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중 한국에 번역된 것을 읽고 설명한 것이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다.
1.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은 가장 유명하고 완성도있는 에코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일단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읽기 어려운 초반부를 넘기다 보면 우리는 중세 유럽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홈즈같은 탐정님 윌리엄과 왓슨보다 약간 어리고 애같은 부하 아드소를 만날 수 있다. 소설 내용은 아드소의 어린 시절 회상이다.
이 수도원은 탐욕스럽고 재물에 눈이 먼 수도원장이 다스리고 있는데, 교황을 지지하는 세력가 황제를 지지하는 세력의 회합이 있기 직전인데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서 더 이상의 문제를 막기 위해 살인사건을 조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수도원은 좀처럼 살인사건 조사에 협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수도원장은 자신의 위신과 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수도원에는 지식을 담은 책을 정리한 장서고가 있다. 이곳은 비밀리에 관리되고 정보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곳이다. 수도원장은 주인공 일행에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서도 조용히 살인사건을 조사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드소는 어리고 잘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윌리엄은 가톨릭과 교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추리에 나선다. 교황파와 황제파의 회합은 폭력과 조롱 속에 이루어지고, 살인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한다. 홈즈같은 천재적인 추리력을 가진 윌리엄과 아드소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살인사건의 진상을 찾아야 한다.
일단 이 작품의 배경이 중세이고, 에코가 중세 수도원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펼친다. 또한 당시 중세에 있었던 다양한 교파와 이단, 재판에 대한 내용도 길게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것이 이 책을 읽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한다. 중세 유럽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가 바로 와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황을 지지하는 세력과 황제를 지지하는 세력은 왜 이렇게 싸우는지, 각 교파의 주장은 뭔지 왜 탄압받는 것인지 헷갈릴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움베르토 에코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고, 에코의 작품 중 다단 하나를 추천해야 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 작품을 추천할 것이다. 살인사건을 둘러싼 사건의 전개도 흥미롭지만 이 작품이 결말 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엄청나서 다 읽고 나면 내가 명작을 읽었구나 하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온다.
번역자인 이윤기 씨는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한국에 있는 불교 용어나 오래된 단어를 많이 차용해서, 불목하니나 신기료 장수 등의 단어가 나오기도 한다. 옛스럽다고 좋아할 수도 있으나 안그래도 난해한데 혼란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다. 어쨌든 작품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강하게 하는 것은 맞다.
추리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맞지만, 중세 문화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맞을 책이다. 게닥 더 좋은 것은 이 책은 헌책도 많아서 싸게 구매할 수 있다.
2. 푸코의 진자
푸코의 진자는 현대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취업해서 일하고 있다. 이 출판사는 자비출판으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다른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라는 점을 제외하면 별다른 것은 없다.
주인공은 과거 대학을 다닐 때 음모론에 대한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동료들 두명과 주인공은 묘하게 괴짜스럽고 시간이 남아도는 지식인 한량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음모론에 심취하는 체를 하는 장난을 한다. 엉성한 근거를 가지고 음모론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음모론에 가까이 접근하면서 그들에게 무서운 재난이 닥치는데...
이 책은 각 챕터가 유대의 카발라를 상징하는 단어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이라는 게임을 한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이 작품의 주된 소재는 유럽의 음모론이고, 음모론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뭐 카발라도 나오고 성당 기사단의 비밀도 나오고 그런다.
어차피 이런 것들에 대한 논리적인 것은 아니므로,그냥 그런 음모론이 있다는 것만 알면 되어서 독서의 난이도는 장미의 이름보다 훨씬 낮은 편이다. 다만 시점 전환이나 음모론을 심각하게 논의하는 체 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조금 어렵다. 초반부가 중반부와 시점이 다르고 굉장히 상세한 묘사로 시작하는데 이것의 읽기 난이도가 어쩌면 장미의 이름보다 더하다.
장미의 이름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낸다면, 푸코의 진자는 배경이 현대이고 등장인물들이 장난스럽기 때문에 약간 시니컬한 현대의 맛이 난다. 점점 전개가 괴이해지기 때문에 나중에는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것이나 현실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와닿지 않을 전개로 간다.
후반부 전개의 템포가 전반부 전개의 템포보다 훨씬 빠른 것이 인상적인 책이다. 어쨌든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 책도 너무 재밌어서 환호했다.
3. 프라하의 묘지
프라하의 묘지는 조금 독특한 소설이다. 장미의 이름도 역사성이 강한 책이긴 한데 이 책은 아예 역사적인 사건의 시계열 순서로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에 역사성이 정말 엄청나게 강하다. 특히 이탈리아에 관한 역사성이 말이다. 이 책 주인공은 일단 악역이고, 음모론도 소재로 쓰였다. 이 책은 역사성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즉, 역사속의 근현대 음모론이 주제다.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를 모르다가 나중에 천천히 알게 되면서 그의 살아온 내력이 펼쳐진다. 그는 과거 이탈리아 통일과 관련한 다양한 사건에 협력하고 음모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소설의 대부분은 이탈리아가 분열되어 있다가 통합한 시기를 그리고 있다. 그 살아온 내력을 보는 것이 이 책의 재미다.
