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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청과물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그다지 멀지 않은 시기에 국어 교과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기억이 날듯한 이름이다.
김반장의 형제슈퍼와 경호아빠의 김포쌀상회의 피튀기는 경쟁속에서 눈치없이 부식 판매를 시작했던 싱싱청과물사내가 어디서 굴러먹던지 알지도 못할 개뼉다구같은 놈이라고 욕먹으며 쫓겨나는 공포의 줄거리를 교과서에서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부분은 원미동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 편이었다. 워낙 그 내용이 인상깊었기에 나머지 내용도 찾다가 읽게 되었다.
이하 내용엔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다.
1. 소개
이 책은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을 배경으로 하는 연작소설집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매 화 다르며, 소설에서 중심 제재로 삼는 것들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각 단편소설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비참하고도 구수하며 서글픈 서민의 삶을 다루고 있다.
2. 내용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래 서울에 살던 주공은 주인이 전세를 비워달라고 하는 바람에 집을 찾으러 다닌다. 이게 아마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 아이고,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집 싼 곳을 찾으러 다니다가 아예 그냥 집을 사기로 크게 마음을 먹는다.
부천시 원미동이라는 동네가 싸다고 해서 집을 구하는 주인공. 이삿짐을 꾸린다. 아내는 만삭인데 추워죽겠는데 이삿짐 싸고, 자기도 개고생하고, 나이든 어머니랑 이사를 하게 된다. 어머니가 이사에 관한 성경 구절을 외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성경 구절의 낙천성과 고통스러운 상황간의 부조리에서 광기를 느꼈다.
*불씨
하도 취업이 안되어서 걱정하다가 간신히 취업해서 들어갔더니 다단계에 걸리고 말았다. 뭔 조각같은 것을 문화재라고 팔라는데, 도저히 못팔겠는 상황이다. 막막함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주인공은 우연히 이동하다가 옆자리에 앉게된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는데.
*마지막 땅
예나 지금이나 자식낳는게 죄인이고 고생이(라고한)다. 주인공은 나이든 할아버지로 원미동 일대에 땅을 갖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주변에서 재개발할테니 땅좀 팔라고 미친듯이 보챈다. 복덕방집 사람들도 들락날락거리면서 할아버지 신경을 긁고, 자식놈은 돈달라고 땅팔아서 언제 현금으로 보내줄지나 기다리고 있다. 고집을 부리던 할아버지였지만...
*원미동 시인
이 부분은 과거 고등학생용 모의고사에서 출제된 적이 있다. 이렇다할 지위도 특별한 능력도 없던 몽달씨. 시를 즐기 감수성을 느끼게 된다. 형제 슈퍼에서 일을 돕다가 왠 불한당이 들이닥치고, 김반장은 모르는 사람 취급 하며 돕지 않는다. 얻어 터지는 몽달씨...
*한 마리의 나그네 쥐
이 부분은 다른 부분처럼 갈등 구조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소외된(사회에서 이탈하려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집수리는 비용이 참 많이드는데, 그중에서도 돈 참 많이 드는게 물 샐때이다. 누전되면 전기갈아야하고 물이 어떻게 새느냐에 따라 타일도 뒤집어 까야한다. 혼자 고치기엔 너무 어렵고 사람부르면 옳타꾸나 하고 미친듯이 돈뜯어가려 하니 참 개같은 일이다.
주인공은 집수리를 위해 임씨라는 사람을 부른다. 별 말도 안듣는 양아치새끼 하나 데리고 타일을 까는 임씨.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본다. 어떻게든 값을 깎으라고 쫑크를 주는 아내. 막상 다 수리해서 값을 치르려 하니 임씨는 정직하게 적절히 낮은 값을 부른다. 컥... 감동먹는 주인공. 남자답게 술사주러 간다!
사실 임씨는 원래 연탄을 대던 사람인데, 빌어먹을 공장주가 대금을 안주고 뻐팅기는 바람에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정직하게, 너무도 힘들게 살면서 술을 마시는 임씨.
*방울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이야기. 스산함이 느껴진다.
*찻집 여자
행복 사진관(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낙원구 행복동이 느껴지는 오묘한 이름)을 운영하는 주인공. 인삼찻집을 운영하는 여자가 원미동에 들어온다. 그에게 마음이 쏠리는 주인공.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아내와 가족이 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돌고 돌고 떠돌고 또 도는 찻집 여자는 갈 데가 없어도 또 어디로 간다.
*일용할 양식
원래 원미동 일대의 부식을 담당하는 것은 김반장의 형제슈퍼였다. 그런데 갑자기 경호네의 김포 쌀상회가 형제슈퍼와의 경쟁에 돌입한다. 서로 상대를 절멸시키기 위해 계속 가격을 깎는 형제슈퍼와 쌀상회. 이때 마침 눈치도 없이 싱싱청과물을 연 사내가 부식 일절이라는 붙이지 말았어야 할 글자를 붙이고 만다. 싱싱청과물을 죽이기 위한 쌀상회와 형제슈퍼의 노력에 싱싱청과물 사내는 맞고 돈날리고 또 떠돌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 이미 동네에 전파상이 있음을 알면서도 전파상을 새로 중개해서 들어오게 해놓은 부동산 중개업자의 교묘한 한마디가 백미. 전파상 가족에 암운(혹은 피바람)이 드리워지는 분위기가 묘하다. 치열한 전쟁터같은 삶속에서 싸우는 개인들의 이야기.
모파상 단편중에 개를 던져서 버리는 동굴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구덩이에 개를 버리면 개는 거기서 쓰레기를 주워먹는다. 새로운 개가 버려지면 새로운 개는 얼마전까진 그래도 먹고살았으니 쓰레기나 먹던 개를 싸워서 이긴다. 그럼 이전 개는 죽고... 새로운 개가 쓰레기를 먹는다. 그 다음 또 새로운 개가 나오면 무한반복
*지하 생활자
세를 얻은 주인공. 아뿔싸 화장실이 없는 집이다... 윗집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게 해줄 것처럼 말했지만 세를 얻고나자 열어주지 않는다. 소변은 어떻게 하겠는데 대변은 어쩐단 말인가. 길에다 일을 보는 주인공. 하... 중반이후엔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도 나온다.
*한계령
아마 교과서 수록작품일 것이다.
주인공은 박은자라는 사람의 연락을 받는다. 아주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옛날 친구 말이다. 박은자... 의 이름을 떠올리는 주인공. 찐빵집네 딸 은자가 생각난다. 박은자는 밤무대 가수가 되어 활동중이었다. 한번 만나볼만도 한데 주인공은 은자를 만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추억의 존재가 변한 모습을 보기 싫어서인지, 과거의 추억을 간직하기위해서인지. 어쨌든 안 만난다.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큰오빠이야기가 나온다. 큰오빠는 가족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는 삶에 평생을 다 바쳤다. 근데 시발 이게 늙고나니 참.... 평생을 다 써버리고 자신의 삶은 존재한 적이 없던 것을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한스러워서 미치겠는 큰오빠. 아버지 산소가서 술마시고 우울하고... 어머니는 교회도 데려가보지만 별다른 효용은 없다.
큰오빠도, 은자도 모든 것을 바쳐 고생을 했다. 밤무대 뛰느라 들어섰던 애가 죽은지도 모르고 일만 했던 은자와 자신의 모든 것을 가족에게 바친 큰오빠.
주인공은 은자를 직접 찾아가서 부르지 않고 멀리서 미나 박의 노래를 듣는다. 모진 고생을 하며 밤무대를 뛰는 미나 박이 되어버린 어린시절 친구 은자가 부르는 노래는 한계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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