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공신 정리 3 4

삼긱감밥 2020. 12. 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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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 11위 신무후 근흡(거기장군)

 

 

원래부터 유방을 따라다닌 것은 아니고,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거병하였다가 이후 유방에게 합류했다.

주로 별동대를 이끌고 유방과는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팽성에서 유방이 대패할때는 돌아와서 한나라를 배신한 이들을 공격했다. 한왕 신과 영포의 난 진압에서 활약했다.

 

 

공신 12위 안국후 왕릉(우승상, 태부)

 

 

원래 유방이 형님으로 모시던 건달이었다. 효심이 깊고 건달 기질이 워낙 강해서 의협으로 이름높았다고 한다. 이후 스스로 군대를 모아 거병하였으나, 유방이 촉에서 나올때 한나라 군대에 합류한다. 이후 우승상이 되어 유방 사후에도 국정운영을 담당하나, 여후가 독단적으로 여씨들을 제후로 임명하고 정권을 장악하려 하자 반대했다. 결국 찍혀서 명예직이자 실권은 없는 태부로 쫓겨난뒤 스스로 관둔다.

 

 

공신 13위 극포강후 시무

 

 

역시 처음부터 유방 밑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거병하여 진나라에 싸우다 유방 밑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한신의 제나라 출병에 따라갔다. 한나라 통일 이후는 한왕 신의 반란을 격파하고 한왕 신을 참수했다. 여태후 사후 주발, 진평등과 협력한다.

 

 

공신 16위 분음후 주창(어사대부, 조나라 상국)

 

 

유방과 같은 마을 출신. 종형 주가가 유방을 섬길때 같이 섬기게 된다. 주가는 어사대부를 지내다가 이후 유방이 항우에게 쫓길때 형양성에 남아 위표를 죽이고 항우와 맞서 싸우나 패배해서 살해당한다. 주창은 주가의 지위를 이어서 어사대부를 지냈다.

 

 

성격이 얼마나 강직한건지 괴팍한건지 독설을 서슴없이 했다고 한다. 같은 마을 출신인 조참과 소하가 피했을 정도. 유방이 주창을 쓰러뜨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하나라의 폭군 걸, 은나라의 폭군 주와 같은 폐급 군주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어사대부로 일할때, 조요라는 사람이 자신의 뒤를 이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이를 듣고 조요는 한낱 도필리(글과 문방구를 관리하는 이)인데 무슨 내 지위를 잇냐고 반박했지만, 훗날 정말로 조요가 어사대부가 된다. 유방이 후첩 척부인을 사랑하여 그 아들 조나라왕 유여의를 총애했는데, 유방 자신이 죽으면 나중에 본부인인 여후가 척부인과 유여의을 죽일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유여의는 아직 10살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유방이 조요에게 어찌하면 좋을지 묻자 조요는 성질이 강직한 이가 지키게 해야한다고 주장하여 주창이 조나라 상국으로 가게되었다. 조요는 어사대부가 되었다. 주창은 사실상 좌천이기에 왜 날 보내냐고 따졌지만 결국 가게되었다.

 

 

정말로 유방이 죽고, 여후는 유여의를 중앙으로 소환한다. 주창은 왕이 아파서 못간다고 답했다. 그러자 여후가 또 유여의를 소환했고, 주창은 왕이 아파서 못간다고 답했다. 여후가 또 유여의를 소환하고, 주창은 왕이 아파서 못간다고 답했다. 정말 끈질긴 상국이었다. 그러나 결국 여후는 유여의 대신 조나라 상국 주창을 소환한다. 여후는 주창을 질책하고는 조왕 유여의도 불러들인다. 결국 여후의 막대한 권세를 강직한 신하인 주창이 이기지 못한 것이다.

