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오단장은 빙과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가 쓴 소설이다. 이 책은 추리 소설이지만 다른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과는 다르게 침잠하는 분위기의 기이한 소설이다.
배경은 버블이 붕괴하고 경기 침체가 온 일본이다. 주인공은 대학에 다니다가 집이 망하는 바람에 돈이 없어서 휴학하고 큰아버지의 고서점에서 일하는 휴학생이다. 어느날 고서점에 손님이 한 명 오는데, 어떤 책을 하나 찾아달라고 한다. 그 책은 정식 편집된 출판본이 아니라 동인지에 투고된 단편 형식의 글이다. 그는 이 책을 찾아준 후에 이러한 형태의 책이 5권 있는데 찾아줄 때마다 10만엔을 주겠다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고 큰아버지 몰래 책을 찾아주기로 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의뢰인이 찾아달라고 하는 책들은 의뢰인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썼던 단편 모음이다. 이 단편들은 리들스토리라고 하는데, 소설 내적으로 특정한 결말이 나오지 않다가 마지막 한 줄로 결말이 주어지는 방식으로 나온다. 중반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다가 결말 부분이 없다. 그러면 나중에 의뢰인이 결말을 알려주는 식이다.
주인공은 이 의뢰인의 아버지가 쓴 글들을 모으면서, 왜 의뢰인의 아버지가 이러한 글을 썼는지,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사해가면서 글을 쓰게 된 동기에 접근하게 된다.
이 책의 핵심은 이 리들 스토리인데, 5가지가 있는데 모두 어떤 곳에 갔다가 외지인이 독특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는 줄거리다. 이것이 기이하고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리들 스토리가 맞는 사람은 이 책이 맞을 것이고 아닌 사람은 별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농담으로도 밝은 분위기라곤 못하는 이야기다. 작중에도 이런 소설이면 남에게 공개하기 좀 그런거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리들스토리 외적으로도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망해가는 세계관이다. 중간에 등장했던 히로인 격 인물인 알바생은 취업이 안 되서 사라져 버린다. 주인공의 집안은 버블 때 잘못된 판단을 해 망해버리고 말았다. 주인공 큰아버지와 주인공이 먹는 식사는 단무지나 전갱이 뿐이다.
큰아버지는 아내와의 추억이 있는 자리라며 서점을 팔지 않으려다가 버블 오니까 팔려고 했는데, 버블이 끝나서 무섭게 우스워졌다. 의뢰인 아버지는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으나 마지막에 다른 지역의 회사원이 된 것으로 보아 가산을 탕진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삶의 여유가 없이 차가운 사람들이다. 잘 생각해보면 의뢰인도 죽은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애초에 죽음을 그렇게 추도하는 느낌이 아니고 아버지에게만 관심이 있다. 의뢰인의 아버지와 관련이 있다가 이후에 주인공과 대화하는 사람들도, 의뢰인의 아버지와 잦은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다가 봤던 얘기, 예전에 받았으나 까먹은 편지에 대해 답하는 것이다.
주인공도 아버지의 기일에 집안에 내려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머니 혼자 있을 것을 알지만 망해버린 집에 가기 싫은 것이다.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말하는 새로운 시작은, 돈이 없으니 주인공이 대학을 자퇴하고 고향에 돌아오는 것이다.
리들스토리중 3가지는 그동안 자기가 유지해 온 컨셉이나 삶의 방향 / 실리 중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큰아버지의 서점 매도 시도 / 의뢰인 아버지 시점에서 아내와의 부부생활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런데 이 두 명은 그 컨셉과 실리를 다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아무튼 침잠하면서 가라앉는 세계관 속에서 기이한 이야기들을 알려주는 것이 좋은 책이다. 리들 스토리 중에서 기적의 소녀가 매우 마음에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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