에코는 근대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을 꿰어서,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가 뒤에서 음흉하게 음모를 일으켜서 했다는 것으로 정리하여 이 소설을 만들었다. 주인공은 누가봐도 극악한 사람이고, 그는 사람을 죽이고 음모를 일으키는데 자비심이 없는 인간이다. 그는 다양한 협잡과 음모를 거듭하여 다른 사람을 해하던 끝에 마침내 자신이 만든 모든 음모의 정점인 흉악한 음모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이미 한국에도 번역된 바 있는... 그것이다. 보면 알 것이다.
다른 소설보다는 훨씬 읽기 쉬운 책이다. 이 소설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면 전개가 약간 당황스러울 것이다. 혼란스러운 근대 이탈리아의 이야기에 대해 약간은 알아야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음모론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주인공이 워낙 흉악해서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관찰적이지 않다. 쭉쭉 전개되고 사건도 마구 일으킨다는 점에서 중반부 전개의 템포가 다른 작품보다 확실히 빠른 책이다.
4. 바우돌리노
이 책도 역사성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는 책이다. 중세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아야 책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얘네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짠지 모르겠다는 느낌만 들 것이다.
이 책은 액자식 구성이다. 이것이 약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일단 초반부의 배경은 역사상 있었던 막장 십자군인 4차 십자군이다. 이교도와 싸우러 간다던 십자군 세력들이 갑자기 기독교를 믿는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급습, 이탈리아 상인들과 손을 잡고 동로마 제국을 점령한다. 이후 살육과 약탈이 벌어져서 비잔틴 제국의 사람들은 고통받게 된다.
그런데 비잔틴 제국의 고관을 어떤 사람이 임기응변으로 구해준다. 그는 거짓말과 허세에 능하다. 심지어 자기를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 황제의 아들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비잔틴 고관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그렇게 듣는 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의 내부 구성을 이루고 있다. 그 허세꾼 이름은 바우돌리노다.
액자 안에서는 바우돌리노, 즉 그 고관을 구해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는 참으로 허세가 가득하고 웃기는 사람이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나중에 신성로마제국 황가에서 지내고 십자군에도 참전했으며 산상 노인의 궁에서도 지냈고 나중에는 프레스터 존의 나라에 나라를 찾다가 환상적인 동물을 만나는 등,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준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상당수는 실존인물이다. 특별히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이들도 역사속에서 등장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이 책의 주된 글감은 중세 유럽의 삶, 십자군 전쟁, 중세 유럽의 환상 동물과 환상의 땅, 프레스터 존 전설이다. 그중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중세 사람들의 환상과 프레스터 존 전설이다.
중세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들처럼 다양한 세계에 대해 알고있지 못했다. 그래서 잘 모르는 것들은 대충 상상력으로 땜빵해서 환상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들은 이교도가 사는 땅 너머에 환상의 땅들이 있고 환상스러운 동물들, 사람들이 산다고 생각했다. 이건 약간 동양으로 치면 산해경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발이 하나인 사람들, 괴이한 생김새를 가진 동물들 같은 것들이다. 자연환경도 사람이 살 수가 없는 재난이 펼쳐지는 이상한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멀리에 기독교인이며 사제인 왕이 다스리는 프레스터 존의 나라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에 대한 기록이 있었으나 오늘날에 와서 보면 프레스터 존 전설은 현실적이지 않다. 아무튼 중세 사람들은 이런 것을 믿었고, 중세에 나온 책인 맨더빌 여행기는 그런 환상에 대한 책이다. 그런 환상과 전설을 이 책의 재료로 썼다. 주인공 바우돌리노와 그의 친구들은 다양한 설화와 전설을 가지고 일종의 신화를 조작해냈다. 그리고 동쪽으로 향해서 환상의 나라로 갔다.
이 바우돌리노는 뭐라고 평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작품이다. 나중에 맨더빌 여행기를 읽고 보니 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의 전개가 내가 감당하기에는 꽤 꽤... 아니다. 읽어보면 알 것이다.
5.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내 생각에 이 작품은 다른 에코의 작품과 달리 진입장벽이 극단적으로 높다. 대충 배경은 2차대전 전후의 현대 이탈리아다. 주인공은 당시 살았던 소년으로 나이들어서 과거를 회상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나 소재가 당시의 이탈리아 대중문화에 관한 것이 많다. 따라서 당대 이탈리아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 책을 보면 뭔 재민지 아마 잘 모를 것 같다. 나는 일단 그랬다.
6. 전날의 섬
이 작품은 다른 에코의 작품과 다르게 중세, 현대가 아니라 17세기 무렵이 배경이다. 때문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중세보다는 좀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지식에 대해서 안다. 다만 현대와 달리 사물에 대한 독특한 이론들이 대립하고 있는 시절이다. 그 무렵의 바다가 배경이다.
주인공은 이탈리아인인데, 모종의 이유로 다른 곳에 향하는 배를 탔다가 문제가 생겨서 버려진 배에서 표류한다. 그 배에 다른 신부님이 한 명 있는데 아주 완고하고 지적인 고집이 있어서 그와 다양한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내용이다.
책의 내용이 좀 난해하고 어려운 면이 있다.
7. 제0호
제0호도 음모론에 대한 책이다. 3류 글쟁이인 저자는 어느날 우연히 어떤 사람들에게 고용되어 뭔가 쓰게 된다. 이 책은 다른 작품과 달리 짧다.
개인적으로는 에코의 소설들 중에 장미의 이름이 최고고, 그다음이 푸코의 진자라고 생각한다. 바우돌리노도 참으로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이거 왜 이렇게 가나 싶은 전개가 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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