 

 

물론 유방의 아들인 혜제도 몹시 선한 사람이라, 어떻게든 유여의를 살리려고 했다. 항상 유여의와 같이 다니면서 암살을 막았다. 그러자 여후는 혜제가 사냥나간 틈에 몰래 어린 유여의에 입에 독을 쳐넣어서 죽여버린다. 이후 유여의의 어머니인 척부인의 눈알을 뽑고 귀와 입을 멀게하고 팔다리를 잘라서 돼지우리에 버린다.

 

 

주창은 상국 직위를 사임하고 3년 후에 죽었다.

 

 

공신 21위 괴성존후 주설

 

 

유방의 고향인 패현 사람이다. 보디가드겸 시종이라고 할 수 있을듯. 유방이 처음에 거병할 때부터 유방을 따랐고, 유방의 참승(수레 모는 사람)이 되어 조용히 그를 모셨다. 항우와 유방이 형양에서 대치할 때는 항우군의 군량 수송로를 기습했다. 천하통일 이후 괴성후로 봉해졌고, 진희의 반란때 유방이 직접 진희를 치러 가려고 하자 황제가 직접 전쟁하러 간 예가 없다며 울면서 말렸다. 특별한 비책이나 괴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성실하고 올곧은 마음으로 유방을 섬겼기에 유방이 감격해 사람을 죽여도 사형당하지 않는 특권을 내렸다. 평생 성실하게 유방을 섬기다 죽었다.

 

 

 

 

공신 47위 곡역헌후 진평(좌승상)

 

 

반간계와 모략에 매우 능했다. 처세술도 귀신같아서 기민하게 위기를 넘겼다. 어찌 보면 초한쟁패기의 혼란한 시대 최고의 처세가.

 

 

진평은 원래 위나라 사람으로, 딱히 일은 안하고 형네 집에 얹혀 살면서 책을 읽으며 살았다. 진평이 하도 일은 안하고 먹기만 해서 집은 가난한데 뭘먹고 살이 쪘냐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어느날 마을의 고기를 나누는 역할을 하게 되자, 고기를 반듯하게 사람에게 맞게 딱 나눈 다음 나한테 천하를 맞겨도 이렇게 잘 나눌텐데 한탄했다고 한다.

 

 

맨처음엔 위나라 왕 위구를 섬겼지만, 이후엔 항우를 섬긴다. 은왕 사마앙이 유방에게 항복하자, 다시가서 사마앙을 항우에게 붙게 했다. 그러나 이후 사마앙이 다시 유방에게 붙자 항우에게 처벌당할 것을 두려워해 유방에게 도망간다.

 

 

유방밑에 들어간 다음에는 반간계로 항우군을 이간질했다. 그는 엄청난 양의 자금을 모은뒤, 그 돈으로 산해진미를 준비했다. 그리고 항우의 사자가 도착하자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던 척 하며, 항우의 모사 범증의 사자가 아니라 항우의 사자라면 좋은 음식 필요없다고 치워버린다. 이는 항우가 범증을 의심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범증은 화가나서 항우를 떠나다가 앓아 죽는다.

 

 

그에 대한 워낙 안좋은 소문이 많았고(그가 형수와 간통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자금을 닥치는대로 끌어모아서 비밀리에 쓰자 그를 탄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유방은 딱히 처벌하지 않고 감싸준다.

 

 

이후 형양에서 포위당한 유방을 살리기 위해 여자 2천명을 별동대인척 내보내고 도망가는 전략을 상주, 유방과 함께 도망친다. 주가와 종공, 위표가 남아서 성을 수비했지만 모두 죽는다.

 

 

천하통일 이후, 팽월, 영포, 한신을 토벌하는 계책을 상주한다. 유방이 흉노왕 묵특에게 포위되자 묵특의 아내에게 묵특이 한나라 여인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묵특의 아내가 묵특이 돌아오도록 설득하는 계책을 낸다.

 

 

유방이 죽고 왕릉, 주발 등과 나라를 이끌게 되었는데, 여후가 여씨들을 중용하고 정치를 멋대로 하는 것을 참으며 지냈다. 여후가 죽자 주발과 손잡고 여씨 척살을 일으킨다.

 

 

이후,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자연사한다.

