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적 배경
이 책은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한비자(기원전 약 280∼233년)의 사상을 담은 책이다. 전국시대는 <전국책>이라는 책에서 이름을 유래한 때로, 보통 위,진,한나라가 진나라 땅을 나눠가진 시점/ 월나라 구천의 와신상담에 의해서 오나라가 망한 시점부터 진나라의 천하통일까지를 말한다. 년도로는 기원전 403년~221년 안팎이다.
원래 고대 중국은 주나라의 봉건제도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는데, 이것은 왕실과 성이 같은 희씨의 일족들을 지방에 파견하여 왕으로 삼은 제도였다. 당연히 처음엔 가까운 친척들은 임명했으나, 시간이 오래지나다보니 그 친척들끼리 서로 멀어져서 소원해졌고,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약해지자 각 국가들은 주나라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춘추시대이다. (춘추시대는 노나라 역사서 춘추의 이름을 따옴)
그런데 이 춘추시대는 명목상 주나라 천자가 있는 것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주나라의 힘을 우습게 보고 주변 국가를 자기 맘대로 공격하고 명령하던 시절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주나라를 직접 공격하거나 왕을 일부러 모욕하는 등의 행위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아직 명분도 매우 중요히 여겨졌기에 명분없는 외교는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점점 국가간의 전쟁과 멸망이 반복되자, 이제는 명분이나 예의고 뭐고 그런거없이 서로 하극상을 일으키고 쳐죽이는 혼란 상태로 나아간다. 이것이 전국시대이다.
2. 공간적 배경
한비자는 이러한 혼란기에 전국시대 한나라에서 태어났다. 한나라는 진나라(진시황의 진나라와는 다른 진나라이다. 주나라 성왕의 동생인 당숙 우를 시조로 하는 희씨 성 국가이다. 진시황의 진나라보다 동쪽에 위치했었음)의 신하였던 한씨들이 위, 조씨와 함께 진나라를 쪼개 나눠갖은 것에서 유래했다.
이후 정나라를 멸망시켜서 그 땅을 차지하고, 한소후때는 신불해라는 사상가(주로 법가 계통으로 여겨진다.)를 등용하여 신하를 다스리는 술책을 교묘히 사용, 전국시대 마지막 7개국이 남을때까지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점점 약해져갔다.
결국 한나라는 전국시대 후반기에 살아남은 7개국중 최약체가 되었다. 안그래도 나라 땅도 작은데 이웃 나라들과 국경도 많이 접하고 있어(위,진,초) 툭하면 전쟁으로 핍박당했다. 진시황의 진나라가 중원에 진출하는 입구 앞에 위치하였기에 진나라는 전쟁으로 땅을 뺏기도 하고 협박해서 뺏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한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일조했다. 아직 한비자가 태어났던 시점에서 한나라는 망하진 않았지만 약소국으로 전락하여 멸망을 눈앞에둔 상황이었다.
훗날 초한지때 활약하는 한왕 신(한신과 동명이인으로, 유방에 의해 한나라 왕으로 봉건되나 이후 흉노지역의 방어를 맡다가 흉노에 투항한다)과 장량(장자방이라고도 한다. 유방에 의해 가장 신임받은 책사)이 이 한나라 땅 출신이다.
3. 저자 한비자
본명은 한비로, 한나라 공실의 일족으로 태어났다. 왕족으로 태어난 셈. 초한지에 나오는 한왕 신과 한왕 성, 장량등과는 먼 친척뻘이 되는 것이다. 그는 한나라의 약소국으로서의 비참한 운명을 슬프게 여기고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골몰했다. 그는 순자(보통 성악설로 잘 알려져 있다. 유학자로, 인간의 본성을 선하게 본 맹자, 성무성악설을 주장한 고자와는 달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하며 교육을 통해 깨우쳐야 하는 존재로 보았다.)밑에서 공부를 배웠다.
이 순자와 함께 배운 동문이 바로 이사이다. 이사는 훗날 진나라의 승상이 되어 엄청난 권력을 틀어쥐게 된다. 진나라의 침공을 두려워한 한나라 왕은 한비자를 진나라에 외교관으로 보내나, 오히려 진시황은 한비자를 억류해버리고 만다. 진시황은 한비자의 글을 읽고 몹시 감명받았기에 그를 곁에 두고자 한 것이다. 승상 이사는 한비자가 자신의 총애를 빼앗을까봐 한비자를 찾아가 친구라서 말해주는 건데 어차피 자네는 처형당하기 직전의 상황이니, 차라리 자살을 하라고 권하고, 한비자는 자살한다.
