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
1. 내가 이전에 윤흥길씨의 완장, 장마, 기억속의 들꽃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윤흥길씨의 책으로 유명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사서 읽게 되었다. 알라딘에서 저렴하게 구매하였는데 책의 표지 디자인이 몹시 옛날 것과 비슷하여 80년대 소설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책 판본자체는 2000년 이후 것이라서 놀란 기억이 난다.
2. 이 책은 윤흥길씨의 단편 소설을 모은 것인데, 각 단편소설 중 4개는 서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이고 나머지 소설들은 개개의 독립된 소설이다. 이 소설들은 서로 주제의식도 다르고 글의 내용이나 느낌도 다르다. 연작 소설인 4개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 날개와 수갑, 창백한 중년이다. 작중 시간순서대로는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사내-> 직선과 곡선->창백한 중년->날개와 수갑 순서이다.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화자 오선생은 집을 사서 세를 놓고 있는 사람이다. 선생 월급에 무리해서 집을 산 탓에 돈이 모자라서 세를 놓게 되었는데, 아내는 아이가 둘 이하인 집에 세를 놓자고 주장하여 권씨 일가가 세입자로 들어온다. 이들은 20만원인 세를 10만원만 내서 들어오는데, 그들이 가진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입자가 들어왔는데 경찰이 들어와서 권씨를 감시하고 그들의 정보를 건네달라고 요구한다. 오선생은 나름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기에 특별히 그 요구에 응대하지는 않지만, 권씨가 전과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권씨는 과거 사회의 안녕질서를 위협하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권씨의 가족은 아내와 자녀가 있는데, 권씨는 무척 작은 사람이고 구두를 제외하면 세간 살림살이도 몹시 볼품이 없다. 하는 짓을 보면 나름 배운 사람인데 가끔 노가다도 하고 그런다. 오씨는 자기보다 없는 사람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하는지 갈팡질팡하는 사람이다.
오씨가 원래 살던 동네에서 오씨는 거의 얼마없는 선생으로 마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주변 마을 사람들은 매우 경제적으로 어려웠는지, 오씨의 아들이 가난한 애들을 상대로 음식을 개처럼 집어던져서 줏어먹게 하는걸 보고 오씨는 오씨의 아들을 두들겨 팬다음 다른 동네로 이사온 것이다.
그는 찰스 램과 찰스 디킨스에 대해 생각한다. 찰스 램은 어려운 환경에서 인격적인 삶을 살았지만 찰스 디킨스는 빈곤한 아이들이 오면 지팡이로 쫓아버렸다던가. 램처럼 살고 싶어도 디킨스처럼 살게 되는 것이 사람 사는 어려움이다.
그래서 어떻게하면 좋을지 몰라서 권씨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권씨가 노가다하는 것을 본 후에 권씨가 들어와서 오씨와 대화하게 된다. 권씨는 안동 권씨출신이고,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대학을 졸업했고, 출판사에서 일했었는데, 광주대단지 사건 때 사람들이 참외를 빼앗는 것을 보고 참여했다가 옥살이를 한 사람이다.
그래서 전과가 생겼던 것이다. 권씨는 자기가 그래도 대학나온사람임을 계속해서 어필한다. 오선생과 아내는 처음엔 권씨 부부를 내심 경계했지만 이후에는 권씨 부부를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도와준다. 권씨 아내는 배가 점점 불러오더니 애를 낳아야 하는데 수술비가 필요하게 된다. 학교에서 일하는 오선생에게 권씨가 와서 10만원만 빌려달라고 하자 오선생은 거절한 후에 아차 싶었는지 가서 수술비를 대준다.
권씨는 그것을 몰랐는지 한밤중에 오선생에게 강도짓을 하려고 쳐들어온다. 오선생은 권씨를 배려하여 강도가 놓고간 칼도 돌려주고 대문이 어딘지도 알려주지만 권씨는 그것을 강도대접하지 않은 것으로 치욕스럽게 여겨서 사라진다. 권씨가 살던 셋방에는 가족들과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는다.
여기까지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다.<직선과 곡선>, <날개또는 수갑>,<창백한 중년>에 따르면, 이후 권씨는 술집에서 나이든 작부를 만나서 자살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게 신호위반 차량에 치이고, 그 차량의 주인이 중소기업 사장이라 그 기업에 취업하게 된다.
한 기자가 사장과 권씨의 사진을 찍으며 자해공갈범을 용서하고 취업시킨 회장의 미담이라고 가짜 기사를 쓰지만 권씨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오선생은 이에 대해서 화를 내지만 권씨는 삶의 포기 상황에서 생존 전선으로 나아간다.그런데 권씨가 취업을 하고 보니 공장에 무보직으로 보내진다.
알아서 나가라는 의미였는데 공장 직원들은 공포에 시달린다. 권씨가 대졸자인데 아무 일도없이 공장에 와서 놀면서 주변을 살피는 것(할 일이 없어서 돌아다니면서 뭐할지 물어본 것임 사실)을 보고 사장이 보낸 감시자인줄 알고 벌벌 떠는 것이다. 그러다 한 직원이 폐결핵에 걸린다. 그 남자친구도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둘은 사정사정해가면서 권씨에게 타인에게 알리지 말라고 빈다.
그러다 나중엔 권씨에게 거의 빌지만 권씨는 아무 힘도 없는 그냥 직원에 불과하고, 폐결핵에 걸린 직원은 폐결핵이 들통나서 해고당한다. 직원은 잘렸는데도 출근하여 공장에서 일하다가 팔이 잘려나간다. 직원의 남자친구는 화가 나서 권씨를 두들겨 패는데, 얼마나 팼는지 권씨는 기절한다.
기절하면서 노동조합 간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이후 사장과 투쟁하게 된다.이 소설들은 70년대 당시 한국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데, 특히 <엄동>과 같은 것은 성남에 대한 묘사가 많아서 인상깊다. 지금의 성남은 사실 수도권 외곽과 비교하면 (분당이 아니라 수정,중원구도) 나름 지가가 높고 살기가 편리한 곳인데 당시의 성남사람인 주인공은 성남사는 것을 병적으로 치욕스럽게 여긴다.
소설들의 장점이, 나름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다는 것이다. 윤흥길씨의 소설은 윤흥길씨 소설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맛이 있다. 뭔가 도시전설처럼 불안하거나 인간이 가진 불쾌함이 드러나거나 한다. 그런데 그것이 아주 처절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단점은 일부 인물들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너무 대놓고 말한다. <직선과 곡선>의 권씨, <날개또는 수갑>의 수습사원 등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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