 

 

공신 57위 십방숙후 옹치

 

 

유방의 고향인 패국의 유력자. 유방과는 거병 초기 원수사이였고 오히려 왕릉과 친했다. 그래도 제후로 분봉받는등 운이 좋았다. 유방은 거병할때 풍읍과 패현을 자신의 거점으로 삼고, 풍읍을 옹치에게 맡겼다. 그러나 옹치는 유방이 잠시 떠난 사이에 풍읍을 위나라 왕 위구에게 바쳐버린다. 덕분에 유방은 거병 초기에 거점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후에 항우와 유방이 대결할때 다시 유방에게 붙었다.

 

 

유방이 공신들을 임명할때, 시일이 지나도 모두 임명하지 못했고 공신들은 상을 받지 못할까, 혹은 토사구팽당할까 두려워서 점점 험악해져갔다. 반란을 일으키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장량이 알고 유방에게 옹치를 제후로 봉하도록 건의했다. 가장 유방과 사이가 안좋고 배신 전력이 있는 이가 제후로 봉해지자 다른 공신들은 자신들의 몫도 보장해줄 것이라고 안심했다.

 

 

훗날, 제갈량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익주 남부의 호족 옹개가 그의 후손이다.

 

 

공신 59위 벽양유후 심이기(승상)

 

 

장군이라기 보다는 유방의 가족을 모셨던 사람이다. 특히 여씨 일족과 매우 친해 그 덕에 승상이 되었다. 거병 초기 유방의 형 유희와 함께 유방의 아버지 유태공을 모셨다. 이후엔 유태공과 유방의 아내 여치를 모시다가 팽성대전때 유방이 대패하고 도망가면서 셋다 전부 초나라군 포로로 붙잡혀 죽을 위기를 겪게된다. 다행히 돌아가서 천하통일후 벽양후로 봉해졌다.

 

 

천하통일 이전까지는 성실한 가신으로 보이지만, 통일 이후가 기묘한 인물이다.

 

 

조왕 장오가 유방을 정성껏 대접했는데도 유방이 건방지게 굴자, 장오의 신하 관고등이 왕을 위해 황제를 죽이겠다며 암살준비를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발각되었다. 이때 장오의 옛 첩이자 유방의 총애를 받았던 조씨도 연루되었는데, 조씨의 동생 조겸이 여후와 심이기에게 가서 도와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둘 다 도와주지 않았고, 조씨는 아들 유장을 낳고 자살해버렸다. 이후 관고가 장오가 절대결백함을 주장함으로써 장오 일족은 살아남는다. 장오를 따라온 신하들도 충직함이 인정되어 승진한다.

 

 

유방이 죽고, 여씨 일족의 총애에 힘입어 심이기가 승상이 되었다. 심이기는 하루종일 궁궐 안을 감시하고 신하들의 모든 결재를 자신을 통하게 했다. 그리고 사람을 마구 죽였다. 여후 사후 주발과 진평에 의해 여씨 척살이 일어나자 죽을 위기에 몰렸으나, 변사 주건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고 승상 자리에서 잘렸다.

 

 

그런데 이전에 심이기가 도와주지 않았던 조씨의 아들 유장이 커서 회남왕이 되었다. 이 유장은 성격이 매우 불같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유장은 심이기를 만나러왔다가, 갑자기 철추를 휘둘러서 심이기를 죽여버리고 그의 종자를 시켜 목을 자르게 했다. 허무한 죽음이었다. 주건은 예전에 심이기를 살려낸 것을 문책받을까봐 자살했다. 심이기의 아들 심평은 경제때 모반이 발각되어 자살한다.

