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혹독한 법치로 백성의 마음이 떠난 나라인데, 조정의 정치까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란 상태가 되자 진나라 전역이 혼란해졌다. 지키기 어려운 잔인한 법 때문에 사람들이 분노에 차있는 상황에서, 중앙 정치까지 엉망이 되자 사람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었다. 중앙 정부는 그때까지도 권력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들고 일어선 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가장 먼저 들고 일어선 사람들은 진승과 오광이라는 자들이었다.
진승은 어린 시절 남의 밑에서 농사일을 하였는데 일을 하다가 멈추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는 나중에 자기들 중 한 명이 부귀하게 되면 지금의 힘든 처지를 잊지 말자고 주장했다. 주변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리며, 어떻게 남의 집 일을 하는데 부귀하게 되냐고 황당해했다.
진승과 오광은 이세 황제 호해가 집권한 첫 해에 징발되었다. 진승과 오광이 때를 맞추어 임지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큰 비가 내렸다. 진나라 법에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참수형을 당하도록 되어 있어서 무조건 도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비 때문에 도착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가서 죽으나 반란을 일으켜서 실패해서 죽으나 죽는 것은 매 한가지니 둘은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의했다.
오광은 주위 사람들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말을 따랐다. 진승과 오광은 관리를 살해하고 징발가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을 설득했다. 어차피 참수형을 당하거나, 변방을 지키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죽느니 반란을 일으키자는 것이었다. 진승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고 주장하여 사람들을 설복시켰다. 궐기한 진승과 오광은 사망한 진시황의 첫째 아들 부소와 초나라의 장군 항연을 사칭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았다.
진승은 주변 고을을 점령하고, 서쪽으로 나아가면서 진나라의 군사를 격파했다. 진승은 진(진시황의 진나라와는 다른 지역으로, 옛 초나라 땅)이라는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수만의 군대를 모으고 기병을 천여 기가 넘게 모았다. 그는 왕이 되었다. 진승이 세운 나라의 이름은 장초張楚였다. 그의 밑에 유명한 명사 장이와 진여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진승에게 군대를 일으켜서 서쪽으로 향하는 동시에 옛날에 진나라에 멸망당한 6국의 후예를 찾아 나라를 복원시킬 것을 조언했다. 그렇게 하면 각 지방의 호응을 얻을 수 있고, 진나라의 적이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진승은 그 의견을 무시했다. 그는 오광을 임시 왕으로 임명해 장수들을 관리하도록 했다. 그리고 장이와 진여, 무신에게 군대를 주어서 조나라 땅을 점령하도록 했다. 그리고 각지에 군사를 파견하여 사방으로 진출했다.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해 앙심을 품었던 장이와 진여는 무신에게 조나라를 차지할 것을 권했다. 무신이 조나라를 점령하자 진승은 남아있는 무신의 가족을 살해하려다가 마음을 바꾸어 조나라에 서쪽으로 진출하여 관중을 점령할 것을 명했다.
하지만 조나라에 있던 장이와 진여는 무신에게 그 명령을 따르지 말 것을 권했다. 무신이 조나라 왕이 된 것은 원래 진승의 뜻도 아니었고, 억지로 참아준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진나라가 멸망하면 장초나라는 조나라를 공격할 것이라며, 서쪽으로 나아가지 말고 북쪽으로 진출하여 북부 지역을 통일하여 세력을 형성할 것을 권했다. 무신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한광이라는 자에게 군대를 주어 연나라에 쳐들어가도록 했다.
연나라의 귀족들은 한광에게 나라를 세울 것을 권했다. 한광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조나라가 진나라로부터 떨어져 나갔듯이 한광도 연나라를 세워 조나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배신이 반복되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혼란한 시대였다.
진승이 왕으로 있는 동안, 정말로 옛날에 진승과 머슴 살이를 같이 했던 친구가 찾아왔다. 나중에 부귀해지면 옛 일을 잊지 말자고 했던 약속을 기억한 것이다. 그는 진승을 만나러 왔다고 궁문을 두들겼다. 진승이 궁문 바깥으로 나오자 친구는 진승을 불렀다. 진승은 자신의 친구를 수레에 태워서 궁에 들어갔다. 진승의 친구는 궁궐에 화려함에 감탄했다.
진승의 친구는 점점 거만해져서 진승의 옛 일을 말하고 돌아다녔다. 어떤 사람이 진승에게, 친구가 왕의 위신을 깎는다고 조언하자 진승은 자신의 친구를 참수했다. 그것을 보고 진승과 알고 지내던 옛 친구들은 모두 진승의 곁을 떠나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진승은 사람을 두어서 장수들을 감독하게 했는데, 그들은 별 일 아닌 잘못도 호되게 처리하는가 하면 자신의 마음대로 임의로 법을 집행했다. 그러자 진승 주변에는 진승에 바른 말을 할 사람이 사라졌다.
진승은 항연 밑에서 부하로 있었던 주문이라는 자에게 군대를 주어서 진나라를 공격하기로 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합류했기 때문에 주문이 진나라와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관문인 함곡관에 도착했을 때 그의 군대는 십만 명이 넘었다. 진나라는 함곡관에 진승의 군대가 도달하자 당황하여 장한을 장군으로 삼았다. 장한에게 진시황릉 공사에 동원된 이들을 사면하여 군사로 주자 주문은 장한의 상대가 되지 못해 패배했다. 장한이 계속 추격해오자 주문은 또 패했고 주문은 결국 자결했다.
오광은 장군 전장과 형양성을 포위하러 떠났는데, 오광이 군사의 일에 무지하자 전장이 오광을 죽인 다음 진나라 군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그 역시 패배해 죽고 말았다. 장한의 군대는 계속해서 진승의 군대를 공격하여 담, 허에서 그들의 군대를 격파했다. 진승은 도망친 장수를 죽였지만 장한의 군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진승은 장한의 군대가 진 성까지 도착하자 직접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여 쫓겨났다. 그러자 그의 수레를 몰던 이가 진승을 살해했다. 진승을 따르던 이들은 얼마 안 되어 장한에게 붙잡혀 거열형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했고, 그의 세력도 붕괴했다.
진승이 죽었지만 반란의 불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장한이 계속해서 동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진승이 죽은 후에 진가라는 자가 경구라는 자를 초나라 왕으로 삼았으나, 북진하던 항량에게 패해 전사했다. 항량과 장한의 대결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