그의 사상은 고국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글은 매우 잘썼지만 말을 잘 못하는 말더듬이로 알려져 있다.
한비자는 순자의 영향을 받아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존재이다. (서양 사상가 홉스의 이론과도 흡사하다. 일부 사회계약론은 이러한 이기적인 인간간의 상호 보장 계약으로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한비자가 바라보는 인간관을 잘 설명하는 일화가 있다. 내저설하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두 부부가 기도를 드렸다.
아내: 우리 부부에게 아무 사고도 없게 해주시고, 베 100필만 주십시오.
남편: 너무 적지않아?
아내: 그것보다 많으면 당신이 그걸로 첩을 둘 거 아냐.
4. 내용
이 책은 저자 한비자의 사상을 담은 것이다. 그 내용은 화술을 다룬 난언편, 사람을 다루고 경계해야할 이야기를 담은 내저설상/하편. 인간군상을 이야기를 통해 정리한 설림편 등이 있다. 책 자체가 군주가 이 책을 읽고 어떻게 신하와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논하고 있기 때문에, 군주의 시점에서 해야할 일이 적혀있다. 따라서 일반 백성들의 처세나 도덕적 사상의 필요는 논하지 않는다.
그는 군주는 법과 술을 통해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다. 법은 모든 백성들, 힘을 가진 중신들에게도 적용되는 공평한 법이다. 법은 부당함과 합당함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벌로 고통을 받아도 합당하다면 옳은 것이며, 한명이 벌을 받아도 부당하면 잘못된 일이다. 술은 신하들을 다스리는 술책이다. 신하들의 이익은 국가나 군주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반드시 신하는 군주의 틈을 노리고 이득을 취하게 된다. 군주는 이러한 신하의 모략과 권세를 잘 이용하고 자신의 술로 조정해야한다. 술은 신하를 다스리고 궤계를 통해 군주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계책이다.
그는 법과 술을 이용한 통치가 아닌 모든 계책을 비판한다. 현명함을 통혜 다스리는 것은 법치처럼 촘촘하지 못하고, 의와 예를 통해서 다스리는 것은 가까운 문제는 해결도 못하면서 심모원려한 척한다고 비판한다. 애당초 그는 인간의 도덕성이 아닌 이해관계를 가치관에 중점에 두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학이 그의 주된 비판 대상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법가의 애달픔이 드러나기도 한다. 관중과 같은 현명한 이들도 포숙아같은 사람에 의해 알아봐져야지만 등용되었는데, 법가는 그럴 수가 없다. 군주 가까운 곳에 있는 총신들과 막대한 세력을 가진 중신들도 법에 따라 공평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누가 이런 사람을 군주에게 추천하겠는가? 한비자의 고뇌가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5. 특징
이 책은 모든 한비자의 내용을 담지 않고 저자인 최태응씨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부분을 일부 생략했다. 그래서 그런지 글이 쉽게쉽게 읽혀졌다.
각 장의 맨 앞에 최태응씨의 생각이 약간씩 담겨있는데 살펴볼만 하다.
6. 기억에 남는 일화
하나는 위에 썼으니 다른 일화를 적겠다.
춘추시대 송나라의 자어가 상태재에게 공자를 추천했다. (자어는 이름으로 보아 송나라 공족의 일원으로 보인다. 송나라의 유력 귀족인 상씨인 것으로 보아 상태재도 마찬가지. 태재는 궁중의 일을 담당하는 고위 관원이다.)
자어: 공자 어때요?
상태재: 공자 보다가 니 보니까 니가 벼룩같어.
자어: 그럼 왕에게 추천하면 왕이 당신을 벼룩처럼 보겠네요?
상태재: 어..어?
상태재는 공자를 추천하지 않았다.
<설림편>
7. 기타
남에게 권할만한 서적이나, 춘추전국시대의 예나 고대 중국의 문화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약간 있다.
많은 고사성어의 원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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