 

 

공신 60위 고량후 주가(어사대부)

 

 

분음후 주창의 종형이다. 진나라 사수군의 졸사였지만 유방의 거병 이후 유방을 따라 어사대부가 되었다. 유방이 형양에서 항우에 의해 포위당했을때, 유방은 바깥으로 도망치고 주가와 종공, 위표가 성을 지키게 되었다. 주가와 종공은 이전에 위표가 제후이던 시절 유방을 배신한 경력이 있음을 들어 위표를 죽이고 성을 수비했으나, 항우군에 패하고 사로잡히고 말았다. 항우는 주가에게 투항을 권유했지만 주가는 거절하고 가마솥에 삶겨져 죽었다. 종제 주창이 그의 어사대부 지위를 이었다. 천하통일 이후 아들 주성이 아버지의 공으로 고경후에 봉해진다.

 

 

공신 61위 안평경후 악천추

 

 

특별히 어떤 전투에서 참여해 공을 거뒀는지는 알려져있지 않고, 소하와 조참중 누구를 공신 서열 1위로 할지 공신들이 다툴때 소하를 지지했다. 그는 조참같은 이는 100명이 있든 없든 무슨 영향이 있겠냐며 그의 공은 일시적인 것이었다고 깎아내리고 소하가 관중에서 후방을 담당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소하의 공을 치켜세웠다.

 

 

공신 62위 유문성후 장량

 

 

초한쟁패기 모든 인물중에서 가장 신선같고 무협지 영웅같은 인물. 기록을 살펴보면 사람인지 신선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통일 이전에는 유방을 보좌하여 천하패업을 이루게 했지만 통일 이후엔 모든 정치 일선에서 사라져버린 점도 신선같은 캐릭터를 부각한다. 추가로, 매우 아름답고 여자처럼 생겨서 미청년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어떻게 협객처럼 살았는지 궁금해했다.

 

 

유방의 공신중에서 유이하게 옛 6, 한나라 왕족 출신이다. (나머지 한명은 한왕 신) 그의 조부는 한나라 승상으로 3명의 왕을 모셨지만 한나라는 진나라에 멸망당한다. 장량은 조용히 진시황 암살을 준비하나 진시황의 수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수레를 맞추는 바람에 실패한다. 그는 하비로 도망간다.

 

 

그는 하비에서 한 노인에게 태공망의 병법서를 배워서 병법을 깨우치고, 살마을 죽이고 도망친 항우의 숙부 항백과 아는 사이가 된다.

 

 

이후 유방을 섬겨, 홍문연의 연회에서 죽을 뻔한 유방을 살려준다. 유방이 살해당할 위기에 몰리자, 평소 친했던 항우군의 항백이 이를 장량에게 알려 장량이라도 살아남으라고 조언했고, 장량은 유방과 번쾌를 끌고 완벽히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역상의 형인 역이기가 옛 6국의 후예들을 분봉하여 다시 제후국 체제를 이루자고 하자, 이를 썩은 유생의 헛소리라고 무시하며 반박했다.

 

 

천하통일 이후엔 행적이 거의 없다. 정치를 관두고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공신 65위 북평문후 장창(어사대부, 승상)

 

 

순자에게서 좌전을 배웠다고 하는데, 순자가 기원정 238년경 죽었다고 쳐도 매우 어릴적에 배운듯하다. 음양학, 역법, 산학 등을 잘한 실무형 관료였다.

 

 

원래 진나라 관리로 일하다가 죄를 지어 고향으로 도망쳤으며, 유방이 거병하자 그를 따랐다. 죄를 지어 참형당할 상황이었지만, 왕릉이 장창이 포동포동하고 장대한 것을 보고 인재라 여겨 살려주었다. 이후, 한신과 장이가 성안군 진여를 토벌할때 같이 따라가서 대나라 상이 되었다. 이후엔 장이와 장오를 보좌하여 조나라 상이되었고, 나중에 또 대나라 상이 되어 연왕 장도의 모반 토벌에 활약한다.

 

 

원래 진나라 관리 출신인 만큼, 행정능력, 산학, 음률, 역법등 다양한 실무에 능한점이 인정되어 소하에 의해 발탁된다. 이후 어사대부와 승상을 맡아 나라를 다스렸다. 처첩 수백명을 두고 부귀영화를 누리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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