종때와는 반대로 노론의 지지를 받던 임금에 소론 대신으로 가득찬 조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영조는 계속해서 자신이 경종과 우애가 깊었다고 말했으나 사실 그렇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부터 숙빈 최씨와 장희빈의 사이가 안좋아 친해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경종이 영조를 대하는 태도나 연잉군 시절 영조의 제스쳐도 그렇게 우애가 넘쳐나 보이지 않는다. 아마 무수리 출신 후궁을 둔 영조의 정통성 강화를 위한 정치적 어필인 듯 하다.

 

아무튼 영조는 참 정치적이고 권력에 의욕이 넘치던 군주였다. 그는 소론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직접 제거하지는 않았다. 노론 대신들의 소론 배척 요구가 컸으나 바로 받아들이지 않은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오히려 탕평을 시도하면서 소론과 노론을 함께 끌고가고자 했다. 

 

오랜 기간 제위하면서 그는 소론들의 위협을 많이 받았는데, 이인좌의 난이 가장 큰 위협이었고 효장세자가 독살당해 죽었으며 자잘한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영조가 직접 소론을 공격하지 않아도 소론의 입지는 점점 축소되어갔으며 마침내 탕평이라는 이름 하에 노론 명문가와 척신들이 주가 되는 이름뿐인 탕평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강력한 왕권하에 개혁이 이루어졌다. 영조는 균역법을 실시하여 제도의 개선을 꾀했고(세 부담이 소작농으로 넘어가는 등 한계가 없지는 않았다.) 어염세를 두었다. 어염세를 둔 것은 시기적절한 개혁으로 그동안 왕의 친인척들의 지갑으로 이용되던 것에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또한 직접 백성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효장세자가 독살당했기 때문에 사도세자가 뒤를 잇게 되었는데, 애당초 왕과 아들이 품성이 맞지 않는데다(민첩한 왕과 그렇지 못한 세자) 왕은 글공 부나 유학은 멀리하는 세자를 점점 싫어하게 되었다. 세자는 사냥을 나가거나 몰래 관서에 유람을 하는 등 영조가 싫어할 일을 많이 했고 왕의 마음은 세자에서 훗날 정조가 될 세손에게 옮겨갔다.

 

이런 상황에서 세자가 영조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지자 기행을 일으키니, 영조의 눈치를 읽은 정치세력간 암묵적 타협으로 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고 세손이 뒤를 잇게 된다. 박시백 화백은 영조의 말에 맞춰 세자가 좀 더 노력했으면 어떨까 하며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영조가 정말 오래 살았기에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친다. 어찌되었든 사도세자의 죽음은 계획된 정치적 사건이었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건을 다혈질인척 하면서도 기민하고 치밀하게 준비했던 정치적 군주인 영조는 세손에게 정권을 남기고 오랜 통치끝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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