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대 세계의 전쟁 청동기와 전차

삼긱감밥 2021. 6. 2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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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 시대 이전, 고대 세계의 전쟁에서 크게 분기점이 될 만한 변화가 두 가지가 있었다. 이 두 가지 변화는 고대 세계의 지배 계급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으나, 피지배계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하나는 청동기의 도입이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장비로 쓰이면서 큰 변화를 이루었다. 새로운 무기와 장비로 무장한 전사가 출현하고, 청동을 이용해서 다양한 물건을 만드는 직인이 등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전사 계급이 청동을 완전하게 독점한 것은 아니었다. 사제 등 성직자 계급도 청동을 사용했기 떄문에 청동이 지배 계급의 상징이지 전사 계급의 상징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또한 이런 청동기 사용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청동의 보급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을 이용해서 만드는데, 보통 구리와 주석은 같은 곳에서 나지 않고 떨어져서 분포한다. 게다가 주석은 상대적으로 귀해서 아무데서나 나지 않는다. 

 

따라서 청동은 철광석처럼 도처에 있어서 많이 보급할 수 있는 광석이 아니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청동기를 이용한 제품도 귀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청동을 교역하기 위한 운송 루트가 개발되어야 했고 운송을 통해서 원료를 구해오면 이후 직인이 만들어서 지배 계급이 사용해야 했다.

 

다른 하나는 전차의 도입이다. 이 전차는 현대의 TANK가 아니라 마부가 말을 끌고 전사가 합성궁을 쏘는 형태의 무장 장비다. 앞에서 말들이 전차를 끌고 전차에는 바퀴가 연결되어 있어서 말을 따라 이동했다. 대부분의 전차 형태가 비슷했던 것으로 미루어 동시다발적으로 각 지역에서 전차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이 전차를 발명하고 이후 다른 지역에 같은 형태의 전차가 퍼져나갔던 것으로 추측된다.

 

전차에는 큰 문제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평지에서만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말에 비해서 훨씬 제한된 조건의 장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바퀴를 쓰니까 산이나 지형이 험난한 곳에서는 전차를 이용해서 싸울 수가 없었다. 또한 늪이나 지형이 좋지 못한 곳에서도 효용이 떨어졌다.

 

그러나 의외로 이런 치명적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전차는 잘 쓰였다. 전차가 등장한 시기에 전차를 사용할 정도의 문명권 대부분이 평지 인근에서 농업생산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전차를 이용해서 싸울줄 아는 계급은 특권 계급이 되었고, 전차를 가진 자들이 왕과 지배권을 나누어 행사하는 사회가 등장했다.

 

춘추시대에 주된 강대국은 중원의 진나라와 남쪽의 초나라였다. 춘추시기 후반에 오나라가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전차를 이용해서 싸우는 법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주의깊게 살펴본 진나라는 오나라에 사람을 파견하여 전차를 이용해서 싸우는 군사기술을 가르쳤다. 이렇게 전차로 싸우는 법을 배운 오나라는 초나라의 동쪽에서 속국을 공격하고 마침내 수도를 함락시키는 등 골치아픈 존재로 성장했다.

 

청동은 이후 소아시아 인근에서 철기 기술이 개발되면서 밀려난다. 철기는 다양한 곳에 산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청동기보다 훨씬 많은 사람에게 보급할 수 있는 무기였다. 이렇게 철기가 개발됨으로 인해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철로 무장할 수 있게 되었다.  

 

전차는 승마술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말을 타서 싸우기 시작하면서 뒤로 밀려났다. 이것은 여담인데 바로 1인 1마의 승마술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아시리아에서는 2인 1조의 말과 사람을 두어서 한 마부가 두 말을 끌고 다른 쪽 전사가 활을 쏘는 형태도 시도해보았다고 한다. 

 

이후 말과 사람이 익숙해져서 사람이 말을 타고 활을 쏘는 형태의 승마가 자리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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