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탈리아 무역, 상인에 대한 책을 저술하신 남종국 교수님께서 지으신 교양 수준의 역사서이다. 중세를 풍미했던 해상 제국인 베네치아가 어떻게 발전했고, 그들의 주된 상업 기반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식으로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다른 식민지를 유지했는지에 대해 쓴 책이다.
책은 매우 좋으며 내용도 어렵지 않으나 다만 약간 중복되는 부분이 조금씩 나온다. 이것은 논문을 편집한 내용을 책에 실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 기원
베네치아는 기존 북이탈리아에서 외부인의 침입을 피해 석호로 대피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다. 처음에는 가난하고 농사가 어려운 동네였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고 소금을 내다파는 생활을 하였다.
이후 무역이 발전하고 다른 이탈리아 라이벌 국가들을 제압하면서 해상 국가로서 발돋움하게 된다. 베네치아의 지도자는 도제라고 불렸는데, 비잔티움의 베네치아 공작 직위를 겸했고 신성로마제국 소속이 아니었다.
2. 진출
베네치아는 해상 무역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에 진출했는데, 크로아티아 해안지대인 달마티아 지역의 도시들의 충성을 손에 넣었고, 이후 지중해 동부에서 무역으로 많은 돈을 손에 넣게 된다. 십자군이 베네치아의 배를 타고 이동한 것도 그 당시에 여러 병력을 싣고 이동할 수 있는 선단을 갖춘 곳이 베네치아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이러한 힘을 이용해서 십자군과 함께 아예 같은 기독교 국가인 비잔티움을 쳐서 무너뜨리고 비잔티움의 잔존 지역을 먹어버린다. 이것이 4차 십자군으로 가라는 십자군은 안 가고 그리스와 트라키아에 십자군이 주저앉아 영토를 나눠먹은 사건이다. 당시 베네치아 도제는 단돌로였는데 그를 황제로 추대하는 안건, 베네치아 수도를 비잔티움 쪽으로 옮기는 안건 등이 논의되었으나 실제로 실행되지 않았다.
대신 베네치아는 비잔티움 영토 일부를 손에 넣었고, 이후 4차 십자군 세력들이 약해지자 그들에게 돈을 주고 영토를 매수한다. 그외에도 비리비리한 세력들이 생기면 지도층에게 돈을 주고 매수하는 식으로 발칸 이곳저곳에서 영토를 늘려 나갔다.
베네치아는 수도를 비롯하여 달마티아 해안지대, 코르푸, 그리스 일부 지역, 크레타 등 다양한 지역을 손에 넣고 무역의 거점으로 삼게 된다. 이에 대항할 만한 라이벌은 같은 상업 위주의 북이탈리아 국가였던 제노바 정도가 있었는데 키오자 전투에서 베네치아가 승리하면서 사실상 대항할 수 없게 된다.
베네치아는 다른 거대한 국가와 예산이 비슷했는데, 베네치아 인구가 적은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부유했던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1400년대 초 무렵 베네치아가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다.
무역을 중심으로 하자는 세력과 이탈리아 내부로 진출하자는 세력의 갈등 에서 후자가 승리하고 이탈리아 북동부로 진출하여 육지 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과 키프로스 획득 정도가 베네치아의 마지막 진출이었다. 이후 동쪽에서 오스만 세력이 압박해오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에 눈독을 들이면서 베네치아는 더 이상 진출할 수 없게 되었다.
베네치아의 출신 교황이 즉위하자 베네치아는 로마냐에 진출했지만 오히려 파문당하면서 사방팔방으로 포위당했고, 주변 국가들이 적으로 돌려지자 그들에게 패해서 이탈리아 북부 영토를 다 잃어버리나 이후 방어하면서 버티다가 기존 영토는 회복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이탈리아 북부 지역으로의 진출은 끝이 나게 된다. 이후 오스만과의 전쟁에서 수백년에 걸쳐 조금씩 영토를 잃어버린다.
저자가 중간에 마키아벨리가 이탈리아에서 통일 세력으로 자라나길 바랐던 국가는 피렌체나 교황령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역량 부족이고 베네치아 정도나 가능했다는 묘사를 하는데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감안할 때 두 나라가 베네치아의 영향력을 북동부에서 밀어낸다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3.무역
베네치아인들은 무역이 주된 업종이었는데 주로 향신료를 많이 거래했다. 주된 거래 상대는 이집트와 시리아를 다스렸던 맘루크 왕조였으며, 그들에게 정기선단을 보내서 거래했다. 저 멀리 아시아에서 오는 향신료를 시리아나 북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사와서 다시 유럽에 내다팔면 30%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후추, 생강 등이 많이 거래되었는데 그중에서 후추는 약간 다른 것보다 싸서 서민들도 평생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이 시기의 '향신료'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음식에 뿌려먹는 것과는 다르게 의학용으로 쓰인 것, 염색에 쓰이는 것 등 다양한 것들을 통칭했다고 한다.
저자는 기존 베네치아 무역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통념을 지적하는데 하나는 향신료가 절대적이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향신료를 고기를 보관하기 위해 썼다는 것이다. 베네치아 무역에서 향신료의 비중이 컸으나 그게 다는 아니었고 그 이외에 면화의 비중도 매우 컸다고 한다. 면화는 수익이 많이 나진 않았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했다고 한다. 면화는 베네치아에서 구해온 재료가 유럽인들에게 많은 옷을 만들 기반이 되었고 향신료가 고기보다 비싼데 고기를 보관하기 위해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한다.
베네치아인들은 자신들의 무역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기선단을 운영했다. 일년 중 일정한 날짜를 정해서 그 전에 미리 바리바리 준비한 다음 특정 지역을 방문하는 정기선단을 보내서(최종목적지는 알렉산드리아나 시리아) 무역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외에 사적인 무역을 실시하는 배도 있었고 그들은 연락선 역할도 담당했다.
이렇게 베네치아의 무역은 베네치아를 강력한 국가로 만들어줬으나, 문제가 생긴다. 포르투갈이 인도양으로 가는 길을 뚫은 것이다. 다행히 포르투갈인들은 인구도 적고 역량도 부족해서 인도양에서 아랍 세력의 무역을 막아버릴 정도로 크지 못했다. 때문에 베네치아는 타격을 입기도 하면서도 그 무역이 다시 되살아나는 등 무너지지 않았다. 포르투갈의 현지인 관리들은 아랍 무역을 눈감아주고 돈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홍해에서 무역이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역량을 갖춘 영국과 네덜란드가 들어오면서 리얼 무역이 망해버리고 베네치아는 관광 국가가 되었다.
4. 기타
베네치아는 산 마르코의 유해를 이집트에서 훔쳐와서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가, 이후 군사적 진출을 많이 하게 되자 사자를 더 많이 상징으로 썼다. 그들은 과두정을 유지했고, 유리 산업, 인쇄 산업이 발달했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거래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명망이 있는 도시였다.
저자는 베네치아에 대해 '근대 제국의 중세적 기원'이라고 설명하는데 아주 적절한 요약이라고 생각한다.
'책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폴레옹 세계사 1-2권 (1) | 2024.07.07 |
---|---|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0) | 2024.07.06 |
서양 중세 상징사 (0) | 2024.07.03 |
비잔티움 제국사 /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0) | 2022.03.13 |
조선의 못난 개항 / 문소영 (0) | 2021.08.13 |
비잔티움 연대기 / 존 줄리어스 노리치 (0) | 2021.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