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al Experiments Lain 게임

Serial experiments lain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과 게임이다. 90년대 말에 만들어졌는데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인터넷과 네트워크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은 안 봤지만 컬트한 인기가 있다고 들었다. 게임은 사실상 애니메이션과 별개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주요 캐릭터도 달라서 별개의 작품이라고 봐야 할 듯 하다.

 

아무튼 이 레인 게임버전을 알게 되었는데, 몹시 절망적이고 음울한 부분이 놀라웠다. 이 게임은 90년대 후반에 나왔다가 열악한 게임성 때문인지 금세 사라졌는데, 지금은 재평가되어서 가격이 꽤 비싸다고 한다. 게임성은 당대 기준으로도 좋은 편이라곤 못하겠다.

 

이 게임의 주인공은 레인과 토코이다. 레인은 중산층 가정에서 살고 있는 학생인데, 초등학교때 등교거부를 겪었고 자신의 정신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자신에 대해 염려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토코는 미국에서 유학을 다녀온 의사로, 카운셀러도 겸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레인을 맡아서 치료를 위해서 노력하는 젊은 여성이다. 

 

레인은 초등학생때부터 정신이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환각을 보는듯한 언급을 한다. 정상적인 어린아이인데 다소 소극적이고 우울해보이는 정도일 때도 있지만, 정도가 심해서 일상생활이 쉽지 않은 듯한 묘사도 있다. 토코는 이런 레인을 상대로 상담을 하면서 깊은 신뢰를 쌓고 레인을 섬세하게 대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이 둘의 관계는 붕괴한다. 레인은 중학교에 입학한 후 다소 나아진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가정이 붕괴한다. 아버지가 이혼하고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위기에 몰린 모습을 보이자 레인도 불안을 겪게 된다. 집에는 잡초만 쌓일 뿐이다. 불안해하는 레인에게 똑바로 대처하지 못하고 토코는 자신의 입지가 연구소에서 위기를 겪자 당황한다. 지도교수에 의한 과한 업무 부담, 지도교수의 갑작스러운 자살, 연인과의 관계 붕괴 등 다양한 요소가 토코를 괴롭힌다.

 

레인은 컴퓨터 활용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웹상에서의 활동에 점점 의존한다. 학교를 가지 않고 정신적으로 공황에 빠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토코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점점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어머니는 이를 지탱하지 못한다. 토코는 자신이 연구소에서 논문 작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잡무만 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연구소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고 있으며 연인은 자신을 떠나갔고 자신은 인간관계의 구석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둘의 모습은 토코와 레인의 일기, 카운셀링 기록, 공식 기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읽고 둘의 관계를 유추하고 스토리를 감상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의 영상이나 음악은 후에 만들어진 인디게임 유메닛키와 매우 비슷하다. 특히 도시를 걷는 영상의 소리가 유메닛키에서 나오는 네온 세계의 소리를 연상시킨다고 느꼈다. 

 

초반부에는, 레인은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인식하지만 불안을 느끼면서도 노력하는 태도를 보인다. 토코 역시 자신의 첫 상담 대상을 위해서 성실하게 노력하고 꼼꼼한 기록을 남긴다.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상담 대상이 상처받지 않도록 노력하며 심리적 공감을 쌓는 모습도 보인다. 상담자인 토코도 외동딸로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레인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레인은 웹으로 도피하고 토코는 자신의 불안한 정신을 상담에서 숨기지 못한다. 토코는 전문가로서의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짜증과 불안을 표시한다. 토코의 기록은 레인에 의해 해킹되기에 이르고, 토코가 레인의 상담 내용에 불신을 갖기 시작하면서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점점 기괴해지는 대화 속에서 게임은 배드엔딩으로 나아간다. 

 

레인과 토코의 불안한 일면, 정신이 염려되는 상황에서의 스트레스를 잘 표현한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