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청동 대포와 전쟁

삼긱감밥 2021. 7. 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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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14세기 무렵에 대포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대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포와 상당히 달랐다. 일단 대포의 모양이 지금의 모양과 같지가 않아서 화병 모양이었다. 또한 이동이 힘들어서 사실상 전쟁터에서 무기로 쓸 수가 없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에 대포는 초기에 바로 전장에 투입될 수 없었고 실험용으로 쓰여야 했다. 대포를 쓰더라도 제작해서 이동시킨 다음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이 잘 안되니 발사할 곳 근처에 만들어놔야 했다.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대포에 많은 개량이 이루어졌다. 대포를 화병 모양에서 관 모양으로 바꾸었고, 대포를 이동시키기 위해 많은 구조와 형태 개량이 이루어졌다. 대포의 주된 재료는 청동이었다. 철은 좋은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술력 부재로 쓰이지 못했다. 대포의 탄알은 처음에는 돌을 썼으나 이후 철로 바뀌었다. 

 

대포는 야전보다는 공성전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대포가 있는 쪽은 포위 전략이나 출혈을 강요당하는 돌격을 하지 않고도 성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방어하는 측에서 자신들의 우위를 믿고 무한정 버틸 수 없게 되었다. 

 

대포가 발달하기 이전에 성을 함락하려면 포위전을 해야했다. 직접 공격하려면 막대한 인력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상황이 이러니 보급선을 막은 후에 성이나 도시에 있는 식량이 다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전쟁 기간을 장기화시켰다. 전쟁 자체가 돈이 많이 드는 일인데 적진에 와서 죽치고 앉아 공격군 보급도 해야 하니 성을 공격하는 측에 불리한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대포의 발달이 이러한 전세를 바꾸었다. 

 

특히 프랑스와 부르고뉴의 군주들은 좋은 대포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랑스 왕과 부르고뉴 공작은 형식적으로는 프랑스 왕이 주군이었지만 서로 저지대와 프랑스의 패권을 두고 경쟁했다. 주된 대포를 공급하는 유명 지역으로 떠오른 곳은 리에주 주교령이었다. 저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중립을 선언한 이후 대포 제조의 메카가 되었다. 

 

대포 원료로 필요한 것들은 주로 중부 독일이나 보헤미아의 에르츠게비르게에서 들여왔다. 이로 인해 이들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렇게 발전된 경제는 대포가 이후 철로 만들어지면서 타격을 입었다.

 

대포의 발전에 맞서서 수성 측에서도 변화가 있게 되었다. 프랑스의 군주들은 대포를 활용해서 이탈리아 도시들을 공격하고 이탈리아에 영향력을 넓히려고 했다. 이탈리아 도시들은 대포를 앞세운 프랑스 공격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군사 기술자들이 대포에 맞서서 성을 방어할 수 있는 다양한 건축을 내놓았다. 이러한 기술이 다른 지역에도 퍼지게 되면서 대포를 가진 국가들의 독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방어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더 거대한 제국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도시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을 개량하여 더 강한 방어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후 등장한 중앙집권화된 국가들이 주변 지역을 손쉽게 손에 넣고 더 통일된 국가로 나아가기 쉽지 않았다. 이로 인해 유럽에 거대 국가를 만드려는 야욕은 좌절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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