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역사

역사 / 헤로도토스

삼긱감밥 2021. 7. 20.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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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전 번역으로 이름나신 분이 천병희 씨가 번역한 헤로도토스의 역사이다. 기원전 5세기 경의 역사를 서술한 책인데, 엄밀히 말해서 역사적인 내용만을 다룬 것은 아니고 지리, 문화, 역사적인 모든 것을 다 담았다.

 

민족사나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내용도 섞여 있어서 책의 종류를 뭐라 하기 애매하다. 또한 저자가 신의 인간사 개입을 믿고 신화에 관한 내용도 굉장히 열심히 수집했기 때문에 인간의 이야기를 수록한 책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어쨌든 이런 저런 잡다한 이야기가 섞여있다.

 

책의 전반부에는 이집트에 대한 묘사와 뤼디아 왕 크로이소스의 이야기가 있다. 크로이소스와 신탁 이야기는 비교적 유명한 편이고,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풍속과 신화를 묘사한 것이 흥미롭다. 다신교 신화라서 그런지 다른 신을 자기나라의 신과 같게 언급하는데 완전히 같은 존재로 본 것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의 후반부는 비교적 다른 내용보다 깔끔한 편인데, 페르시아 전쟁의 전개와 각 장군들의 교묘한 책략, 전투의 추이와 각 도시간의 이합집산 등을 다룬다. 테르모필라이나 플라타이아이, 뮈칼레 곶 전투 등에 대한 묘사가 비교적 자세한 편이다. 레오니다스가 죽는 내용도 후반부. 발에 족쇄를 찬 죄수가 발을 자르는 내용도 여기에서 최초로 언급된 것 같다.

 

전체 분량은 900쪽 정도 되는데, 판형 자체가 워낙 굉장히 크고 또 서술 자체가 이 얘기했다가 저 얘기했다가 아주 횡설수설하면서 언급되는 키워드에 대한 모든 설명을 다 하는 기묘한 서술이기 때문에 읽기 쉽지가 않다. 하루 종일 붙잡고 읽어도 페이지 수가 많이 못 나간다.

 

*페르시아는 제국이고 그리스는 연합군이다보니, 어떻게 해서든 전투를 좀 피해보려고 용을 쓰는 코린토스 인들과 전장이 옮겨짐에 따라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하는 아이기나, 메가라, 아테나이 인들의 의견 갈등이 인상적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삼국지나 사기에 나와서 책략을 써도 될 것 같다. 굉장히 영리하고 교묘하며 돈을 모으는 재주가 있는 사람으로 나온다. 왜 도편 추방됐는지 알 것 같다.

 

*아이귑토스에 대한 언급이 많고, 저자가 느끼는 아이귑토스인들에 대한 평도 좋다. 헤로도토스는 아이귑토스인들을 현명한 사람들로 여기는듯 하다. 악어의 눈을 찔러서 제압한다는 제압법은 이미 기원전 400년대 이전부터 아이귑토스에 널리 퍼져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귑토스 언급 부분에 고양이와 악어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귑토스 인들은 고양이를 매우 아끼고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귑토스 삼각주 하류 지역은 그냥 씨앗을 뿌리고 돼지들한테 밟게 한다음 나중에 가서 수확하면 될 정도로 풍족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신이 인간사에 개입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 점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투키디데스와 확실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저술에 신의 역할이나 개입에 대한 부분을 헤로도토스처럼 쓰지 않았다. 그런데 헤로도토스는 아이귑토스의 신이 헬라스에 수입(?) 되었다고 보는듯하다.

 

아이귑토스에서 신을 숭배한 역사가 더 길며, 그 신이 헬라스에 알려진 시점을 헬라스인들이 그 신이 태어난 시점으로 잡고 모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데메테르 축제나 아테나 여신의 방패 역시 아이귑토스와 리뷔에에서 수입된 것으로 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블랙 아테나라는 책이 생각났는데, 그 책도 후에 봐야겠다. 아마 헤로도토스에 대해 언급할 것으로 보이는데?

 

*포이니케인들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다. 그들은 매우 꾀가 많고 약은 사람들로 나온다.

 

*그리스는 민주주의적 정치체제가 있었지만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 이론가는 낳지 못했다는 언급이 이전에 읽었던 페리 앤더슨의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에 나왔었다. 그런데 헤로도토스는 할리카르낫소스 사람인데 아테나이식 민주정치에 꽤 긍정적이다? 평등한 법치주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또한 페르시아 전쟁 기간 동안 가장 중요했던 키는 아테나이의 해군이었음을 짚고 넘어가준다. 민주주의를 지지하진 못해도 그나마 약간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아닐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투키디데스는 민주주의의 장점에 대해 이런 수준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지리적인 내용에 대한 언급이 정확한 편이다. 아이귑토스와 헬라스, 페르시아 인근의 내용은 정확하다. 그런데 이 주변에 대한 언급을 할 때는 지리적인 내용과 정치적인 내용이 잘 나오다가, 이 인근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문화인류학적인 것인지 설화적인 것인지 이야기가 점점 기묘하게 변한다.

 

그리고 아예 리뷔에 인근의 남쪽 지역과 스퀴타이 북쪽 지역으로 넘어가면 신화나 괴담 정도로 신뢰도가 무참하게 박살난다. ㅋㅋㅋㅋㅋ 사륜 전차를 타고 도마뱀처럼 돌아다니는 아이티오피아인을 사냥하는 부족이나, 대머리로 이루어진 부족 등등 사실에 기반했다고 보기에는 이상한 언급이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이전의 시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문체가 감상적이라고 해야할지 낭만적이라고 해야할지 아무튼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문체보다 뭔가 다르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시선 역시 이해타산 이외의 다른 것을 중점으로 보는 느낌이다.

 

*아르고스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며, 코린토스는 아테나이와 달리 살라미스 섬에서 해전하는 것을 반대했다. 스파르테는 레오니다스의 지휘하에 매우 용감한 싸움을 보였지만, 그건 그때고 역시 다른 전투에서는 페르시아군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군이 적어도 170만, 나중에도 30만이 넘었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헬라스군이 적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지협에 방벽을 쌓아서 펠로폰네소스라도 지킬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도 안싸우려고하니까 아테네가 스파르테를 회유, 협박하려는 시도도 있다. 해군이 없으면 지협막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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