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 968

진나라의 멸망과 초한 전쟁

진이 정치를 못하자 진섭이 먼저 봉기했고, 이어 호걸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서로 다투었는데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항우에게는 아무 것도 없이 그 세를 틈타 민간에서 일어나 3년 만에 다섯 제후를 거느리고 진을 멸망시킨 다음 천하를 나누어 왕과 제후를 봉하니, 정치가 항우에게서 나왔고 이름하여 ‘패왕’이라 했다. -사마천, 사기 항우 본기 춘추전국시대를 종결하고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혹독한 법가에 기반한 정치체제를 운영하였고 멸망한 나라들의 민심을 통합하지 못했다. 백성들은 법이 두려워 진나라를 따랐지만 몹시 피곤한 상황이었다. 북방의 유목 민족인 흉노를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짓는 등 대규모 노역이 실시되고 진시황이 죽자 민심은 폭발하여 농민 봉기가 시작된다. 진나라에 의해 멸망한 나라..

역사 2020.12.05

로마의 전성기 5현제

‘Optimus Princeps(지고의 황제)’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내진 찬사 로마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5명의 현명한 황제. 네르바(재위 96~98)-트라야누스(재위 98~117)-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안토니누스 피우스(재위 138~161)-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의 5명의 황제를 가리킨다. 대부분의 고대 국가가 세습을 통해서 황제 자리를 유지했지만 5현제의 시기는 예외였다. 이들 5명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니었으나 황제자리를 세습했고, 능력과 군사력을 입증받고 황제가 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전성기가 열리게 되었다. 이 시기에 로마는 현재의 루마니아 지역인 다키아 지역을 정복하고 다키아인들을 노예로 잡았고, 브리타니아 섬에서 스코틀랜드 지역을 제외한 다른 ..

역사/로마사 2020.12.05

로마의 내전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상이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비콘 강을 건너며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 기원전 44)는 로마의 귀족으로, 법무관과 최고 제사장을 지냈던 장군이었다. 그는 히스파니아(현재의 스페인)정복과 해적 소탕에 활약한 장군 폼페이우스,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었던 재력가 크라수스와 연합하여 3두정치 체제를 조직한다. 이 체제는 한동안 지속되었으나 카이사르가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원정에서 대성공하면서 그를 따르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크라수스가 동방의 위협적인 국가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죽자 분열하게 된다. 이윽고 폼페이우스를 따르는 이들은 로마 귀족 원로원과 손을 잡고 카이사르를 정치적..

역사/로마사 2020.12.05

포에니 전쟁과 로마의 성장

포에니 전쟁과 로마의 성장 “제 생각에는,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합니다.” -로마의 정치가 카토(B.C. 234-149) 고대 중동 근방에 살았던 페니키아인들은 해양 무역을 발전 시키고 문자를 개발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배를 타고 바깥에 나가서 무역을 했는데, 지중해의 해안가에 거점을 마련해두고 무역로를 개척하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다. 기원전 8세기에 건설된 카르타고(현재의 튀니지 지역에 위치)가 점차 성장하여 이 해안 도시들의 맹주가 된다. 히스파니아(현재의 스페인), 사르데냐 섬과 아프리카 북부 지역 등이 주된 거점이었다. 이들은 해양 무역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했으나 원주민인 페니키아인의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인구는 적은 편이었고 군사는 용병에 의존했다. 바알 신앙을 믿었으며 정치적으로..

역사/로마사 2020.12.05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키팀 땅 출신의 마케도니아 사람으로, 필리포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인들과 메디아인들의 임금 다리우스를 쳐부순 다음, 그 대신 왕위에 올랐다. 그 이전에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많은 전쟁을 치르고 요새들을 점령하고 세상의 임금들을 죽였다.‘ -구약성경 마카베오기 상권 제1장 알렉산드로스 3세(기원전 356~ 기원전 323)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고 불리는 마케도니아의 전쟁 군주였다. 그는 마케도니아 왕인 필립포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정교육을 받다가 아버지가 암살당하자 즉위하여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었다. 젊은 그의 등극에 그리스 도시 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세력들이 그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재빠른 군사적 행동으로 일대를 제압한..

