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전국7웅

삼긱감밥 2020. 11. 3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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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는 관중지역에 도읍했었던 국가다. 원래 정식 제후국이 아닌 부족국가였으나 주나라가 융적의 침입을 받아 위기에 처한 것을 구하여 제후로 봉해지게 되었다. 이후 천혜의 요지인 관중(동쪽으로 가는 관문만 막으면 모든 동쪽에서의 공격을 차단할 수 있었음)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점점 강대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진목공은 춘추5패로 여겨지기도 했다. 진목공 때까지 순장제도가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다른 민족들과는 문화와 풍습이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상앙의 변법이후 굉장한 강대국으로 도약했다. 전국시대 이후 중원 진출을 개시하여 함곡관 동쪽의 위, 한나라 군을 격파했다. 촉나라를 공략하여 배후를 안정시키고, 한수와 상용지역을 공략함으로써 초나라를 공격할 발판을 얻었다. 이후 툭하면 초나라를 공격해 땅을 뜯어내었다. 진시황때 나머지 6국을 모두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나, 환관 조고의 전횡과 권력층의 내부분열, 지나친 압제로 인한 백성들의 저항으로 20년도 못가고 망한다. 장한, 사마흔, 동예가 진나라 출신이다.

 

 

, , 위나라는 진시황의 진秦나라와는 다른 한자를 쓰는 진晉나라의 신하들이 배신을 일으켜 주인의 나라를 나누어 가져 만든 국가다.

 

 

한나라는 이들 중 최약체였다. 인구도 적고 진나라에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서 살아남기 힘들었다. 진나라의 신하였던 한씨 가문이 땅을 분봉받은 것이 기원이다. 이후 한소후 때 신불해의 개혁을 통해 강해졌다. 정나라를 멸망시켜서 그 땅을 빼앗기도 했지만, 진나라의 중원진출로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진나라가 본격적으로 중원에 진출하기 시작하자 수난이 이어지게 되었다. 위나라와 연합하여 이를 막으려 했으나 대패하면서 실패하고, 스파이 정국을 보내서 쓸데없는 토목 사업을 벌이게 하나 이것도 들킨한다. 이후 멸망한다. 장량과 한왕 신(한신과 동명이인)이 한나라 출신이다.

 

 

위나라는 진나라의 신하였던 위무자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이다. 건국 이후 위문후 시기가 전성기였는데, 자하를 스승으로 삼고 위성자를 재상으로 삼았으며 오기로 하여금 나라를 지키게 하니 진나라의 공격에도 끄떡없었다. 그러나 이후 위나라 혜왕 때 수도 안읍을 점령당하고 대량으로 천도, 이후 양나라로 불리게 된다. 한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 이후 신릉군 위무기가 합종책으로 진나라의 진격을 잠시 막지만, 그가 죽자 얼마 못가고 멸망한다. 장이와 진여가 위나라 출신으로, 장이는 신릉군 위무기의 식객이었다.

 

 

조나라는 진나라의 신하였던 조쇠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이다. 일찍이 북쪽으로 눈을 돌려 대나라를 멸망시켜 점령했고, 조무령왕때는 아예 북쪽 오랑캐들을 본받아 그들의 기병전술을 채용한다. 옷도 그들의 옷을 따라 입어 조무령왕은 호복기사라고 불렸다. 기병전술의 채용으로 조나라는 강대해졌고, 조나라 혜왕 시절에는 대장군 염파, 재상 인상여, 왕의 동생이자 전국 4군자였던 평원군, 장군 조사등의 활약으로 최전성기를 누렸다. 조사의 활약으로 진나라의 침공도 막아낸다. 그러나 조사의 아들 조괄이 장평대전에서 대패하면서 40만 군사를 모두 잃었고, 이후 급속히 약해지며 멸망한다. 조나라 왕 조헐이 조나라 출신이다.

 

 

연나라는 전국7웅 중에서 제나라와 함께 그 기원이 가장 오래된 나라이다. 주나라 무왕의 아들인 소공 석이 연나라에 봉해진데서 유래했다. 워낙 궁벽한 최북단에 위치해서 인재가 모이지 않았다. 연소왕이 악의를 등용하고 나라가 잠시 강해지지만, 이후엔 점점 약해져 다른 나라의 침공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나라가 멸망하고, 맨 마지막에 연나라 태자 단이 형가를 보내 진시황 암살을 노리나 이것도 실패. 연나라 공실은 요동으로 도망가나 잡히며 멸망한다.

 

 

제나라는 주나라 무왕을 도운 태공망(강태공)을 제나라 땅에 보낸 데서 유래한 나라이다. 평야지대에 위치하여 바다를 끼고 있었기에 항상 경제적으로 부유했다. 그러나 점점 이상하고 탐욕스러운 군주들이 즉위하고 내분이 일어나면서 공실이 약해졌다. 이를 노려 망명귀족 출신으로 강씨 공실과 전혀 상관없는 전씨들이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는데, 이것을 전제라고 한다.

 

 

전국시대의 제나라는 전제이다. 제나라에는 광장같은 훌륭한 장군도 있었고, 잠시 맹자가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제나라 선왕 시절에는 많은 학자들이 모여서 직하학파를 이루며 문화국가로 발돋움한다.  한때 진나라는 서제, 제나라는 동제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으나, 제나라 민왕 때 연나라의 악의에게 크게 패하면서 국력이 급격히 쇠퇴했다. 이후에는 진나라에 항복한다.

 

 

초나라는 춘추시대 초기 형만, 오랑캐라고 얕잡아 보였다. 춘추시대 초기만 해도 남쪽 오랑캐 국가취급이었으나 이후 전국시대에 돌입하면서 강대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옛 오나라와 월나라 땅을 모두 보유한 강대국이었지만, 남쪽 땅에는 불모지나 습지같은 미개척지가 많았다. 또한 인구가 밀집한 지역 간의 거리가 멀었다.

 

 

초나라는 많은 인구와 군사에도 불구하고 장의의 계략에 당하는 등 진나라에 계속 밀렸다. 초나라 회왕(항량이 데려온 양치기 초나라 회왕의 선조)때는 왕이 진나라에 방문했다가 붙잡혀서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치욕을 당한다. 그래도 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진나라를 제외한 6국이 동맹을 맺는 합종책이 이루어질 땐 항상 일익을 담당하였다. 춘신군 황헐때 마지막으로 진나라에 대항한 합종을 이루지만, 진나라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해산한다. 이후 초나라를 향해 진군하는 진나라 군사에 패배하고 동쪽으로 계속해서 밀려나다가 결국 망하고 만다. 진나라에 대항해서 싸운 항연 장군이 유명하였다. 유방, 한신, 항우는 모두 초나라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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