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인터넷 흐름에 대한 냐루라 씨의 의견

삼긱감밥 2024. 7. 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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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디걸 오버도즈의 제작자인 냐루라씨는 자신의 노트 사이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쓴다. 대부분은 그날그날 자신이 겪은 일이나 신변잡기식의 이야기가 많지만, 때때로 작품을 완성하거나 타인의 작품을 보고 느낀 점을 글로 쓰는데 그것이 영양가가 있다. 워낙 솔직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가 이게 또 재미도 있고 생각할 여지도 많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그는 이런 글을 썼다.

"자아에 대한 진정한 이해자는 자신과 그 주변인물이어야 하고, 인터넷의 흐름에 자아를 잃으면 게임 오버이므로 인터넷 타인의 영향을 받기 전의 자신의 의견, 감상을 써넣는 것으로 자아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

이건 냐루라씨가 한 말이다.

인터넷의 흐름에 자아를 잃어서는 안 되는데

일단 아무 의미가 없는 소수 의견을 흐름이라고 판단하고 들어가버릴 수가 있다. 인터넷이나 SNS에서 본 것은 개인의 의견인 동시에 다수의 의견이다. 또 반대하는 의견이 너무 많은 곳에서는 분화가 일어나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 또 네트워크가 되고 하므로 아주 다양한 곳을 모두 내가 살펴볼 수는 없다.

따라서 아마 내가 뭔 글을 봐도 대충 비슷한 사람들이 섞여서 대화를 하고 보고 있는 것일텐데, 그런 흐름에 말려들어가면 극단적으로 소수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을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가 있다. 현실에서 아무런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을 어디서 보니까 다수라서(소수여도 중요한 생각이라고 봐서가 아닌) 믿는다면 허망한 일이다.

또 소수 다수여부랑은 또 상관없이 인터넷의 흐름 자체에 빨려들어가면 안되는데, 남의 의견을 내 의견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아무런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흐름에 맡겨서 판단하다 보면 그 흐름이 잘못되어 있고 빠지는게 손해거나 나랑 안 맞아도 흘러가는데 껴야 하므로 말도 안 되는 억압이 된다.

또한 흐름이 자아를 판단해줄 수가 없다. 흘러가는 것은 그냥 다 끌고 흘러가는 것이다. 내 현실 주변 사람은 내 자아를 알고 환경을 알며 무슨 상황인지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도 대충 눈치를 깐다. 따라서 내 자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엄청난 우위를 가진다. 이런 사람과 자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흐름에 자아를 던져뒀다가 끌려가는 것은 크게 다르다.

자신의 의견, 감상과 관련해서도 생각해볼 점이 있는데, 어떤 것을 내가 별로거나 좋다고 생각해도 타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꺾는다면 내 자신의 기호에 대해 파악할 수가 없게 된다. 남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다.

"SNS에서는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추천하는 글이 흘러오지만, 다른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초인은 뭐냐,"

이건 냐루라씨의 지인이 한 말이다.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글이 올라오는데, 우리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의 진위도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 내용의 배경과 전제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에게 제시되는 것은 당연히 결과뿐이다. 과정이 암시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것까지 생각하기 보다는 가볍게 스낵을 먹듯이 넘겨짚고 말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안 그래도 시간이 짧은 내용 소비인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귀인 오류까지 더해져서 나는 사정이 있어서 망한 것이고 남은 지 잘못이라 망했다는 생각이 강화될 것이다. 이런 결과 남이 뭔가를 잘못했다면 그것을 그 사람의 본성에 책임을 묻고 개인의 결점으로 보고 비판하거나 비웃게 된다.

또한 그런 사람으로 인해 피해를 겪거나 같이 손해를 보게 되면 그건 원래 그런 것이고(이것도 후견지명인데) 손해 본 사람이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다 알고 있는데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손해도 보고 하면서 살고 있다. 여기에는 배경과 이야기 과정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류, 감정 등이 대충 섞여 있다. SNS나 인터넷에선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 때문에 잃을 행동이나 잘못된 행동에 엮이지 않는 삶의 방식이 좋다는 듯이 나오지만 현실에서 이런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싫은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대충 섞여서 같이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고 필요되어지면서 사는 것이 그냥 강제된다.

제자들 데리고 다니는 성인도 아니고 고고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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