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역사 45

로마의 내전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상이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비콘 강을 건너며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 기원전 44)는 로마의 귀족으로, 법무관과 최고 제사장을 지냈던 장군이었다. 그는 히스파니아(현재의 스페인)정복과 해적 소탕에 활약한 장군 폼페이우스,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었던 재력가 크라수스와 연합하여 3두정치 체제를 조직한다. 이 체제는 한동안 지속되었으나 카이사르가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원정에서 대성공하면서 그를 따르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크라수스가 동방의 위협적인 국가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죽자 분열하게 된다. 이윽고 폼페이우스를 따르는 이들은 로마 귀족 원로원과 손을 잡고 카이사르를 정치적..

역사/로마사 2020.12.05

포에니 전쟁과 로마의 성장

포에니 전쟁과 로마의 성장 “제 생각에는,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합니다.” -로마의 정치가 카토(B.C. 234-149) 고대 중동 근방에 살았던 페니키아인들은 해양 무역을 발전 시키고 문자를 개발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배를 타고 바깥에 나가서 무역을 했는데, 지중해의 해안가에 거점을 마련해두고 무역로를 개척하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다. 기원전 8세기에 건설된 카르타고(현재의 튀니지 지역에 위치)가 점차 성장하여 이 해안 도시들의 맹주가 된다. 히스파니아(현재의 스페인), 사르데냐 섬과 아프리카 북부 지역 등이 주된 거점이었다. 이들은 해양 무역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했으나 원주민인 페니키아인의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인구는 적은 편이었고 군사는 용병에 의존했다. 바알 신앙을 믿었으며 정치적으로..

역사/로마사 2020.12.05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키팀 땅 출신의 마케도니아 사람으로, 필리포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인들과 메디아인들의 임금 다리우스를 쳐부순 다음, 그 대신 왕위에 올랐다. 그 이전에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많은 전쟁을 치르고 요새들을 점령하고 세상의 임금들을 죽였다.‘ -구약성경 마카베오기 상권 제1장 알렉산드로스 3세(기원전 356~ 기원전 323)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고 불리는 마케도니아의 전쟁 군주였다. 그는 마케도니아 왕인 필립포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정교육을 받다가 아버지가 암살당하자 즉위하여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었다. 젊은 그의 등극에 그리스 도시 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세력들이 그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재빠른 군사적 행동으로 일대를 제압한..

역사 2020.12.05

펠로폰네소스 전쟁

“실로 우리는 전 그리스의 모범입니다.“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몰자 추도 연설에서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 이후 그리스 인근 에게 해의 도시국가 동맹군들을 이끄는 실질적인 리더가 되었다. 아테네는 델로스(델로스에 동맹기금을 모으는 창고를 둔데서 명명됨) 동맹군의 리더로서 그리스 전역에 흩어진 소도시 동맹국들에게 공물이나 군대 징발을 요구했다. 징발을 거부한 국가들은 공물을 바쳤는데, 아테네는 이러한 공물들을 계속해서 거둬들여서 해군을 강하게 성장시켰다. 점점 강해지는 아테네의 힘에 아테네 시민들은 자만하기 시작했고, 다른 국가들은 심대한 위협을 느꼈으며, 델로스 동맹에 속한 도시국가들은 심한 공물부담을 느꼈다. 그리스에 위치했던 다른 대도시인 테베는 과거 페르시아에 협력했기 때..

역사 2020.12.05

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 전쟁 인간의 운명은 그의 영혼에 달려 있다. -헤로도토스 기원전 5세기 무렵, 그리스에서는 도시 국가들이 활발히 성장하고 있었다. 특유의 산악 지형 때문에 그리스는 중앙집권형 국가가 아닌 산개된 개별 도시 국가와 그 식민지들의 연합이 발전하고 있었다. 이 도시 국가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보인 것이 남서부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스파르타와 동부의 아테네였다. 이외에도 아르고스, 코린토스 등의 국가가 있었다. 스파르타는 전설적인 신화의 입법자 뤼쿠르고스의 개혁 이후로 과두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스파르타의 왕은 두 명이 있었지만, 이들의 권력은 다른 전제군주국가의 왕과는 달랐다. 그들의 권력은 감독관의 감시를 받아서 제한되어 있었고, 왕끼리 서로 견제하는 일도 있었다. 그들의 사회는 군사국..

역사 2020.12.05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