역사 2020.12.05

펠로폰네소스 전쟁

“실로 우리는 전 그리스의 모범입니다.“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몰자 추도 연설에서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 이후 그리스 인근 에게 해의 도시국가 동맹군들을 이끄는 실질적인 리더가 되었다. 아테네는 델로스(델로스에 동맹기금을 모으는 창고를 둔데서 명명됨) 동맹군의 리더로서 그리스 전역에 흩어진 소도시 동맹국들에게 공물이나 군대 징발을 요구했다. 징발을 거부한 국가들은 공물을 바쳤는데, 아테네는 이러한 공물들을 계속해서 거둬들여서 해군을 강하게 성장시켰다. 점점 강해지는 아테네의 힘에 아테네 시민들은 자만하기 시작했고, 다른 국가들은 심대한 위협을 느꼈으며, 델로스 동맹에 속한 도시국가들은 심한 공물부담을 느꼈다. 그리스에 위치했던 다른 대도시인 테베는 과거 페르시아에 협력했기 때..

역사 2020.12.05

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 전쟁 인간의 운명은 그의 영혼에 달려 있다. -헤로도토스 기원전 5세기 무렵, 그리스에서는 도시 국가들이 활발히 성장하고 있었다. 특유의 산악 지형 때문에 그리스는 중앙집권형 국가가 아닌 산개된 개별 도시 국가와 그 식민지들의 연합이 발전하고 있었다. 이 도시 국가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보인 것이 남서부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스파르타와 동부의 아테네였다. 이외에도 아르고스, 코린토스 등의 국가가 있었다. 스파르타는 전설적인 신화의 입법자 뤼쿠르고스의 개혁 이후로 과두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스파르타의 왕은 두 명이 있었지만, 이들의 권력은 다른 전제군주국가의 왕과는 달랐다. 그들의 권력은 감독관의 감시를 받아서 제한되어 있었고, 왕끼리 서로 견제하는 일도 있었다. 그들의 사회는 군사국..

역사 2020.12.05

공신 정리 3 4

공신 11위 신무후 근흡(거기장군) 원래부터 유방을 따라다닌 것은 아니고,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거병하였다가 이후 유방에게 합류했다. 주로 별동대를 이끌고 유방과는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팽성에서 유방이 대패할때는 돌아와서 한나라를 배신한 이들을 공격했다. 한왕 신과 영포의 난 진압에서 활약했다. 공신 12위 안국후 왕릉(우승상, 태부) 원래 유방이 형님으로 모시던 건달이었다. 효심이 깊고 건달 기질이 워낙 강해서 의협으로 이름높았다고 한다. 이후 스스로 군대를 모아 거병하였으나, 유방이 촉에서 나올때 한나라 군대에 합류한다. 이후 우승상이 되어 유방 사후에도 국정운영을 담당하나, 여후가 독단적으로 여씨들을 제후로 임명하고 정권을 장악하려 하자 반대했다. 결국 찍혀서 명예직이자 실권은 없는 태부로 ..

초한지 2020.12.03

공신 정리 1 2

공신 1위 찬후 소하 (상국) 유방이 패업을 시작했던 마을의 관리 출신으로, 한나라 군의 후방을 다스리며 보급을 담당했다. 유방이 팽성에서 대패하자 원래 군역에 오르지 않은 아이들과 노인까지 닥치는대로 징발하여 유방에게 보냈다. 천하통일 이후 황제 이하 최고의 관직인 상국 지위에 오른다. 한신 주살에 가담, 봉국을 더했다. 유방이 죽기 직전, 소하를 의심하여 감옥에 가두나, 소하가 반란을 일으킬 기회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풀어준다. 유방이 죽고 혜제 치하에서도 상국으로 나라를 다스리다 죽었다. 공신 2위 평양후 조참 (제나라 상국, 한나라 상국) 유방이 패업을 시작했던 마을의 관리 출신으로, 한나라 군의 전방을 맡아 전쟁을 직접 수행했다. 수없이 많은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상처를 ..

초한지 2020.12.03

치세로 나아가다

유방이 죽자, 여후는 자신의 친척들을 등용하여 제후로 삼고 조정의 군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유씨들은 수를 써서 살해했다. 여후는 먼저 유영의 계승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던 유여의를 불렀다. 유방의 총애를 받았던 유방의 아들 조나라 왕 유여의를 소환하자, 조나라 상국이었던 주창이 막으려 했다. 하지만 끝내 막지 못하고 질책을 당하여 유여의가 궁 안에 소환되었다. 어진 황제였던 혜제는 성품이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최대한 유여의를 보호하려고 했다. 여후는 기회를 보아 혜제가 일찍 사냥나간 사이에 유여의에게 독을 먹여서 살해했다. 그 어머니 척 부인은 팔과 다리를 잘라서 돼지우리에 던졌다. 혜제는 최대한 유씨 가족들을 보호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여후가 척 부인에게 한 짓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

초한지 2020.12.03
반응형